21세기 기술로 구현된 에반게리온
ⓒ 태원엔터테인먼트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신극장판 <에반게리온:서(序)>가 선정됐을 때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표는 26분 50초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극장판으로 돌아온 가이낙스사의 총아 <에반게리온>은 텔레비전 시리즈 종방 이후 12년이란 시간도 무력화시켰다. 2007년 9월 일본에서 당시 개봉 첫주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올해 1월 10일까지 총 18억 5천만엔(약 132억)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에반게리온:序>의 배경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서 시작한다. '세컨드 임팩트' 이후 살아남은 인류는 '어디에서 밀려오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격체 사도'와 맞서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진행중이다. 동시에 '인류보완계획'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겐도 박사는 아들 신지를 '사도' 타도의 전략기지 '네르후'로 소환한다. 아무런 연습도 없이 초호기에 밀려 탄 신지는 극단의 상황에 내몰리면서 싸우기를 강요받는다. '사도'와 싸우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지를 사람들은 지켜본다. 안타깝게 혹은 불안하게 볼 뿐이다. 개인의 고통은 대의 앞에서 무력했다.


'세컨드 임팩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그 일 이후에 인류의 반 이상이 멸족했다. 사람들은 '세컨트 임팩트'가 남긴 여진을 그대로 안고 '사도'와 싸운다. '사도'를 막지 않으면 '서드 임팩트'는 발발하고 결국 인류는 멸망한다. 인류의 생존을 지키는 것도, 절대절명의 순간도 신지를 움직이는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설득도 이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지는 개인으로 그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그것뿐이고 그것밖에 알려주지 않는다.


'신지'의 존재증명,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88만원 세대'


영화 내내 고군분투하는 신지의 모습에선 신자유주의 내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88만원 세대'가 떠오른다. 한국은(혹은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가공할만한 '세컨드 임팩트'를 경험했다.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경쟁력'을 기르는 일이었고 경쟁은 사회적인 미덕이 됐다. 살아남는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는 '배틀로얄'식 경쟁은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미래에 대한 불확신을 만들어냈다.


지난 15일 모 일간지는 "취업빈곤층 10년만에 두 배"라는 머리글을 실었다. 글은 "일할 능력이 있는데 일자리가 없거나 취업해 있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4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88만원 세대>를 공동 집필한 우석훈 박사는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승자독식의 경제구조에서 '인질'로 잡혀 있다"고 말했다.


 
88만원 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에반게리온:서>의 주인공 신지
ⓒ 태원엔터테인먼트

신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에반게리온에 탈 수밖에 없듯이,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얼마 안 되는 대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신지의 아버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들의 맹목적인 세컨드 임팩트에 관한 두려움은 '인류보완계획'이니 '사도'에 대한 인류 구원과 같은 거대한 담론들을 만들어 내고 88만원 세대들을 압박하는 당위성들을 만들어낸다.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도 이겨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신자유주의체제 내에서 살아남기를 종용받는다. '사도'와 싸우는 동안 받는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듯 한국에서는 이 치열한 경쟁 안에서 느끼는 좌절과 무력감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여기게 한다. 괴로운 순간이 지나가면 희망이 올 것이라 '희망고문'을 하면서.


인턴, 해외연수, 공모전, 봉사, 자격증 등의 취업 5종 세트에서 부모님의 배경과 재산이 추가 된 취업 7종 세트를 갖춰야 취업이 된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갈수록 많은 부분에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길 요구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0년을 기점으로 5년간 대기업 고용은 76만명 감소했다. 그와 비례해 '나쁜 일자리'는 증가했다.


신지는 '사도'와 싸우는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폭주'를 시작한다. 물론 외형적으로 이러한 폭발적인 힘은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 이러한 요소들은 관객들이 다이나믹한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88만원 세대'의 경우 '폭주'가 시국을 타개할 에너지로 발현될지 아니면 자기파괴적인 혹은 사회파괴적인 양태로 발현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건 아무도 조정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24일 개봉하는 <에반게리온:서(序)> 외에도 <에반게리온:파(破)>와 <에반게리온:급(急)>이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완결편까지 합해 총 2편이 남아 있다. 앞으로 개봉할 작품에서 신지의 선택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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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과 만난 세손 이산.
ⓒ MBC

드라마 <이산>에서는 홍국영과 이산의 만남이 홍국영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정후겸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홍국영이 여러 날 동안의 저울질 끝에 결국 '잘 나가는' 정후겸 대신 '인기 없는' 이산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후 홍국영은 기민한 판단과 대담한 행동으로 세손의 기반을 굳히며 반대파들의 입지를 축소시켜 나간다. 정후겸은 "저 자를 내 편으로 만들든가 죽이든가 했어야 한다"며 이따금씩 아쉬워한다.


드라마 <이산>에 나오는 홍국영의 이미지는 역사 속의 홍국영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 같다. 외모도 그렇고 지능도 그렇고 언변도 그러하다. 외모 하나만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영조 48년(1772) 9월 21일자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과거 합격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시력이 나쁜 영조가 "(홍국영의) 용모는 어떠하냐?"고 묻자 승지는 "매우 준수합니다"(甚精矣)라고 대답했다.


머리 좋고 책은 적당히 읽고 입은 좀 투박하고, 약간은 경망스러우면서도 외모만큼은 말끔한 홍국영의 이미지가 드라마에서도 비교적 잘 표현되고 있는 듯하다. 그에 비해 현재까지의 드라마 방영분을 보아서는, 그의 든든한 집안 배경이나 끝없는 욕심 등은 자연스레 표현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이 드라마에서 극적 효과에만 치중한 나머지 홍국영과 이산의 처음 만남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국영이 어떻게 세손 이산을 보좌하게 되었는지, 세손 이산은 어떻게 그런 '재주꾼'을 측근에 두게 되었는지가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다.


정조와 홍국영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둘의 처음 만남은, 어찌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이후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안 가서 파탄 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쩌면 처음 만남에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만큼은 극적 효과에 치중하기보다는 사실관계에 비중을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홍국영과 정조의 만남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드라마 <이산>에서 세손을 열렬히 사랑하는 홍국영의 이미지를 본 시청자들은 정조가 즉위 이후 얼마 안 가서 홍국영을 내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을 실컷 이용하다가 '단물'만 빼먹고 팽(烹)하는 권력가라고 정조 이산을 오해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의 만남에 대해서만큼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홍국영과 이산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은 비교적 수월하게 도출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합격하자마자 예문관 사관(史官)에 임명된 홍국영이 세손을 보좌하는 세자시강원 설서까지 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처럼 홍국영이 정후겸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이산을 선택하는 대단한 결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과거에 합격한 지 얼마 안 되는 홍국영에게 세자시강원 설서도 겸하라는 임명장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 둘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조실록>을 보면, 국왕 영조가 사관 홍국영을 측근에 두고서 가깝게 대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홍국영은 관계에 진출하자마자 국왕과 세손을 함께 보좌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산>에서는 영조가 세손의 추천을 받아 홍국영을 은밀히 만나게 되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영조와 홍국영이 먼저 만나고 그 다음에 세손과 홍국영이 만난 것이다. 이 시점은 이산이 등극하기 4년 전이었다.


과거에 장원 급제한 것도 아니고 11등으로 합격한 홍국영이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행운을 얻게 되었을까? 단순히 말을 잘해서일까? 그저 머리가 좋아서일까? 홍국영의 집안 배경을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이산>에 자주 등장하는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의 성씨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홍국영은 풍산 홍씨라는 유력한 문벌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경주 김씨인 어머니 쪽도 정순왕후와 이렇게 저렇게 연결된 문벌 가문이었다. 또 홍국영은 영·정조와도 인척관계였다. 특히 정조와는 12촌 인척관계였다.


홍국영, 집안 배경이 든든했다


 
<이산>에서 시니컬한 홍국영으로 분한 한상진.
ⓒ MBC

홍국영이 집권 외척 세력은 물론 국왕 및 세손과도 인척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렇게 빨리 국왕·세손의 측근이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든든한 집안 배경이 그의 출세에 가장 결정적 기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산의 등극 4년 전에 과거에 합격하고 또 세자시강원에 배치된 것은 홍국영으로서는 그 시점으로 보아도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홍국영이 이산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난 것도 아니다. 왕실과 이러저러하게 얽힌 홍국영의 든든한 배경이 두 사람의 만남을 가능케 한 가장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상당히 싱거운 편이었다. 홍국영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서 빈약한 세손을 선택했다거나 혹은 세손을 보좌하다가 한때는 똥지게까지 지게 되었다는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돋우기 위한 극적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튼 두 사람의 처음 만남은 드라마와는 달리 그렇게 싱거웠다.


이걸로 끝인가? 두 사람의 만남이 의외로 싱거웠다는 것으로 이 글은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의 만남이 싱거웠다는 사실로부터 중요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두 사람의 만남은 두 사람의 이별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둘의 만남이 홍국영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홍국영이 처음부터 어떤 원대한 정치적 이상을 품고 세손에게 접근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집안 배경이 좋은 홍국영은 세손을 보좌하라는 임명장을 받았고, 좋은 머리를 바탕으로 이산의 등극을 도왔지만 결국에는 자기 세력의 확대만을 추구하다가 얼마 안 가서 정조의 버림을 받고 말았다.


드라마에서처럼 홍국영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이산에게 접근한 것이라면, 정조 등극 3년만인 1779년에 허망하게 주군의 버림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배경에 힘입어 권력에 접근한 홍국영은 자신을 키워준 그 배경을 위해서만 열심히 일하다가 정조의 버림을 받고 만 것이다. 이는 그에게 별다른 정치적 이상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홍국영이 정조의 버림을 받은 이유


정조가 즉위한 지 얼마 안 가서 홍국영이 정조의 국정운영(특히 탕평책)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은, 홍국영이 애초부터 정조의 국정 비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국영이 단순한 권력욕을 떠나서 보다 더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면, 그 좋은 머리로 정조의 정치적 포부를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국영은 정조의 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정조도 자기처럼 권력에만 연연하는 사람인 줄로 착각했는지 모른다. '책을 대충대충 읽는다' 혹은 '경망스러웠다'는 평가처럼, 그는 사물의 본질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해버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식으로 정조를 대충 이해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정조와의 만남이 '준비된 만남'이 아니라 그저 '우연적인 만남'이었기에, 홍국영에게는 정조의 꿈과 고뇌를 이해할 만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홍국영과 이산의 만남이 그처럼 싱거운 만남이었기에, 그들의 만남은 얼마 안 가서 그렇게 쉽게 파탄에 이르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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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간지 만평으로 본 삼성 비자금 의혹 (하)


경향, 비평의 칼날을 정면으로 겨누다
 
경향신문의 만평이 가장 충실하게 삼성비자금 의혹을 만평에 반영했다. 중심주제로 다룬 16회 가운데 11회에서 의혹 대상인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을 직접 등장시켜 풍자의 효과를 높였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다루는 데 있어 에둘러 빙빙 돌리거나, 애매한 은유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지 않았다. 또한 사태의 경과에 따라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들을 만평에 녹여냈다.
 
 
2007년 11월 5일자 경향신문 만평
ⓒ 경향신문
 

사제단의 2차 기자회견 전날인 11월 4일 ‘회장 지시사항’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로비지시 문건이 공개된 다음날 만평에서 “현금도 호텔할인권도 와인도 안통하면 비행기 표와 휠체어 준비해라!”며 직접 비꼬았다.


 
2007년 11월 15일자 경향신문 만평
ⓒ 경향신문

또 11월 14일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이 삼성비자금 특검 법안을 공동 발의한 다음날일 11월 15일에는, 이건희 회장과 특검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는데 칼을 뽑아든 특검을 뒤에서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밀려고 한다는 비유를 통해, 공동 발의한 특검법에 부정적인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실제 다음날 청와대는 “공직 부패 수사처 설치법이 삼성 비자금 특별법과 함께 처리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2007년 11월 21일자 경향신문 만평
ⓒ 경향신문

특히 11월 19일에 있었던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폭로 후의 만평을 보면 경향 만평의 ‘비판적인’ 자세가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다. 19일 폭로는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2004년 청와대 재직 시절 삼성전자 법무팀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가 돌려주었다고 밝힌 것인데, 증거 사진까지 있어서 그동안의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상당한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경향은 11월 21일 만평에서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폭로가 삼성과 함께, 삼성에 친화적인 청와대, 정치권, 법원, 언론 등을 등 그림에 넣어서 묘사했다. 이는 삼성 비자금 문제가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층 전반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11월 20일자 한겨레신문 만평
ⓒ 한겨레 신문

한겨레도 20일자 만평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다발 중에 하나가 청와대 지붕에 튕기고, 또 그 아래 많은 사람들 중 이명박 대선후보(지금은 당선자)와 검찰을 그려 넣음으로써 경향과 비슷하게 전반적이고 포괄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2007년 11월 20일자 서울신문 만평
ⓒ 서울신문
 
2007년 11월 20일자 조선일보 만평
ⓒ 조선일보

하지만 서울신문은 20일자 만평에서 특검거부권을 언급했던 노무현 대통령 당황한 표정을 통해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폭로의 영향력 중 극히 일부를 드러냈고, 조선일보 또한 20일자 만평에서 ‘5년 만에 고해성사 1호’라는 텍스트와 고개 숙이고 침묵하고 있는 청와대 사람들을 통해, 삼성 비자금 의혹을 청와대 측근 비리의 문제로 접근했다. 한국일보는 아예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폭로와 연관된 만평은 없었다.


'8대 비리의혹' 경향과 한겨레만이 주목


11월 26일에 ‘8대 비리의혹’이라는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의 추가폭로가 있었다. 이날 폭로에서는 ‘삼성물산 2000억원 비지금 조성’, ‘홍라희 비자금으로 미술품 구입’,‘이건희 재산 임직원 명의 차명 관리’, ‘법원 직원 매수 기록조작’, ‘시민단체 주요인사 인맥관리’, ’회계, 법률 사무소 비리개입 의혹‘, ’중앙일보 위장계열분리‘, ’분식회계 5개사 7조원‘ 등등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비중이 있고 중요한 내용이었다.


 
2007년 11월 27일자 경향신문 만평
ⓒ 경향신문
 
2007년 11월 27일자 한겨레신문 만평
ⓒ 한겨레 신문

역시 경향신문의 다음날(11월 27일)만평을 보면, 전날 폭로내용 중 ‘중앙일보 위장계열분리’를 표면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위장의 일각…’이라는 텍스트로써 여러 가지 다른 의혹도 암시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또한 같은 날 만평에서 중앙일보 문제로 주요 내용으로 다루면서도, ‘처남 거라니까’라는 말풍선과 이명박 대선후보를 같이 그림에 넣어 도곡동 땅 문제도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나 한국일보, 서울신문의 만평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고, 특히 경향신문을 제외하고, 심지어 한겨레신문까지 포함한 조사한 모든 신문이 이 시점부터 삼성 비자금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BBK 대선 정국이라는 상황과 12월 7일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삼성 비자금 문제는 일간지 만평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2007년 11월 23일자 조선일보 만평
ⓒ 조선일보
 
2007년 11월 26일자 한국일보 만평
ⓒ 한국일보
 
2007년 11월 14일자 서울신문 만평
ⓒ 서울신문


또 하나 짚고 넣어가야 할 점이 있다. 경향과 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신문은 등장인물로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로고 등을 직접 그려 넣는데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조선일보의 경우, 등장인물로 검찰과 노무현 대통령을 등장시켰으며, 초점도 삼성문제를 직접 다루기 보다는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는 재료로 삼성 비자금 문제를 써왔다. 서울신문과 한국일보도 검찰이나 특검법을 둘러싼 정치권과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으며, 단 한번도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그룹을 상징하는 로고를 그림의 소재로 쓰지 않았다.


음모론적인 시각은 아쉽다


 
2007년 11월 8일자 경향신문 만평
ⓒ 경향신문


경향신문의 만평이 삼성 비자금 문제를 가장 충실히 다루었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점도 있었다. 바로 ‘음모론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점에서 그렇다. 11월 8일자 만평을 보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선출마를 선언한 것이 ‘차떼기 값’을 하는, 즉 삼성 문제에 대해 ‘물타기’로 나왔다는 듯 묘사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확인 되지 않았으며, 논리적으로도 비약인 면이 있다는 점에서 자칫 감정적인 삼성 비판으로 비칠 수 있다.


검찰이나 청와대, 언론에 대한 비판은 그전부터 일종의 ‘사회적인 혐의’가 있어왔다는 점에서 덜 감정적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언론과 검찰의 '물타기 혐의'와 이회창 전 대표의 '물타기 혐의'는 분명 다른 것이다.


시사만화는 분명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해당 신문사의 논조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만화의 시각적인 인상은 오히려 글로 된 기사나, 논평보다 독자에게 깊이 각인된다. 또한 쉽게 설득을 당하기도 한다. 만화 특유의 해학성과 풍자성은 분명 독자에게 촌철살인의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사실 관계의 기반이 무르다는 것을 독자들은 명확히 의식해야 한다. 시사만화를 즐겁게 보면서도 비판적으로 봐야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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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간지 만평으로 본 삼성 비자금 의혹(상)


 
2007년 11월 23일자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
ⓒ 경향신문
 

시사만화를 대강 보아 넘기지 말자


삼성그룹 전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언론에서 여러 형태로 이번 사건을 다루었다. 보도기사, 사설, 칼럼 등. 그 가운데 신문의 시사만화(만평)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한 것 같다.


시사만화(만평)의 영어명칭이 Editorial Cartoon, 즉 논평 만화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중요성과 영향력은 분명 간과되어 온 측면이 있다. 신문의 시사만화는 단지 시사를 소재로 한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논평으로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설보다는 덜하지만 분명 데스크의 게이트키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해당 언론사의 사설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면 비슷한 논조를 지니는 점도 있기에 사설이나 칼럼을 비평하듯 시사만화(만평) 또한 찬찬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자! 이제 촌철살인의 풍자, 기발한 해학성을 가미한 만화언어로서 시사만화(만평)는 삼성비자금 의혹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2007년 10월 31일자 한겨레신문, 장봉군의 그림판
ⓒ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의 만평, 삼성 비자금 의혹 으뜸으로 주목하다


우선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의 1칸 만평을 대상으로 한다. 10대 일간지 가운데 <동아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는 1칸 시시만화가 없으며, 중앙일보는 작가 건강으로 연재가 중단된 상태이다. 또한 <내일신문>과 <국민일보>도 성향이 유사해 대상에서 빠졌다.


그리고 각 신문사의 화백과 연재명을 보면, <경향신문>은 김용민의 그림마당, <한겨레신문>은 장봉군의 그림판, <조선일보>는 신경무의 조선만평, <한국일보>는 배계규의 한국만평이고 마지막으로 <서울신문>은 백무현의 서울만평으로 독자에게 찾아간다.


조사 기간은 첫 기자회견이 있었던 2007년 10월 29일의 다음날인 30일부터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가 임명된 다음날인 12월 21일까지로 한다.


먼저 삼성 비자금 의혹을 가장 높은 비율로 다룬 곳은 <경향신문>이었다. 총 연재된 45회 가운데 23회(51.1%)가 삼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한겨레신문> 46회 중 13회(28.3%) ▲<조선일보> 46회 중 6회(13%) ▲<한국일보> 40회 중 5회(12.5%) ▲<서울신문> 46회 중 4회(8.7%) 순으로 나타났다.


총 삼성 비자금 관련 만평 가운데서 ‘중심 주제’로 다룬 것과 ‘배경 소재’로 이용한 것을 나눌 경우, <경향신문>이 23회 가운데 중심 주제 16회 배경 소재 7회이고, ▲<한겨레신문> 13회 중 각각 8회, 5회 ▲<조선일보> 6회 중 2회, 4회 ▲<한국일보> 5회 중 4회, 1회 ▲<서울신문> 4회 중  3회 1회였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중심주제’로서 다루었는데, <조선일보>는 ‘배경 소재’로서 더 많이 활용해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해 실질적인 논평으로서 기능은 가장 미약했다.


 
2007년 11월 5일 2차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삼성 비자금 의혹을 처음 만평으로 다룬 언론사는?


<한겨레신문>이 제일 빨랐다. 첫 기자회견 다음날인 10월 30일 지면에 반영했다. 그 다음으로 경향신문이 10월 31일에, <서울신문>이 11월 2일, <한국일보> 11월 6일, 마지막으로 <조선일보>가 11월 13일자 만평에서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을 다루었다.


10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첫 기자회견과 11월 5일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자리한 2차 기자회견 후, <조선일보>를 제외하고 나머지 조사대상의 나머지 언론자의 만평은 삼성문제를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11월 12일 3차 기자회견의 있고 나서야 삼성 비자금 의혹을 만평에 반영했다.


특히 11월 12일 3차 기자회견이 있기 전,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삼성을 ‘업무상 횡령,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었고(11월 6일), 전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후보는 ‘반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를 제안하기도 했고, 16일에는 당 선대위 워크숍에서 삼성 비자금 특검 도입 주장하는 등 정치 분위기까지 감안한다면,  ‘조선만평’은 삼성 비자금 문제에 다소 소극적 이었다고 볼 수 있다.

 
2007년 10월 30일 한겨레신문의 만평
ⓒ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 10월 30일자 만평의 테스트를 보자. '골리앗', '삼성', '떡검', '비자금', '김용철 변호사'. 삼성을 골리앗에 비유 했고 김용철 변호사는 그저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힘든 싸움을 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삼성의 권력에 숨은 검찰의 모습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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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1일 경향신문의 만평
ⓒ 경향신문

10월 31일 <경향신문>의 만평은 '전기원 노동자 고 정해진', '삼성 비자금 계좌', '막아!'라는 텍스트를 통해 사건을 배후에서 은폐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음을 드러냈다.

 
2007년 11월 2일 서울신문의 만평
ⓒ 서울신문

<서울신문>의 11월 2일자 만평의 정몽주의 단심가 의 내용과 함께 '떡값', '난 5백인데 이쪽은 천? 정말 썩었네'라는 글과 함께 파리와 이건희 회장의 뒷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삼성에 일편단심하며 충복 노릇을 하는 검찰과 판사 비판했다.


 
2007년 11월 6일 한국일보의 만평
ⓒ 한국일보

<한국일보> 11월 6일자 만평은 이에 더해, '김용철 파문', '금감원', '국세청', '검사', '아직 타냐?'의 텍스트와 아예 등을 돌리고 앉은 검찰의 모습뿐만 아니라 강 건너 불구경하는 금감원과 국세청을 비판했다.


 
2007년 11월 13일 조선일보의 만평
ⓒ 조선일보

첫 기자회견 후 2주가 지난 11월 13일에야 만평에 삼성비자금 문제를 다룬 ‘조선만평’을 보면,  '떡값 검사 3명 명단 공개', '다 밝혀라 그럼 떡값 받은 검사가 수사하리?', '말 되네'등의 텍스트를 통해 알 수 있듯, 비판의 칼끝은 삼성 비자금의 직접 당사자인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그룹에 향하지 않았다.


검찰의 대응과 3명의 떡값 받았다고 주장하는 검찰명단을 밝힌 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에 회의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말 되네'라는 텍스트는 검찰에 더 힘을 주는 듯 읽히기도 한다.


삼성 비자금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각 언론사 만평은 내용과 접근에서 많이 달랐다. 삼성이나 이건희 회장을 직접 그림 속의 인물로 등장 시킨 만평이 있는가 하면, 왠지 '변죽'을 울리는 듯한 만평도 있다.


이쯤대면 삼성 비자금 의혹을 다룬 각 신문사 만평들을 신문사별로 주제 소재별 더 궁금해진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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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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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한 여자핸드볼 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 MK픽쳐스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임순례 감독과 주연배우들.
ⓒ 나영준

울고 있었다. 2004년 8월 29일, 그리스 아테네의 헬레니코 경기장. 2차 연장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접전을 치러낸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선수단. 이어진 가혹한 승부던지기. 금메달을 넘겨 준 그녀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우리 선수들, 울지 마십시오. 하지만 기쁨의 눈물이라면 마음껏 흘리십시오."


관객은 모조리 유럽인들. 중계와 응원을 동시에 맡아야 했던 최승돈 아나운서는 현장의 감동을 그렇게 전해줬다. 그리고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 '대한민국-덴마크' 경기는 우리 국민이 손꼽은 가장 인상적인 경기이자, AP통신 '10대 명승부'에 선정됐다.


한국의 전통적 효자 종목, 하지만 당시 객관적 전력은 입상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예선 4경기 135점의 가공할 공격력으로 팀 득점 1위, 이어 승승장구 8강과 4강을 넘어 펼쳐진 잊지 못할 결승전. 그녀들은 기어이 우리 시대 최고의 명승부를 수놓았다.


은메달이었기에 더욱 빛났던 생애 최고의 순간


무적(無籍)선수와 은퇴선수까지 함께 했던 그날의 열정과 감동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전작 <세 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일상의 진정성과 보편적 삶의 진실을 들려줬던 임순례 감독이 6년 만에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의 한 영화관. 언론시사회 현장에는 임순례 감독을 비롯해 문소리·김정은·김지영·조은지·엄태웅 등 전 출연진이 함께 했다.


"역설적이지만 당시 금메달을 땄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1등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한 자들이 승리자라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본격 스포츠 영화가 아닌, 스포츠가 결합된 휴먼드라마 형식을 띠고 있다. 이에 많은 자료를 모으고 실제 출전했던 선수들의 인터뷰를 참고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들은 새롭게 창조됐다.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이었지만, 팀 해체로 고단한 현실을 사는 미숙(문소리 분). 게다가 운동선수 출신이라 현실에 미욱했던 남편은 감당 못할 빚에 시달린다. 그 때 찾아 온 옛 동료 혜경(김정은 분)은 대표 팀 합류를 권유한다.


어렵사리 팀에 합류했지만 훈련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감독대행을 맡은 혜경의 독선적인 스타일에 신세대 선수들의 반발이 이어진다. 결국 이혼 경력을 문제삼아 협회는 과거 혜경의 연인이었던 승필(엄태웅 분)을 신임감독으로 앉히고 갈등이 고조된다.


무겁지 않게 그려 낸 '우리시대 아줌마'의 모습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이지만, 팀이 해체되어 고단한 삶을 사는 미숙(문소리 분)
ⓒ MK픽쳐스
 
이혼이 사유가 돼 감독대행에서 밀려난 혜경(김정은 분)
ⓒ MK픽쳐스
 
당시 올림픽에서 맹활약했던 이들 중 많은 이가 '아줌마'였고, 영화는 이를 반영한다. "세대교체가 안 되니 전력이 다 노출된다"는 감독의 비아냥거림, "태릉이 무슨 경로당이냐"며 반발하는 어린 선수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아픔이 이들을 주저앉힌다.

그러나 임순례 감독의 전작에서도 그랬듯 영화는 결코 무겁지 않다. 오히려 쉴 새 없이 생활 속 폭소가 터져 나오며 밝은 터치로 아픔을 승화시킨다. 의도적으로 아픔을 자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음 속에서 녹여낸다.

또 적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 주인공 한 사람을 통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않고 여러 역할이 함께 어울린다. 조연들의 열연도 맛깔나다. 미숙과 혜경의 남편 역을 맡은 박원상과 성지루가 반짝이는 연기를 선보인다.


김지영의 열연도 돋보였다. 서른 넷의 나이에 첫 국가대표에 뽑힌 정란 역. 무슨 역을 해도 벗기 힘든 '복길이' 이미지를 과감한 '뽀글이' 파마로 바꾸더니, 푸짐한 사투리를 섞어 십분 소화해냈다.


배우들이 석달 넘게 고된 트레이닝을 받았던 일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평소엔 가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밥 먹듯' 하던 배우들. 그러나 "점프 잘하는 두꺼운 다리가 그렇게 부러웠다"는 김정은의 말이 영화 속 연기자들의 노력을 대변한다.


온 국민이 결말을 아는 영화, 그래도 흐르는 눈물


 
우리 시대의 진정한 투혼을 그리고 싶었다는 임순례 감독.
ⓒ MK픽쳐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결말을 향해 영화는 내달린다.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유럽심판의 편들기, 상대방의 옷깃만 스쳐도 주어지는 2분 퇴장. 억울했지만 달려야 했다.


전후반 29대 29, 이어진 1차 연장 동점에 이어 2차에서도 나란히 34점을 기록한 두 팀. 19번의 동점을 기록했고 128분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임순례 감독은 경기 장면 촬영시 할리우드식으로 '오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슬로우 비디오를 남발하고, 줌을 사용했으면 보다 그럴싸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살아있고 생생한 경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당시 현장중계를 맡았던 최승돈 아나운서와 강재원 해설위원도 등장한다. 2004년 선수들의 투혼을 전해주던 기억이 새롭다. 임 감독은 중계 전 과정을 녹음해 주어 감사함을 표한다고 전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이곳저곳에서 황급히 눈물을 닦는 모습이 속출한다. '웃지 않고, 눈물 없기로' 소문난 기자들이지만 솔직한 감동에 후한 점수를 주는 이야기들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제18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경기 장면.
ⓒ 대한핸드볼협회

영화는 한편 비주류의 이야기다. 핸드볼이라는 종목 자체가 적어도 우리 사회 스포츠 중에는 찬밥 신세다. 올림픽을 즈음해 아주 잠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뿐, 그 종목을 선택한 이들의 삶은 고되고 지난하다.


임순례 감독은 전작에 이어 낮은 곳의 이야기를 소중히 담아 올렸다. 소중하다고 믿는 것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 그 순간순간이 바로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새해 초 개봉하는 이 영화 속에서 적어도 그런 믿음은 유효하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과 호흡까지 쏟아내며 최선을 다한 이에게, 진정한 승리가 찾아온다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금메달보다 더 귀한 은메달'을 일궈낸 아줌마 선수들을 통해 우리시대의 진정한 투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임순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계산된 눈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 '툭'하고 눈물이 터진다면, 그것이 '기쁨의 눈물'이라면 그냥 흐르게 놔두어도 좋을 법 하다.


 
올림픽 1년 뒤 덴마크를 초청 해 열린 리턴매치.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완승으로 끝났다.
ⓒ 나영준

덧붙이는 글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팀
감독 : 임영철    코치 : 백상서

오영란  문경하  허순영  김차연  장소희  이공주  우선희  김현옥 
최임정  명복희  문필희  허영숙  임오경  오성옥  이상은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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