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생
곧 유학간단다(도망아니고?)

얼굴 잘 기억해놓고 잊지말자
나중에 머하고 사는지 보자구~~
일본은 없는 여자처럼 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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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이런 애가 무슨 대한언론상인가 하는 것도 받았더라
역시 줄을 잘 서야돼
아 이런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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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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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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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3부작 <희망2010 대한민국의 힘> 제1부 백년의 드라마.
ⓒ 화면캡쳐
KBS

'어용의 피'는 정말 멈출 수 없는 것일까.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언론이기를 포기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단순한 정권의 홍보를 뛰어넘어, 이제는 버젓이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12일, 나는 KBS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역사왜곡'은 일본 왜곡교과서나 중국의 동북공정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벌건 대낮에 시청자를 상대로 우리 현대사를 왜곡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우연히 보게 된 프로그램은 KBS 1TV에서 방송한 <대한민국, 백년의 드라마>(이하 백년의 드라마)라는 특집 다큐프로그램이었다. 제목만 봐도 지난 1910년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2010년까지의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 진행자 역시 '올해 망국 100년을 맞아 지난 100년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거대한 의미가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 취지라고 설명했다.


난 당연히 망국과 독립, 분단과 건국, 산업화와 민주화, 냉전과 남북화해라는 지난 100년간의 우리 역사가 균형 있게 다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백년의 드라마>는 지난 100년간의 우리 역사를 철저히 왜곡하는 역사왜곡의 현장이었다. 항일운동이나 독립, 민주화와 인권, 남북화해는 없었고 오로지 가난극복과 산업화만이 있었다.


'균형적 시각' 찾아볼 수 없는 공영방송 KBS

 

이 프로그램만 뜯어보면, 지난 100년 우리 역사엔 오직 박정희와 김종필만 있었다. 김구나 김대중, 수많은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 민주화인사 그리고 통일운동가들의 이름은, 이 프로그램에서만큼은 사라졌다. 독립운동과 민주화, 남북화해를 위해 한 평생을 받쳤던 인사들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실제 이 프로그램에는 박정희와 김종필만 애국자로 등장했다. 그리고 경제발전의 후계자로서 이명박 정권의 경제업적을 홍보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 역사관을 날조하려고 작정한 프로였다. 박정희를 미화하기 위한, 개발독재론을 찬양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KBS가 독창적으로 창조한 '박정희사관'으로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자는 대국민 계몽성 프로였다. 단순히 한 프로의 내용만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현재 KBS가 우리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기본 시각이 그대로 들어난 프로그램이었다. 정권 홍보도 모자라, 역사왜곡까지 일삼을 정도로 언론의 기본양식을 포기한 KBS의 모습을 보았다.


어쩌다,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이렇게 됐는가. 정연주 전 사장의 강제 퇴출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홍보성 보도에 대해서는 그래도 그러려니 했는데, <백년의 드라마>를 보면서 'KBS의 '어용의 피'의 끝은 어디일까'하는 암담함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나만의 편향된 시각일까. 다른 민간방송도 역사를 그렇게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공영방송이라면 더욱이 최소한의 균형적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공영방송이 KBS처럼 역사를 통째로 날조하거나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는가.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2주새 3번이나 방송된 <백년의 드라마>


어떻게 이런 프로가 방영되나 살펴보았더니, 내가 본 12일 방송은 재방송이었다. 애초는 올해 1월1일 신년특집으로 기획해 방영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인 김인규 KBS 신임사장이 '새로운 공영방송'을 외치며 발표했던 '2010 KBS 10대 기획' 중 첫 번째 꼭지였다.


KBS 편성표를 찾아보니, 이 특집프로는 지금까지 무려 세 번이나 방영됐었다. 지난 1월1일 새해 첫날 오전 10시에 KBS 1TV를 통해 2시간짜리 특집 프로로 첫 방영한 데 이어, 9일에는 저녁 10시 15분 KBS 2TV를 통해 1시간짜리로 다시 편집해 재방영했고, 12일 오후 2시 10분 다시 KBS 1TV로 내보냈다.


특정 프로를 2주일도 안 되어, 이렇게 KBS 1, 2TV를 번갈아 가면서 세 차례나 방영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것도 금, 토, 화요일로 나눠 방송 요일이 겹치지 않도록, 그리고 방영시간대도 오전과 오후, 저녁 시간대로 골고루 배분해 내보냈다.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시청자들이 반드시 보아야 하는 역사교육 프로라도 되는 듯.


KBS가 이 프로의 제작과 방영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가 역력하다. KBS가 자체 판단으로 이처럼 많이 재방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청와대나 문화부로부터 '최우수 프로'로 선정되어 재방영하도록 지시를 받았는지 그 배경도 궁금하다.


대한민국 100년 역사엔 박정희만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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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KBS사장이 지난 11월24일 오후 노조, 사원행동 등 직원들의 취임 저지 시위를 막기위해 봉쇄된 여의도 KBS공개홀에서 취임사를 하는 장면이 사내TV를 통해 중계되고 있다.
ⓒ 권우성
김인규

나는 KBS가 다룬 다큐 <백년의 드라마> 소재가 문제라고는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망한 지 100년이 되는 올해, 지난 100년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공영방송인 KBS라면 당연히 다뤄야할 주제다. 그리고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이른바 보릿고개의 가난을 극복하고 산업화로 선진국 문턱에 올라선 우리 경제성장은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부분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독재와 인권탄압과 별개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적 업적도 다룰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경제 분야에서도 오로지 박정희만 찬양했다. 김대중 정권의 IMF 위기극복 업적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이 경제만 다룬 것도 아니다. 월드컵과 올림픽 등 스포츠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의아하다. 왜 지난 100년의 역사를 굳이 경제와 스포츠로만 접근을 했는지.


독립과 민주화, 남북화해의 역사는 박정희와 이명박, 그리고 다음에 집권할지 모르는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흠집이 나서일까. KBS가 충성해야할 대상은 국민이나 시청자가 아니라, 바로 현실과 미래의 권력이니까.


그러나 우리 역사에 경제발전 과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사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다. 1910년 망국이후 우리는 100년 동안 항일운동과 독립, 분단과 남북의 분열 건국,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남북 화해협력, 선진화라는 큰 흐름을 거쳐 왔다. 진보든 보수든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우리 역사다.


앞서 언급했듯, 이 프로그램의 제작 취지는 '100년 우리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의 숨은 의도는 구체적인 내용 전개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100년을 되돌아본다며 1910년 일제 강점과 1945년 독립과 분단, 한국전쟁의 역사적 사실만을 단순히 언급한 뒤 외국인을 통해본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어디에도 항일운동이나 김구의 활동상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 생활상에 대한 외국인 인터뷰는 있어도,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터뷰는 없다.


그리고 바로 60, 70년대의 해외수출과 식량증산과 새마을운동, 경제발전으로 넘어간다. 여기에 이 프로의 진짜 의도가 담겨 있다. <백년의 드라마>가 소개하는 눈물과 감동의 사례 11꼭지는 거의 모두 박정희 시대 개발사례나 경제발전 뒷이야기들뿐이다. 당연히 4·19민주혁명이나 5·16군사쿠데타, 80년 5·18 광주민주항쟁은 없다.


오욕의 역사현장을 '박정희 칭송' 현장으로만 조명


KBS가 보기에는 일제 강점기 외국여성의 평양 생활 모습 증언이나 해외 유학생의 증언, 훈련소에서 끌려가 독일어 통역관으로 활동한 사람의 증언만 감동의 드라마고 독립과 민주화는 감동의 드라마가 아니다.


특집프로의 이름을 '대한민국 백년의 드라마'가 아니라, '대한민국 백년, 박정희 드라마'라고  해야 할 정도다. 반공을 내세워 친일을 덮어버리고, 개발을 미화해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를 감추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설 자리가 없다. KBS가 바로 이 프로를 '대한민국 백년의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만든 의도가 여기 있다. 


프로그램은 이것도 모자라, 박정희 정권의 수출정책과 경제정책을 칭송하면서 아나운서 진행자의 배경으로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춘다. 아나운서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수출의 탑 시상식이 열렸던 장소"라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KBS 눈에는 장충체육관이 자랑스러운 경제성장의 장소로만 기억되나보다. 장충체육관은 유신 독재시절 박정희와 80년 신군부시절의 전두환이 희한한 통일주체국민회의와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체육관선거'를 벌였던, 민주주의 오욕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역사를 바라보는 KBS의 '외눈박이 시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모든 사물이 그렇지만, 특히 역사는 결코 한 부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전체를 외면한 채 한 부분의 사실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결코 '진실보도'가 될 수 없다. 이는 사실보도의 외피를 입은 철저한 왜곡보도가 된다. 다큐 <백년의 드라마>가 바로 '사실보도'로 치장한 진실왜곡이자 역사왜곡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그 누구의 역사라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균형 있게 평가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라며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를 통한 사회적 통합을 촉구했다. KBS는 이보다도 못하다.


일본이 지난 100년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경제성장만 부각시키고, 조선과 중국 등 아시아 침략 전쟁, 태평양 전쟁을 빼버린다면 당연히 역사왜곡이다. 독일이 자신의 과거 역사를 기술하면서 히틀러의 2차 대전과 유대인 학살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세계사 왜곡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와 독일의 나치즘을 미화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의 극우세력들의 역사관이다. KBS가 바로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사실보도'를 내세워 교묘한 역사왜곡에 나선 KBS는 분명히 답해야 한다. 지난 100년의 우리 역사를 왜곡한 이유를. 지난 100년 역사에서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와 통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최소한의 균형감각도 갖추지 못한 역사왜곡 프로인 <대한민국 백년의 드라마>에 대해 국회는 청문회를 통해 반드시 철저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의 숨겨진 제작 의도와 제작과정, 방영과정에 대한 권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찾아내야 한다. 문화방송의 <PD수첩>에 대해서 그렇게 공정성을 문제 삼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이 프로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궁금하다.


권력에 맞설 수 없다면, '뉴라이트방송'으로 명패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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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12일 편성표.
ⓒ 화면캡쳐
100년드라마

역사는 결코 숨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을 내세워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를 감추려 하지 말아야 한다. 반공을 내세워 친일의 추악한 과거를 숨기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옛날 친일파와 독재자들의 논리다.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보는 뉴라이트의 논리다. 일본 극우세력의 논리다. KBS는 이미 그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80년 광주항쟁을 폭도의 난동으로 규정하며 '땡전뉴스'의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는 KBS가, 지금 또다시 10년 후 나타날 또 다른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역사 앞에 경건하고 엄숙해야 한다. KBS는 자신의 목을 내놓을망정 진실만을 기록했던 옛날 사관들의 기개와 자세를 되새겨야 한다. 


왜 KBS가 세 번이나 이 프로를 계속 내보내는 지 그 이유를 알 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뉴라이트 성향의 보수인사가 이 프로에 대해 찬사를 들어놓았다. <올인코리아> 조영환 편집인은 "KBS의 급격한 정상화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며 "'대한민국 백년의 드라마'를 비롯해서 KBS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대한민국 방송의 정상화에 구체적 증거로 판단된다"고 12일 말했다. 뉴라이트가 극찬하는 'KBS의 급격한 정상화'의 구체적 사례가 바로 <대한민국 백년의 드라마> 특집 다큐다.


KBS는 박정희를 찬양하고, 뉴라이트는 KBS를 찬양하는 시대다. KBS는 민족사관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식민사관을 이어받은 박정희사관으로 역사를 보고 있다. 언론의 본분이나 사명은 어디로 사라지고, 오로지 권력과 정권만을 쳐다보고 있다. 국민과 역사는 이미 KBS 사옥의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것인가.


KBS는 이제 그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합리적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마저 왜 KBS 보도에 분노하고 수신료 거부운동에 들어갔는지를 알 것만 같다. KBS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KBS 구성원들이 국민 앞에, 그리고 역사 앞에 답해야할 차례다.


국민의 방송이 아닌 정권의 방송, 나아가 역사왜곡까지 일삼는 KBS라면 깨끗이 공영방송의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공영방송의 이름으로 수신료 인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 권력에 맞서 공영방송을 지킬 자신이 없다면, 아예 '뉴라이트 방송'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이다.


KBS, 그 어용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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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거침없이 하이킥'의 인기를 뛰어넘어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지붕뚫고 하이킥'에 제동이 걸렸다. 방통위에서 '해리'의 캐릭터에 대해 권고를 내린 것이다.




‘빵꾸똥꾸’ 사라지나? 해리 버릇없는 말투, 방통심의 철퇴


뉴스엔 | 입력 2009.12.22 07:25




'빵꾸똥꾸'가 방송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위)는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연출 김병욱)에 등장하는 해리(진지희)의 캐릭터에 대해 권고 조치했다.

극중 해리가 어른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자주 사용하고 필요 이상으로 장기간 반복적으로 묘사됐다고 판단한 것. 이에 따라 방통심위는 '지붕뚫고 하이킥'에 대해 '방송법제100조 1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권고 조치했다. 권고는 법적 강제성이 없는 경징계에 해당된다



기사 전문보기( http://media.daum.net/entertain/view.html?newsid=20091222072510078 )



방통위에서는 버릇없는 해리의 언행을 문제삼았지만 '반복적인 묘사'라는 말에 비추어 봤을땐 사실상 '빵꾸똥꾸'에 대한 조치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방통위는 방송 초기부터 인기 유행어로 자리잡은 '빵꾸똥꾸'를 왜 이제서야 걸고 넘어지는 것일까? 그 답은 바로 아래 사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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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이명박 집권 2년을 맞이하야 많은 국민들께서 그 하혜와 같은 성은에 보답하거자 길거리로 나와 집회를 벌이면서 '이명박 집권 2년은 ㅇㅇ다'라는 문구를 각자 준비해왔는데 그 중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문구이다. 아마도 가카께선 이 것을 보고 빡치셨던 모양이다. 듣자하니 '빵꾸똥꾸'가 초딩들에게 가장 모욕적인 욕으로 자리잡았다는 말이 있던데 가카께서도 그 수준이 비슷하니 우리는 웃고 넘길 수 있어도 가카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고로 우리는 다음 하이킥 방송에서는 해리의 아래와 같은 모습을 보게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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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조만간 아래와 같은 상황도 염려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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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전문패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솔직하면서도 과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밤 전국에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사과했다. 대다수 국민과 야당이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일축했다. G20 회의와 국격(國格)을 얘기할 때는 도도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사과는 솔직했지만 아쉽게도 신뢰가 담보되진 않았다. 그의 사과에서는 국가의 균형발전에 대한 고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더욱이 국민들에게는, 한 번으로는 위기를 모면할 수 없을 것 같아 두 번 고개를 숙이고도 촛불시위를 때려잡고 촛불여론에 재갈을 물린 면종복배(面從腹背)의 아픈 상처가 남아있다.


이 대통령은 2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40분을 세종시에 할애했다. 대선 과정에서 세종시 원안에 찬성했던 것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유혹을 떨치지 못해 생긴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의 애초 취지이며 국가 발전의 큰 방향인 '균형발전'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세종시 문제를 오로지 행정의 효율성과 도시 자족성의 문제로 축소했다. 그에게서 정부 행정의 효율성보다 국가균형발전의 가치를 중시하는 상대방(국민과 야당)과 소통하거나 이해를 구하려는 자세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성과 기만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세종시 문제를 논외로 두기로 하자. 이 대통령은 정부가 연내에 마련할 세종시 수정안을 보고도 원안이 더 낫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이 또한 발등에 떨어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시간 벌기'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또 한 번 속는 셈치고 수정대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믿기로 하자.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 전 국민 앞에서 한 부탁이고, 세종시 문제는 어차피 수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해결될 사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4대강 사업에 대한 그의 기본 인식이다. 그는 고개를 숙인다고 숙였지만 이번에도 면종복배의 꼬리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이 대통령은 대화의 전반부에서는 부끄럽고 후회스럽다는 말을 써가며 고개를 숙였지만 질문이 4대강 사업으로 넘어가자 고개를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는 "운하는 다음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그때 가서 하고 나는 4대강을 하겠다"고 말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사실상 '대운하 살리기'라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저돌성과 기만성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이런 거 들고 다니는 거 싫은데 (답답해서) 들고 나왔다"며 난데없이 문건 하나를 방송카메라에 비추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항변했다.


"(사회자와 패널이) 20조(실제로는 22조원)를 들여 이걸(4대강 사업) 한다고 말했는데 김대중 정권 때 2002년도에 루사 태풍이 불었다. 그때 200명 가까이 죽었고 피해가 5조원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에서 총리실 주관으로 범정부적 수해대책 보고서를 만들었다. 2004년에 공사를 시작해 43조원을 들여서 강을 살려야 한다는 계획서를 만든 게 보고서로 있다.


노무현 정권 들어와 에위니아 태풍을 만났다. 그때도 사람이 60~70명 죽었고 2~3조원 피해 봤다. 매년 이러니까 평소에도 강을 정비하기 위해 4~5조씩 돈을 투입한다. 그럼에도 매년 홍수 나니까 노무현 정부가 종합계획으로 2007년부터 10년 안에 87조를 들여 공사하려고 했다. 정부 전 부처가 참여해 '신국가 방재시스템 구축방안' 87조원짜리를 만들었다. 제가 지금 20조를 들여 (4대강 사업을) 하겠다는 게 문제가 아니고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이분들은 (전 정부에서) 43조원과 87조원을 들여 해야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눈과 귀를 의심케 한 MB의 문건 흔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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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과의 대화'에 들고 나온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2007. 5. 15 국무회의 보고자료).
ⓒ 오마이뉴스 자료
대통령과의대화

방송카메라에 비친 문건은, 그가 말한 대로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이라는 제목의 노무현 정부 때 만든 국무회의 보고자료였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말이 귓전을 울렸다. 오죽 억울했으면 이 대통령 자신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훼한 지난 정부에서 마련한 보고서까지 들고 나와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볼멘소리를 할까 싶었다. 이 대통령의 항변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는 충분히 억울할 법했다. 그래도 뭔가 미심쩍었다.


그래서 63쪽짜리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2007. 5. 15 국무회의 보고자료)과 소방방재청이 2007년 7월에 펴낸 750쪽짜리 <신국가방재시스템 백서>까지 찾아서 꼼꼼히 읽어봤다. 그리고 눈과 귀를 의심했다. 이 대통령의 입에서 들었던 것과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에서 본 것은 너무 달랐다. 조목조목 따져보자.


우선 김대중 정부가 마련한 '범정부적 수해방지대책'은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 동안 42조7900억원을 들여 전국 하천 유역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치수계획이다. 연간으로 계산한 사업비는 4조7544억원이다. 이에 비해 3년 동안 22조2000억원을 투자하는 4대강 사업의 연간 사업비는 7조4000억원이다. 두 사업을 단순 비교해도 4대강 사업의 연간 사업비가 2조6456억원이나 더 많이 들어간다.


노무현 정부가 마련한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동안 87조3800억원을 들여 137개 실천과제를 수행하는 재난방지 시스템 구축계획이다. 연간 사업비를 단순비교하면 8조7380억원으로 4대강 연간 사업비(7조4000억원)보다 1조3380억원이 더 많다. 그런데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현행 국가방재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재난방지 마스터플랜이다. 국가하천 정비 및 유지비에 책정된 것은 16조원 안팎으로 4대강 사업 예산(22조) 규모보다 적다.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의 방재사업 예산 수요 및 투자 실태(국무회의 보고자료 5쪽)를 보면, 건교부 등 7개 부처 방재사업 수요(2007~2016)는 총 87조3,801억원으로 이를 ▲국토보전 35조4010억원(41%) ▲재해경감 48조6423억원(56%) ▲방재연구 1조9951억원(2%) ▲대응 및 복구 1조3417억원(1%)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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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공개한 '국무회의 보고자료'는 4대강 사업과는 정반대로 지방2급하천 및 소하천의 정비율 저조에 따른 홍수 피해의 증가를 강조하고 있다.
ⓒ 김당
대통령과의대화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4대강 사업과 차원이 다르다


또 같은 보고자료의 '방재분야 예방투자 실태 및 문제점'(8쪽)을 보면, 하천 정비율을 △국가(하천) 97% △지방1급(하천) 93% △지방2급(하천) 78% △소하천 36%로 적시하면서, ▲주요 방재시설 인프라 부족 및 노후화 등으로 재해위험성 증가 ▲지방2급하천 및 소하천의 정비율 저조로 홍수피해의 대부분 차지 등을 지적하고 있다.


또 보고자료 9쪽에서는 '지방관리시설에 대한 예방투자 미흡'을 지적하면서 "매년 지방관리시설 피해복구비는 국가시설의 3.1배인데 지방관리시설의 예방사업 투자는 국가시설의 0.7배로 예방투자의 상대적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적시했다. 해마다 지방하천과 소하천에 홍수 피해가 집중돼 피해를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은 국가시설 피해 복구비의 3.1배나 되는데 정작 지방관리시설에 대한 예방사업 투자는 국가시설의 70%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보고자료의 '실질적 예방 위주 방재사업 구조로 개편'(10쪽)을 보면, '재해유발 고위험 시설 예방투자 집중 관리'를 지적하며 "지방2급하천 및 소하천 정비, 사방댐 설치, 노후저수지 정비 등에 대한 집중투자 대책 강구"를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4대강(국가하천) 정비에 국한된 4대강 사업과는 재해원인에 대한 진단과 철학에서 차원이 다른 것이다.


실제 홍수 피해 현황을 보면 국가하천은 평균 3.6%인 데 반해, 지방하천은 55%, 소하천은 40%에 달한다. 그러니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에서 국가 재정을 홍수피해가 집중된 지방2급하천 및 소하천 정비(약 20조원의 지방관리 취약시설)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홍수 피해가 집중되는 지역은 도외시하고 97%의 정비가 끝난 4대강의 본류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기존의 제방과 시설물 중심의 치수정책의 한계를 직시하고 제방과 구조물 중심의 홍수대책으로는 홍수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그래서 홍수를 하천의 일부로 인정하는 개념을 도입해 비구조물적 홍수 방어대책, 홍수량 할당제 등을 제시했다. 이는 강바닥을 파헤치고 보를 만들고 둑을 높여 홍수를 예방하려는 4대강 정비 사업과는 발상부터가 다르다.


예를 들어 상습 수해지역의 경우 구조물을 높여 홍수를 막는 것보다 차라리 주변지역을 매입해 홍수터로 관리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면서도 항구적인 홍수 방어대책이라는 것이다. 홍수량 할당제는 상류에서 물을 무조건 하류로 보내면 하류지역에서 홍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므로 홍수터, 저류지 등을 통해 홍수를 상류와 하류가 골고루 분담하면서 피해를 줄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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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가방재시스템 백서>(696쪽)는 해마다 지방하천과 소하천에 홍수 피해가 집중돼 피해를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은 국가시설 피해 복구보다 3.1배나 되는데 정작 지방관리시설에 대한 예방사업 투자는 국가시설의 70%밖에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 김당
대통령과의대화

11월 27일 '대국민 사기극'은 대통령이 직접 준비한 것?


이처럼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과는 정반대의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재해원인에 대한 진단과 철학부터 차원이 다르니 두 사업(계획)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비교가 불가능한 문건을 국민 앞에 들이대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항변한 것이다.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홍수 피해를 예방하려면 4대강이 아닌 전국의 지방하천에 예방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상식을 가진 사람이 국무회의 보고자료와 백서를 보면, 홍수 예방을 위해서는 4대강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정반대로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반대론자를 '반대를 위한 반대'로 몰아붙이는 수단으로 이 문건을 활용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식의 전복이다. 그는 국민 앞에서 손가락으로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세종시 문제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한편, 4대강 사업으로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셈이다.


'대국민 사기극' 다음날, 청와대 홍보라인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설명하면서 이전 정부의 수해방지대책 자료를 손에 쥔 채 구체적인 수치 등을 제시했는데 이는 직접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 '대국민 사기극'의 책임을 참모에게 돌릴 수도 없게 되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아동 성폭력 대책과 관련, "초범으로 반성하는 게 아니고 재범을 하게 되니까 아동 성범죄자는 평생 격리시켜야 한다"고 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도 있지만, '한번 배신한 사람은 또 다시 배신한다'고 한다. '면종복배' 하고서도 또다시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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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시민패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청와대
대통령과의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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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단하십니다.
참모들을 믿지 못하고 손수 준비하시는 저 열정!!!!!!!!
조또 무식한 우리 백성들이 1/10 이라도 따라갈 수 있어야 될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로만도 먹구 살수 있을텐데요
음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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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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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는 '국가적 재앙'? MB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보수층에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소설가 복거일, 자유선진당 총재 이회창, 한나라당 전 윤리위원장 인명진.
ⓒ 남소연 이종호
복거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좌파의 선물이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파의 답례품이다." ('시론: 우파(右派)의 답례품' <조선일보> 2009년 6월 14일 자)


소설가 복거일의 말이란다. 이 블랙유머에는 MB라는 암담한 '현상'을 바라보는 보수우익의 민망함이 담겨 있다. 결국 '너희도 노무현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대충 비기자'는 거다. 하지만 '500만 조문 인파'를 '떡 돌리는 분위기'와 등가 교환하자는 제안은, 그가 좋아하는 시장경제의 논리에 비추어 봐도 악덕상혼인 듯싶다. 아무튼, 자기들이 봐도 MB가 재앙은 재앙인가보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된 뒤 쓰레기보다 못한 짓"


복거일에게는 MB가 좌파에게만 골라서 재앙이면 좋겠지만, 분위기를 보건대 지금 그는 좌우를 초월한 국가적 재앙으로 등극한 듯하다. 왜냐하면, 그를 성토하는 목소리는 외려 보수층에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우에 와 있다면 최소한 우쪽에 있는 사람들은 환영하고 좋아해야 할 텐데 지금 우쪽에 있는 사람들도 대통령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회창. 대통령 주변에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24일 자)

 

MB 정권을 지지하거나 지원했던 이들도 그동안 드러난 'MB 본색'에 많이 당혹한 모양이다. 한때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냈던 인명진 목사의 말이다.


"이 대통령이 아니라고 해도 많은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분명 민주주의가 후퇴했는데 후퇴하지 않았다고만 하니 국민들이 말이 안 통하는 절벽을 마주한 것처럼 답답해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정권 쥐고 1년 반…사회통합 못 한 건 대통령 책임' <한겨레> 2009년 6월 19일 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를 '악(惡)'이라고까지 불렀던 가톨릭 원로 정의채 몬시뇰. 그는 MB 정권이 출범했을 때에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몬시뇰 역시 MB에 대해서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 후 이 대통령이 귀국하면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봤지만 개각도 하지 않고 국정 기조도 바꾸지 않는다고 측근들이 전하니 의외(다). … 왜 이렇게 민심이 떠났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해보고 일대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2009년 6월 20일)


한나라당 쇄신위에서는 급기야 MB의 측근들을 '쓰레기'라 부르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나왔다. 파문을 우려한 원희룡 위원장이 부랴부랴 비보도를 요청했지만, 무슨 일인지 <조선일보>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자기들이 봐도 분위기가 심상찮은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회의를 해 본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5%를 (이 대통령이) 혼자 얘기한다. 이 대통령은 듣지를 않는다. … MB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아니고 그 어떤 프렌들리도 아닌 단지 '캠프 프렌들리'(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된 뒤 쓰레기보다 못한 짓을 하는 것이 문제(다)." ('권영준, MB 정권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돼'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지지율과 리더십, 두 다리 모두 풀린 '명바라기' 여당"


정부가 그릇된 길을 가면 국회가 견제해야 하나, MB라는 제왕 앞에서 여당의원들은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여당'의원이기 이전에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정부에서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쓰레기보다 못한 짓"을 한다면, 국회에서는 '찌꺼기 같은 사람들'이 '찌꺼기보다 못한 짓'을 한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지지층 사이에 걱정과 냉소의 분위기가 퍼지고 있단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전하는 민심이다.


"(유권자들은) 무슨 일이 있든 간에, 한나라당이 있든 없든 지금보다 더 나빠지기 어렵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지지층 사이에서도 걱정과 냉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걱정스럽다." ('정몽준 , 한나라, 정당도 아니라는 비판 많아' <연합뉴스> 2009년 6월 22일 자)


정부야 막 나간다 하더라도, 여당은 유권자의 민심을 대리하고 대의해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민심을 등지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명바라기'가 되었다. 대통령이 조종하는 '마리오네트'(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 같은 정당에 정치적 존재감이 생길 리 없다. 지난 22일 한나라당 쇄신특위에서 급기야 여당이 '두 다리가 풀렸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한나라당의 지지기반 약화는 지난해 총선 이후 실시된 보궐선거, 교육감 선거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 한나라당의 현 상태는 두 다리 즉, 지지기반과 리더십이란 두 다리가 모두 풀리고 있는 국면이다." ('한나라당은 지지율과 리더십의 두 다리가 모두 풀린 권투선수다' <국민일보> 2009년 6월 22일 자)

 

이 상태가 계속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마저 패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선거는 공교롭게도 노무현 서거 1주기와 겹치지 않는가?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MB는 즉시 레임덕에 빠진다. 이 시나리오가 두려웠나 보다. 마침내 <조선일보>에서 MB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정치적 고려 없이 결정한 조각(組閣)이 민심 이반의 출발점이었다. 광우병 사태와 촛불시위는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대통령 정치의 기본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 지금 정계 밖 시중 여론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의 전망을 대단히 어둡게 보고 있다." ('사설: 대통령의 본업은 정치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측근형'과 '돌파형'... "대통령 주변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조선일보>는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 자리가 모두 이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면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는 '측근형'으로,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와 강희락 경찰청장은 '돌파형'으로 분류했다. 사진 왼쪽부터 원세훈, 백용호, 천성관, 강희락.
ⓒ 남소연 유성호
원세훈

여기에 올린 첫 번째 글에서 정부운영과 기업운영의 본질적 차이를 지적하며, '대통령이 국가를 기업으로 착각하다 보니 정치가 사라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조선일보>에서 같은 진단을 내렸다.


"이 대통령의 '정치 혐오증'이야말로 국정을 헝클어뜨린 근본 원인이었다. … 이 대통령의 참모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자신은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치는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 그러나 언뜻 비효율적이라고 보이는 정치야말로 각종 이해와 욕구를 수렴해 국민 통합을 이뤄가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위의 사설)


웬일일까? <동아일보>에서도 '정치가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읽어 보니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논다. 의미의 파괴를 시도하는 다다이스트의 아방가르드 실험이다. '정치가 없다'는 말을 <동아>는 이렇게 이해한다.


"현대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현상이다. 정치는 이런 갈등이 공동체의 균열을 초래하지 않도록 관리 조정 해결할 책무가 있다. … 정치권은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오히려 갈등을 부채질하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하다. 민주당은 일방적 요구사항을 담은 이른바 5대 선결조건을 내세워 국회 개회를 가로막고 있다. … 정치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든 야당들의 횡포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독재이다. ('사설: 정치가 없다' <동아일보> 2009년 6월 22일 자)


그냥 막 가라는 주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과 <동아>의 수준차를 본다. 아무튼 MB의 행보를 놓고, 보수층에서도 이렇게 견해가 갈린다. MB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까? 사고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대답은 분명할 것이나, MB가 어디 정상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던가? 그가 내놓은 인적쇄신안을 보자.


"청와대 주변에선 1순위가 '측근형', 2순위가 '돌파형'이란 말이 나온다. 원세훈 국정원장과 백 국세청장 내정자는 … 이 대통령의 친위부대로 분류된다. … 천 검찰총장 내정자와 강희락 경찰청장은 …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천 내정자는 용산참사·PD수첩 사건 수사 등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고, 강 청장은 최근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조문 정국' 수습 과정에서의 역할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일을 해보면서 권력기관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여기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권력기관장 빅4(국정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 MB 뜻 읽는 사람들' <조선일보> 2009년 6월 23일 자)


한마디로, 이번 인사의 메시지는 공안라인을 더 강화하겠다는 얘기. 이를 두고 '기수'를 파괴하는 혁신이라 자화자찬하나, 어차피 MB는 조직 내의 기수서열에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다. 그의 이해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상황을 '돌파'해내는 돌쇠들을 '측근' 자리에 앉히는 데에 있다. 기수 파괴의 '혁신'이라는 화장발 아래 숨은 '쌩얼'은 친정체제로 인한 문제를 친정체제의 강화로 돌파한다는 어이없는 역행이다.


청와대가 내놓은 또 하나의 대책은 이른바 '중도실용론'이라는 것. 이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슬쩍 다른 데로 돌리려는 꼼수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이를 제대로 꼬집는다.


"이를 근원적 쇄신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방향이 잘못됐다. … 국정혼란의 원인은 대통령이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지금 대통령이 중도에 있지 않고 우에 와 있기 때문이 아니다." ('昌, 대통령 주변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연합뉴스> 2009년 6월 24일 자)


이 총재의 말대로, "대통령 주변에 정신 빠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주변'만이 아니라 '중심'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박정희와 김일성 모델 추종하는 MB의 국정철학


MB는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문제는 그의 측근들이 잘 이해한다는 그의 "국정철학"에 있다. 정확하게 그의 '국정철학'은 1970년대 박정희 모델에 사로잡혀 있다. 동시에 그것은 남한에 앞서 산업화를 이룩한 김일성 모델이기도 하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대개 '근대화'에 대한 관념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 나타나 국민을 대상으로 카리스마 정치를 펴는 경향이 있다. 이 권위주의적 통치는 물론 아직 자연의 속도에 묶여 있는 농민의 전근대적 신체를 신속하게, 그러다 보니 강제로, 기계의 속도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남한에서는 그 엘리트 역할을 불행히도 박정희가 이끄는 군인집단이 맡았다. 국민 대다수가 농민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그나마 군대는 현대전을 치러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의 신체는 이미 소총과 기관총, 대포와 함포, 전차와 항공기 등 근대적 기계와 결합되어 있었다. 산업화 역시 결국 인간의 신체를 강제로 기계에 뜯어 맞추는 과정이기에, 그 시절에는 군인적 신체가 산업적 신체를 찍어내는 주형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척결해야 할 퇴물 취급을 받은 '군사문화'라는 것이 한때는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었다.


남조선의 박정희와 북조선의 김일성. 남북한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두 인물의 특징은 '현장정치'를 좋아했다는 것. 박정희는 농촌이나 산업현장 시찰을 좋아했고, 김일성 역시 현장을 돌아다니며 시시콜콜한 것에까지 교시를 내리곤 했다. 대통령이 모내기해야 농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수령님이 교시를 내려야 생산성이 오르는 것도 아닐 게다. 그것은 '가장 높은 권위가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는 강림 드라마로 인민을 감동시켜 생산에 동원하는 일종의 선무활동이다.


노 전 대통령은 강림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현장에 내려가 생색을 내봤자, 괜히 폐만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사단장 방문을 앞둔 부대 분위기는 다들 경험해 봤을 게다. 실제로 한 일주일간 아무 일도 못한다.) 반면 MB는 유난히 '현장정치'를 좋아한다. 현장감독 출신이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제 정치적 이상을 박정희라는 '산업화 영웅'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제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듯이, MB도 제 형상대로 공공기관장을 찍어내는 모양이다. 기사를 보자.  


"종합해보면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한 기관장들이 상당한 감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년에 100건에 이르는 직원과의 만남을 가진 CEO, 100번 정도 현장을 돌아다닌 도공 사장' 등이 우수 사례로 꼽힌 점을 고려하면 이번 평가의 방향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현장과 수치를 강조하는 '이명박 스타일'이다." ('공공기관장평가=충성도 평가?' <아이뉴스> 2009년 6월 19일 자)


누군가 책상에 앉아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자. MB는 아마 그를 보고 '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반면, 누군가 현장에 내려가 부하직원들 귀찮게 한다 하자. MB는 아마 그를 보고 '일 잘한다' 할 것이다. 이게 다 외국에서 만든 수입기계에 맞추느라 신체를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던 시절의 잔재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이번 위기를 맞아 청와대에서 서민 행보를 강화하겠단다. 기사의 부제가 재미있다. "가슴 뭉클 서민 행보 부각."


"현장 행보를 집중 부각시키는 '감성 코드'는 청와대가 준비하는 또 다른 소프트웨어다. 청와대 직원들은 지난해 '이 대통령의 가락시장행과 박부자 할머니의 눈물'을 국정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이 같은 가슴 뭉클한 현장 행보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법치-서민 투트랙에 감성 접목' <헤럴드경제> 2009년 6월 23일 자)


  
2008년 12월 4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노점에서 우거지 파는 할머니를 안아주며 위로하는 모습(왼쪽)과 "이명박 김일성 히틀러 그들의 공통점"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오른쪽).
ⓒ 인터넷 화면 갈무리
이명박

청와대 직원들이 "국정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은 그 장면은 박정희와 김일성이 즐겨 연출하던 장면이기도 하다. 가령 남한 가락시장의 사진과 북한 군부대의 그림을 비교해 보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청와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또 다른 소프트웨어"는 "가슴 뭉클한" 북한식 "감성 코드"였다. 청와대의 마인드가 산업화 초기에 꽂혀 있다 보니, 정서와 취향 역시 복고풍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MB의 "국정 철학"이 도대체 어느 시대에 고착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MB가 보여준 유일한 가시적 성과는 '민주주의 후퇴'


MB는 박정희를 꿈꾸나, 그는 절대로 박정희가 될 수 없다. 지도자의 카리스마로 경제가 돌아가던 시대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처럼 근대화의 영웅이 되고 싶은가? 그러면 대한민국에 있을 게 아니라, 서둘러 소말리아나 짐바브웨 국적을 취득할 일이다. MB는 자신이 박정희 비슷한 계몽군주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온 사회가 디지털로 이행을 완료했는데, 그는 저 홀로 산업화 영웅의 소설을 쓰고 있다. 그는 돌아올 수 없는 산업화의 로망(浪漫) 속에 사는 디지털시대의 돈키호테다.


박정희 그룹은 나름대로 선진적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농민이던 시대에 '근대화'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집권했기에 '정치적 정당성'은 없었으나, 적어도 그들은 '경제적 적합성'은 갖추고 있었다. 그 정권이 정당성의 부재 속에서도 유지됐던 것은 경제적 적합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고도성장은 결국 그의 무덤이 되고 만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정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관치경제가 시대착오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정당성을 잃은 그의 통치가 경제적 적합성마저 잃는 순간, 그는 부하에게 제거당하고 만다.


MB는 어떤가? 한국사회는 이미 산업화를 넘어 탈산업 사회로 이행했다. 고졸자의 87%가 대학에 가는 초고학력 사회, 최고의 IT 인프라를 가진 정보사회에서 유일하게 1970년대에 사는 게 바로 MB 그룹이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상상력이 가장 낙후한 세력이다. 합법적으로 선출되었기에 '정치적 정당성'은 있지만, 산업화 초기의 모델에 갇힌 그들의 통치에는 '경제적 적합성'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통치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정당성 때문이다. 그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그러니 '타도'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게 국민의 답답함이다.


경제는 2~3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경제지표들 여전히 2∼3년 전 수준' <연합뉴스> 2009년 6월 24일 자). '빅딜'은 허망한 망상으로 드러났다. 감세로 괜히 재정만 악화시켜 놓고, 수십 조의 추경을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디어법으로 새 일자리 2만6천 개를 만든다 하나, 그 말을 믿으려면 IQ가 유인촌이어야 한다. 미디어는 광고를 먹고 살고, 광고시장은 한정되어 있다. 숟가락 개수를 늘린다고 밥이 느는가?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카드는 '4대강운하' 하나뿐인데, 워낙 시대착오라 실현될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마저 좌초하면 정권은 식물인간이 된다.


거국적 반대를 뚫고 시대착오적 경제 프로젝트를 강행하려다 보니, 정치도 개도국 수준으로 돌려놔야 하는 것이다. 지난 정권 하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성과를 누렸다. 그러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닫자 민주를 돈 안 되는 허망한 가치로 여기고 MB에게 표를 던졌다. 그런데 살리라는 경제는 못 살리고, 멀쩡히 누리던 민주적 권리만 빼앗아간다. 그러니 국민은 황당할 수밖에. '가시적' 성과를 좋아하는 MB. 유감스럽게도 그가 보여준 유일한 가시적 성과는 '민주주의 후퇴'뿐이다. 거리에 널린 전경들을 보라.


디지털의 경쟁력은 참여와 자율의 창발 효과


"이명박 대통령과 회의를 해 본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5%를 (이 대통령이) 혼자 얘기한다." ('권영준, MB 정권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돼'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사회를 '매스게임'에 비교해 보자. 거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가령 북한의 매스게임을 보자. 그 게임은 한 사람(혹은 몇 사람)이 머릿속으로 기획한 것이다. 매스게임에 참여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누군가 기획한 그 프레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들 몸을 맞춰야 한다. 이런 매스게임에서는 한 사람이 두뇌가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수족이 된다. 이게 MB가 꿈꾸는 한국 사회의 이상적 모습이리라. 하지만 지도자가 '인풋'한 것을 인민들이 그대로 '아웃풋'해야 하는 사회는 결국 한 개인이 가진 두뇌용량의 한계에 갇히게 된다.


다른 유형의 매스게임도 있다. 천수만 새떼들의 비행. 새들은 누가 명령하거나 지도하지 않아도 하늘에 변화무쌍한 그림을 그려낸다. 촛불집회가 그것을 닮았다. 지도하거나 명령하는 사람 없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체적 효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이를 '창발'(emergence)이라 부른다. 우리 사회에 그런 유형의 집회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토대에 변화가 생겼다는 신호다. 정보화 사회의 경제는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많은 머리들의 창발 효과를 통해 발전한다. 디지털의 경쟁력은 바로 개별 주체들의 참여와 자율에서 나온다.


여기서 MB의 리더십이 얼마나 시대착오인지 보게 된다. 아직도 그는 2주일에 한 번 공중파에 나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혼잣말을 늘어놓는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그는 이를 '국민과의 대화'라 부른다. 솔직히 이런 경쟁력 없는 프로그램은 당연히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되어야 한다. 굳이 해야겠다면 대학로에 소극장 빌려 모노드라마를 하면 되지 않는가. (연출은 유인촌씨가 맡는 게 좋겠다.) '빨간 피터의 고백'의 뒤를 잇는 '파란 명박의 고백'은 국민은 몰라도, 적어도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 정도는 감동시킬 것이다.


홀로 산업화 초기로 돌아간 MB


MB는 대체 왜 저렇게 뻣뻣하게 굴까?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인간이 기계 앞에서 일하던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기계가 상수였다. 즉 일단 기계를 만들어 놓고, 그것의 동작과 속도에 인간의 신체를 강제로 뜯어 맞추었다. 그것은 물론 군대식 훈육과 숙련을 요하는 일이었다. 반면, 인간이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이 관계가 역전되어 인간이 상수가 된다. 예를 들어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의 디자인에서는 외려 컴퓨터를 섬세하게 인간의 신체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산업화 초기에 남한의 박정희와 북한의 김일성이 공히 '인간개조'라는 낱말을 사용했다. 이렇게 인민을 권력자에 뜯어 맞추는 게 산업화 초기 정치다. 정보화 사회는 물론 다른 종류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국민의 참여와 자율을 강조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MB는 어떤가? 그는 꿋꿋하다. 자신을 상수로 놓고 국민을 변수로 간주한다. 국민이 자기에게 맞춰야지, 자기를 국민에게 맞출 수는 없다는 것. 지금 디지털 국민들은 MB의 산업적 신체에 뜯어 맞춰지느라 생고생을 하고 있다.


얼빠진 언론이 만들어낸 자수성가 신화에 스스로 도취해 MB는 나 홀로 산업화 초기로 돌아갔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맹점을 통해, 그의 개인적 불행은 곧 국가적 불행이 된다. '나의 표상이 너희의 세계다.'  히틀러의 말이 졸지에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의 경제, 한국의 정치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힌 사내의 개인적 로망에 갇혀 버렸다. 2MB. 괄호치고 확장불가. 졸지에 이게 우리가 아직 3년 반 동안 들어 살아야 할 세계의 최대용량이 되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피에쑤) "이명박 대통령은 우파의 답례품이다." 복거일씨, 착불로 반송합니다. 유통기한이 30년이나 지난 걸 보내주시면 어떡합니까?

덧붙이는 글 | 매우 긴 글임에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네이트'(거기에도 쪽글이 수백에서 수천 개까지 붙었다.), 혹은 블로그와 사이트에서 읽은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사실 이명박 개인을 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저러는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그런 그가 왜 대통령으로 뽑혔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내게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독자들이 있다. 각자 자기가 있는 곳에서 작은 할 일을 찾아보자. 이 글은 카피레프트, 맘껏 퍼가도 좋다. 하루 종일 걸려서 쓴 글이다. 힘들게 쓴 글이니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원고료 대신에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은 실천으로 보답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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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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