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갑자기 오후 늦게 술이 땡길때가 많다.
아무래도 회사에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항상 보는 사람만 보니 더더욱 그런 버릇이 생긴 듯 하기도 하다.
1월 29일에도 오후에 갑자기 술이 생각나서...
메신저를 중심으로 이곳저곳 연락하기 시작했는데
희윤이, 상수형, 정근이 등등
결국 모두 꽝이었다.
그렇게 연락하다 보니까 상수형은 이번에 이렇게라도 안보면 또 한 6개월은 그냥 지나가겠다 싶었다.
(세용이를 년초에 보자고 계속 연락하다가 결국 약속을 못잡았더니 결국 아직도 못보지 않았는가...)
그래서 다시 30일에 또 연락해서 결국에는 만나고야 말았다.
뭐 예전보다 많이 바뀐것은 아니지만 약간 흰머리가 나고 좀더 냉소적이 되었다는 정도?
하여간 올만에 만나서 인지 이런저런 얘기(애기얘기, 정치, 영어교육, 집문제 등등)를 나누었다.
앞으로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좀더 자주 연락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ps) 왕수형은 조만간 미국에 들어간단다.
회사 미국주재원에 근무하게 되었단다.
그전에 연락한번 해야 할 텐데... 잊어먹지 않을런지... 연락을 받기는 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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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무한도전’ VS 배고픈 ‘1박2일’
[OSEN=정덕현의 명랑 TV] 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소위 말해 캐릭터가 잡히면 프로그램은 뜬다. 이것은 진행형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쇼에서 이제는 드라마나 시트콤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 ‘캐릭터가 잡힌’ 프로그램은 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선구자인 ‘무한도전’이 될 것이며, 후발주자로서 급속히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의 집합,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이끄는 수장인 유반장(유재석)은 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들을 배려하고 조절하는 캐릭터다. 올 들어 새로 한 반장선거에서 거성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됐어도 여전히 유반장의 실질적인 반장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팀에서 유반장이 가진 이 캐릭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유반장이 ‘무한도전’ 외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이른바 리얼리티쇼 시대에 그 균형과 수위를 조절하는 유반장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유재석만의 장점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놀아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자칫 방관자 혹은 외부자 역할이 될 수 있는 그를 프로그램 속으로 안착시키는 힘이 된다.
그런 유반장이 이끌어가는 팀원들은 전체적으로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이다. 똥보 정형돈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캐릭터이며, 뚱뚱보 정준하는 식신에서 점점 ‘노브레인 서바이벌’의 바보 캐릭터로 변신해가고 있다. 꼬마 하하는 키가 작은 신체적 결함을 극대화한 캐릭터이며, 퀵 마우스 노홍철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심한 수다쟁이에 저질댄스로 일관하는 캐릭터이다. 거성 박명수 역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만 사실상 힘은 없는 아버지 캐릭터이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 캐릭터들은 나사 하나씩이 풀려 있거나 비하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거성 박명수 캐릭터다. 박명수는 자칫 이 ‘하향평준화된’ 쇼의 팀원들 속에서 자칫 당연한 것으로 매몰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이나 마이너리티한 부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 그것밖에 못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대방의 마이너리티를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박명수 캐릭터의 효용성은 리얼리티쇼 시대에 유재석이 그러한 것처럼 타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가 버럭 댈 때 그 자칫 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재석과 박명수 캐릭터가 특유의 콤비를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피투게더’의 인기에는 이 명콤비의 역할이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무한도전’ 팀의 캐릭터가 구축된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 것이 사실이다. 때론 과장된 느낌의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웃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자란 캐릭터이다. 따라서 부족한 이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때론 이루기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캐릭터의 성장드라마를 만든다. 초반부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에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던 캐릭터들은 이제 스포츠댄스나 드라마 단역 같은 제대로 도전이 될 만한 일에 도전을 한다. 초반부 반 막노동 같은 몸 개그에서 시작한 쇼는 이제 점차 몸치에서 유발되는 몸 개그로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구축된 캐릭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나가고 있다.
배고픈 캐릭터들의 야생, ‘1박2일’
유재석이 쇼의 구성원이면서도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1박2일’의 강호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성격은 다르다. 유재석은 한껏 몸을 낮춰 구성원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진행을 하는 반면, 강호동은 맏형 같은 캐릭터로 철저하게 쇼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강호동 특유의 뚝심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1박2일’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여행이라는 야생의 도전 상황 속에서 수평적인 눈높이보다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재미있게 상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야생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부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은 리얼리티쇼를 그르친다. 그렇기에 필요한 캐릭터가 아무리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캐릭터다. 바로 초딩 은지원이다. 그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딩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한 그의 어떠한 야생 속에서의 행동도 초딩이란 아이의 정서적 본능으로 인정된다. 여기에 합세한 캐릭터가 야생몽키 MC몽이다. 은지원이 아이의 본능을 앞세워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면 MC몽은 말 그대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로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
‘1박2일’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쇼의 부품처럼 잘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MC몽의 야생이 무적일 것 같지만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도시의 샌님 역할을 하는 허당 이승기다. 그는 야생 속에서도 늘 외모를 관리하고 좀 더 편안한 것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에피소드로 연결된 MC몽과 이승기의 탁구대회와 배드민턴 대회는 대결구도를 통해 두 캐릭터를 순식간에 강화시켰다.
여기에 나머지 두 캐릭터인 김C와 이수근의 역할도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김C는 야생을 야생처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짜로 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수근은 정반대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나 야생에 적응을 잘한다. 시골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일꾼의 캐릭터가 되는 것은 이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다. 둘다 야생에서 잘 버틴다는 점이다. 김C는 마치 삶은 고행이라는 것 같은 달관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수근은 실제 생존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1박2일’ 팀원들의 전체 캐릭터는 배고프고 고달픈 자의 본능으로 대변된다. ‘만성피로 프로젝트’라 강호동이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런 본능적 캐릭터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야생 속에서의 투쟁(?)이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맏형 강호동이나 인생 다 산 것 같은 김C,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해줄 것 같은 이수근 같은 캐릭터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다른 캐릭터들 간의 끈끈한 정을 늘 유지해준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중요해진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이제 쇼는 하나의 시트콤이나 드라마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는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유사하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고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캐릭터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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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갖기 위해 타자는 9년 동안 시즌 경기의 2/3 이상을 출장해야 하고, 투수는 규정이닝의 2/3이상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FA계약이라는 것이 어차피 '이미 검증된 선수'인 동시에 '어쩌면 전성기가 지나고 있을지도 모를 선수'와의 계약이며, '그동안 수고한 것을 보상받고 한숨 돌리려는 선수'와 '앞으로도 최소한 그만큼은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구단' 사이의 엇갈린 속내와 계산이 만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어차피 '관중 수'가 아닌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를 통해 경영자의 운명이 갈리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것은 이미 '합리적인 계산'보다는 아무리 돈을 털어 넣어서라도, 그리고 혹 둘에 하나쯤 실패를 해서 돈만 홀랑 날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돈을 우겨넣어 잡고 보아야 하는 몇몇 대기업간의 돈싸움이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액수를 곱씹을 때마다 서로 민망해질 만큼 부풀어 오른 터무니없는 몸값을 놓고 남의 탓을 해대는 프로구단들의 삿대질이야말로 적반하장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사상 최악의 FA계약으로, 나는 1999년 삼성 라이온즈와 이강철 선수 간의 계약을 꼽는다. 1억에도 못 미치는 계약이 두 건이나 있었던 'FA원년' 1999년의 일임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기준에 비추어보자면 출혈이라 할 수도 없을 헐값인 '고작 8억'(3년간)에 불과한 규모였지만, 오로지 우승을 위해 얼마든지 돈으로 승부를 낼 각오를 하고 있던 구단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애초에 FA계약에서 돈이야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강철을 '최악'으로 꼽는 이유는, 그가 계약 직후부터 부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돌아온 마운드에서 거둔 성적도 1승에 불과한 이른바 '먹튀'였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보다도 그가 그런 끔찍한 부진 끝에 1년 반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하더니, 이번에는 거짓말처럼 재기해 온갖 투수 부문의 '역대 최다' 기록에 이름을 올리며 '꾸준함의 상징'으로 거듭난 선수였기 때문이다.
상대팀에 8억이라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혔을 뿐 아니라, 보상선수로서 '라이온즈의 정신'을 상징하던 박충식과 바꾸어짐으로써 상대팀 구단과 팬 사이를 동요시켰다. 결국에는 친정팀으로 돌아와 당당히 재기함으로써 삼성에 몇 배의 정신적 타격을 입힌 내공 깊은 복합공격을 보여주었다.
1인자는 바뀌어도 2인자는 항상 이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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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잘 하는 선수였고, 언제나 잘 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진가를 발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고, 아직까지도 그의 가치는 모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잊히고 있기도 하다.
그가 고교무대에서 활약하던 시절, 광주일고를 대표했던 것은 문희수, 그리고 박준태였다. 광주일고가 대통령기와 봉황대기, 황금사자기를 3연패했던 1983년, 동기생 박준태는 두 번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고 한 해 선배 문희수는 최우수선수에 한 번, 우수투수에 두 번 이름을 올렸다. 치질수술을 받고부터 부쩍 자란 키와 체격 덕분에 급성장한 3학년 시절, 그 역시 황금사자기 우승을 이끌어내며 우수투수에 선정된 '스타'였지만, 그것까지 기억에 담아둔 야구팬들은 흔치 않다.
호리호리한 몸매에서 믿을 수 없는 강속구를 뿜어내며 한 해 앞의 세대를 휩쓸었던 선배 문희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투수는 물론 내외야수와 포수까지 섭렵하며 야구가 요구하는 모든 면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던 동기생 '천재' 박준태를 다루기에도 미디어의 지면은 부족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이강철이 전국무대 '우수투수'로 우뚝 섰던 1984년 황금사자기에서조차 최우수선수는 박준태의 몫이었던 것이다.
동국대 시절에는 1년 선배 송진우의 부상 덕분에 잠시 에이스 역할을 맡기도 했었지만, 1989년에 들어선 프로무대에서도 그의 '2인자' 인생은 계속되었다. 그 역시 국가대표를 지내며 나름 유망주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언론의 주목은 한 해 먼저 지명을 받고도 올림픽 출전 때문에 같은 해에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게 된 '제 2의 선동열' 조계현이 독차지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첫 해 7승에 머물렀던 조계현의 두 배가 넘는 15승의 깜짝 활약을 펼치며 화려한 첫 발을 내딛긴 했지만, 같은 해 태평양의 무명 고졸 신인인 같은 잠수함 투수 박정현이 무려 19승을 올리는 바람에 신인왕을 놓친 것은 '만년 2인자' 인생의 서막에 불과했다.
214.2이닝을 던지며 193개의 삼진을 잡아냈던 1991년에는 210개를 기록한 선배 선동열의 뒤로 밀려나야 했고, 기복 없이 15승 이상을 기록하며 맞이한 4년차 1992년에는 무려 18승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지만, '기록의 마술사' 김영덕 감독이 연출한 대학 1년 선배 송진우의 '다승왕(19승)-구원왕(25세이브포인트)' 동시석권 마술에 휩쓸려 일생일대의 다승왕 타이틀 획득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 뿐이랴, 그는 사상 최다인 세 번의 '1안타 완봉'경기 기록을 남김으로써 끝내 '노히트노런' 투수 명단에 이름을 남길 '삼세번'의 기회를 날린 셈이 되었으며, 1992년에는 155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유일하게 순위표 맨 윗줄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듬해인 1993년부터 공식타이틀로 인정되며 시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결국 그가 가질 수 있었던 타이틀은 한 개도 없었던 셈이다. (1992년까지 탈삼진에 대한 시상은 하지 않았다)
거북이 이강철, 국보 투수 선동열 추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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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잘 하지만 '가장' 잘 하지는 못하는 선수. 그래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 그런 이강철이 사람들의 기억 밖에서 야금야금 쌓아올린 금자탑이 바로 10년간 기록한 두 자릿수 승리와 세 자릿수 탈삼진이다.
데뷔 첫 해인 1989년 15승으로 출발해, 컨디션과 운이 받쳐주는 해에는 18승으로 정점을 찍고 그렇지 못했던 해에는 10승으로 바닥을 다지며 이어진 것이 10년차였던 1998년까지였고, 1998년 역시 출발점과 꼭 같이 승수는 15였다.
그동안 그는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50이닝 이상을 던졌고, 65번의 완투와 18번의 완봉승을 곁들였다. 선동열이나 최동원처럼 이름만으로 상대 타선을 얼어붙게 만드는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해마다 3점대 초반 혹은 2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으로 버텨냈고, 마지막 순간에 웃었다.
2004년 5월 13일, 그는 현대 강귀태를 상대로 1699개째 삼진을 잡아내며 선동열을 추월해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 보유자'로 등장했다. 일찌감치 완주를 끝내고 일본까지 찍고 돌아와 '영원한 국보'로 자리 잡은 신화 선동열의 기록이, 느릿느릿 쉬지 않고 기어온 거북이 이강철에 의해 추월당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조금 더 기어나간 그의 기록은 1749에 멈추어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끈질기게 달려와 '끈기'라는 면에서조차 이강철을 2인자로 밀어내버린 송진우가 그 기록을 추월하고 다시 1970까지 밀어올리고 있지만, 이강철이 잠시나마 가장 높은 곳에 머물렀던 순간이었다.
사상 첫 FA, 사상 첫 '먹튀'?
1999년, 10년 이상 활약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처음 FA제도가 시행되었을 때 가장 먼저 그 혜택을 본 것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거액인 3년간 7, 8억씩을 손에 쥐게 된 이강철, 송진우, 김동수였다. 여러모로 까다롭고 조심스러웠던 '첫 해'였기에 '10년 이상 활약한 선수들' 중에서 가장 젊은 1989년과 1990년 입단 선수들이었고, 또한 지나온 10여 년 간 한결같은 활약을 보여준 이들이었다.
사실 이강철은 1999년 시즌을 앞둔 동계훈련에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를 다치면서 한 해를 통째로 쉬어야 했고, 그 사실은 그를 영입한 삼성 라이온즈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10년간 10승과 100탈삼진을 하한선으로 알고 살아온 선발투수, 그것도 힘보다는 제구력과 각도 큰 변화구로 승부하는 노련함을 주 무기로 하는 투수의 노하우에 의심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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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0년, 1년 만에 돌아온 마운드에서 그는 고작 37이닝만을 던지며 1승 4패, 7.30이라는 낯선 성적표를 받아들고 말았고, 삼성 구단의 절망과 새로 부임한 옛 스승 김응용 감독의 배려, 그리고 타이거즈를 인수해 신장개업한 기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1년 반 만인 2001년 시즌 중반에 2억원에 현금트레이드 되어 원대 복귀하는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왼쪽 다리를 역동적으로 내디디며 몸을 비트는 잠수함 투수의 까다로운 투구 폼, 그것을 지탱하기에 부실해진 오른 무릎이 내내 말썽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넉넉하게 믿으며 기다려줄 고향 팀이 아니라 '한시라도 바삐 돈값을 뽑아내야 했던' 타향 팀 라이온즈, 그 곳에서 그리 독하거나 넉넉하지 못했던 그의 심성이 내내 쪼그라들고 긴장하며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친정팀으로 복귀하면서 모든 것은 다시 안정을 찾아갔다. 심리적 안정이 신체적 밸런스를 뒷받침했고, 이듬해인 2002년 그는 4년 만에 다시 100이닝 이상을 던지며 3.17의 훌륭한 평균자책점과 함께 5승과 17세이브를 올릴 수 있었다.
이제 선발투수에서 구원투수로 보직이 바뀌었고, 더 이상 해마다 200이닝을 던질 수도, 10승과 100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낼 수도 없었지만 그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낮아진 평균자책점으로 침착하게 경기를 조율했고, 상대방의 예봉을 진정시켜나갔다. 2003년에는 1.98의 평균자책점으로 6승과 9세이브, 2004년에는 2.95의 평균자책점에 6승과 7세이브였다. 그 시절 타이거즈는 이미 더 이상 '최강'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타이거즈'였고, 팬들은 그것을 이종범과 더불어 이강철을 통해 확인하곤 했다.
타이거즈 왕조의 조용한 대들보, 이강철
한희민과 박충식, 조웅천과 임창용까지 잠수함 투수들의 우연한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이강철 역시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선이 곱고 여성적인 외모에 우아한 투구동작으로 절묘한 궤적의 공을 뿌리는 선수였다. 그리고 꼭 그렇게 그는 부러질 듯 부러질 듯 휘어지며 강하게 부딪혀오는 상대를 통제했고, 그런 내공으로 90년대 '해태 타이거즈 왕조'를 떠받혔다.
그가 없었어도 해태 타이거즈는 강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왕조'라고 부를 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천하의 선동열도 때로는 벤치를 지켰고, 불굴의 '싸움닭' 조계현도 지쳐 숨을 고르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들의 등 뒤 팬들의 환호성도 채 닿지 않는 조용한 공간에서는 언제나 가쁜 숨을 속으로 삼키며 끈질기게 걷고 또 걸은 이강철이 추락의 하한선을 그어놓고 반격과 새 출발의 근거를 마련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함이나 기록의 높음, 빠름, 꾸준함. 그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2인자의 길을 걸어온 그였기에 돌아보고 살펴볼수록 더 놀랍고 대단한 것이 이강철의 기록이다.
신의나 진실함이나 순수함 같은 것들이 대개 그렇듯, 가치 있는 것들에 항상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프로야구 사상 가장 꾸준하고 안정적인 선수였던 이강철이 FA 계약이라는 극적인 순간에 '최악의 상품'으로 검증된 적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17년간 쉼 없이 달려 쌓아놓은 결코 작지 않은 봉우리와 그에 대한 우리들 기억의 높이를 비교해보면, 꼭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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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로 새로운 좀비 영화를 탄생시킨 폴 앤더슨 감독은 차기 작품인 <레지던트 이블 2>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 제작자와 각본을 담당하였고 감독은 알렉산더 위트에게 맡겼다. 그가 <레지던트 이블 2>에서 한 걸음 물러날 수 있었던 것은 <에이리언 vs 프레데터>의 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폴 앤더슨으로서는 자신이 만든 <레지던트 이블> 속편에도 욕심이 났겠지만, 이미 ‘에이리언’과 ‘프레데터’는 그 존재감 하나만으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우주괴물을 한 장소에 불러들이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흥행은 보장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창조한 좀비 부대와 인간의 대결이 아닌, (20세기 폭스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우주 괴물의 두 가지 브랜드 상품인) ‘에이리언’과 ‘프레데터’의 대결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그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레지던트 이블 2>에서 완전히 발을 뺀 것이 아니었다. 제작과 각본을 담당했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시 복귀하여 다음 시리즈를 이어나갈 수 있는 꼼수를 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는 개봉 이전에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흥행에서는 손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평론가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워낙 ‘에이리언’과 ‘프레데터’라는 캐릭터가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영화 한 편에서 두 괴물의 특징을 완벽하게 그린다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반(反)에이리언적이고, 친(親)프레데터적인 영화다. 에이리언은 무조건 악이고, 프레데터는 악을 물리치는 존재이기에 선에 가까운 캐릭터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울하게 출발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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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의 포스터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WHOEVER WINS... WE L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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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전해졌다.
“누가 이기든 미래는 없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우울한 상황이다. 에이리언과 프레데터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든지 인간에게는 상실 그 자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헤드 카피와는 달리 영화는 친프레데터적인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에이리언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왜 싸우는가? 영화에서는 에이리언이 프레데터의 스파링 파트너이고 인간은 그러한 에이리언을 키우는 숙주 역할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프레데터로서는 자신이 위대한 전사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에이리언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 에이리언과 인간은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에이리언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인간과 프레데터가 서로 손을 잡는다. 최강의 종족인 프레데터가 조금 열등한 종족인 에이리언에게 밀리기 시작했을 때, 인간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프레데터와 손을 잡은 것이다.
애초에 질서를 깨뜨린 것은 프레데터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냥을 위해서 인간을 미끼로 사용했고, 사냥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 에이리언이 인간을 숙주로 사용해서 거듭나도록 방관한 것이다.
물론 에이리언 시리즈를 통해서 에이리언에게 형성된 이미지는 이성이 없이 파괴 본능만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다. 이에 반하여 프레데터는 향상된 문명 세계를 창조한 수준 높은 종족으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
영화는 처음에 악을 제공한 프레데터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이용당하던 에이리언의 힘이 강해지면서 에이리언을 공공의 적으로 부각시킨다.
왜 에이리언이 공공의 적이 되어야 하는가?
여주인공 우즈는 에이리언의 힘이 강해지는 상황에 대해서 ‘피라미드는 마치 감옥과 같고 자신(인간)들을 간수(프레데터)들의 총을 가져갔고, 죄수(에이리언)들이 날뛰는 상황’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질서를 찾기 위해서는 간수들에게 총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나약한 종족으로 선택된 인간으로서는 이제 선택의 길만 남았다. 여주인공 우즈는 결국 간수들에게 협조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 여기에서 ‘나의 적’이라 함은 에이리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인간을 공격한 것은 프레데터 종족이었다. 물론 대원들이 흩어진 이후에 에이리언의 공격을 받고 살해되기는 했지만 세바스찬과 우즈는 그때까지 에이리언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목격하지 못했다!
에이리언이 무조건 악한 종족이라는 선입견은 그 생김새 자체가 애초부터 ‘대화가 불가능한 종족’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형성된 ‘나의 적’(에이리언)의 적은 당연히 프레데터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데터는 대화가 통할 수 있다는 일종의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약한 자의 생존 방식, 대화가 통하는 강자와 손을 잡아라?
결국 이렇게 에이리언을 견제하기 위해서 프레데터와 손을 잡기로 결정한 인간은 프레데터와 힘을 합하여 에이리언을 물리쳐야 했다. 비록 약한 전투력이었지만 이후의 싸움에서 많은 보탬이 되었던 것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합이라는 것이 단지 무기만 덜렁 건네주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공공의 적인 에이리언을 함께 퇴치하려는 적극적인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강한 종족들의 싸움에 휘말린 약한 종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둘 중 어느 한 종족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둘 중에 이길 놈에게 붙어야 한다. 만약 에이리언이 대화가 가능한 종족이었다면 인간은 고민했을 것이다. 에이리언과 손을 잡을 수도 없을뿐더러 잡는다고 해도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것은 이미 형성된 캐릭터의 이미지를 통해서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약한 종족인 인간은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한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에이리언의 승리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프레데터라면 승리 이후에 우리 약한 인간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영화는 프레데터와 손을 잡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후는 프레데터가 인간과 대화가 통하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말이 아니면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여주인공 우즈는 이후에 프레데터보다 훨씬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공공의 적을 물리친다. 이러한 활약 때문에 프레데터 종족으로부터 우호의 표시인 창까지 수여받는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이것은 아마도 프레데터 종족의 이익에 부합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프레데터가 계속 절대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인간을 보호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때로 가끔 다시 프레데터가 인간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제물을 요구할 경우에도 기꺼이(!) 제물을 바치면서 안전을 보장받아야 가능한 이야기다.
영화는 결국 에이리언의 패배로 끝났지만, 상황으로 본다면 영화 헤드카피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미래는 사라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늘날 약소국이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우회적으로 표현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에이리언처럼 절대 악으로 비춰지고 있는 국가와 프레데터처럼 대화가 통하는 강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약소국인 우리나라는 다양한 불합리한 조건들, 그리고 우리의 미래까지 포기하면서 강대국과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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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신극장판 <에반게리온:서(序)>가 선정됐을 때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표는 26분 50초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극장판으로 돌아온 가이낙스사의 총아 <에반게리온>은 텔레비전 시리즈 종방 이후 12년이란 시간도 무력화시켰다. 2007년 9월 일본에서 당시 개봉 첫주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올해 1월 10일까지 총 18억 5천만엔(약 132억)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에반게리온:序>의 배경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서 시작한다. '세컨드 임팩트' 이후 살아남은 인류는 '어디에서 밀려오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격체 사도'와 맞서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진행중이다. 동시에 '인류보완계획'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겐도 박사는 아들 신지를 '사도' 타도의 전략기지 '네르후'로 소환한다. 아무런 연습도 없이 초호기에 밀려 탄 신지는 극단의 상황에 내몰리면서 싸우기를 강요받는다. '사도'와 싸우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지를 사람들은 지켜본다. 안타깝게 혹은 불안하게 볼 뿐이다. 개인의 고통은 대의 앞에서 무력했다.
'세컨드 임팩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그 일 이후에 인류의 반 이상이 멸족했다. 사람들은 '세컨트 임팩트'가 남긴 여진을 그대로 안고 '사도'와 싸운다. '사도'를 막지 않으면 '서드 임팩트'는 발발하고 결국 인류는 멸망한다. 인류의 생존을 지키는 것도, 절대절명의 순간도 신지를 움직이는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설득도 이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지는 개인으로 그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그것뿐이고 그것밖에 알려주지 않는다.
'신지'의 존재증명,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88만원 세대'
영화 내내 고군분투하는 신지의 모습에선 신자유주의 내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88만원 세대'가 떠오른다. 한국은(혹은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가공할만한 '세컨드 임팩트'를 경험했다.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경쟁력'을 기르는 일이었고 경쟁은 사회적인 미덕이 됐다. 살아남는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는 '배틀로얄'식 경쟁은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미래에 대한 불확신을 만들어냈다.
지난 15일 모 일간지는 "취업빈곤층 10년만에 두 배"라는 머리글을 실었다. 글은 "일할 능력이 있는데 일자리가 없거나 취업해 있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4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88만원 세대>를 공동 집필한 우석훈 박사는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승자독식의 경제구조에서 '인질'로 잡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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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에반게리온에 탈 수밖에 없듯이,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얼마 안 되는 대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신지의 아버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들의 맹목적인 세컨드 임팩트에 관한 두려움은 '인류보완계획'이니 '사도'에 대한 인류 구원과 같은 거대한 담론들을 만들어 내고 88만원 세대들을 압박하는 당위성들을 만들어낸다.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도 이겨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신자유주의체제 내에서 살아남기를 종용받는다. '사도'와 싸우는 동안 받는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듯 한국에서는 이 치열한 경쟁 안에서 느끼는 좌절과 무력감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여기게 한다. 괴로운 순간이 지나가면 희망이 올 것이라 '희망고문'을 하면서.
인턴, 해외연수, 공모전, 봉사, 자격증 등의 취업 5종 세트에서 부모님의 배경과 재산이 추가 된 취업 7종 세트를 갖춰야 취업이 된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갈수록 많은 부분에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길 요구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0년을 기점으로 5년간 대기업 고용은 76만명 감소했다. 그와 비례해 '나쁜 일자리'는 증가했다.
신지는 '사도'와 싸우는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폭주'를 시작한다. 물론 외형적으로 이러한 폭발적인 힘은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 이러한 요소들은 관객들이 다이나믹한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88만원 세대'의 경우 '폭주'가 시국을 타개할 에너지로 발현될지 아니면 자기파괴적인 혹은 사회파괴적인 양태로 발현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건 아무도 조정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24일 개봉하는 <에반게리온:서(序)> 외에도 <에반게리온:파(破)>와 <에반게리온:급(急)>이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완결편까지 합해 총 2편이 남아 있다. 앞으로 개봉할 작품에서 신지의 선택을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