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의 조능희 책임프로듀서(CP)가 2일 오전 여의도 MBC 본사에서 < PD수첩>에 대한 집권여당과 일부 언론의 비난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 유성호

미국산 쇠고기 개방 이후 광우병 발병의 위험성을 지적한 MBC <PD수첩>이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9일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이 방영된 후 우리 정부의 '졸속' 협상에 화가 난 네티즌들이 비방 댓글을 무더기로 올리는 바람에 이명박 대통령의 미니홈피 방명록이 폐쇄되고,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인터넷 서명운동까지 불붙었다.


지난해 3월 <PD수첩>의 '이명박 검증' 보도로 혼쭐이 났던 한나라당 당직자들도 <PD수첩>을 2일 공개회의에서 비판했다. 유력정당이 1년마다 특정 TV프로그램을 회의석상에서 공격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PD수첩>은 후속편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PD수첩>의 조능희 책임프로듀서(CP)는 2일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내가 왜 이런 정치공세에 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제기한 비판들에 대해 조목조목 답변했다.


조 CP의 인터뷰는 다음과 같다.


"쇠고기 협상 타결 전에 미국 취재 이뤄져... 정치적 의도 없었다"


 
지난달 29일 MBC 에서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한 장면.
ⓒ MBC

- <PD수첩> 보도의 파장이 상당하다. 오늘 아침 한나라당 당직자회의에서도 얘기될 정도다.

"이번에 < PD수첩 >이 방영한 내용 중에 새로운 내용이 있었나? 한국인의 유전자 구조가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얘기, 미국 동물보호단체의 '소 도축' 동영상, 광우병 의심환자 얘기 등은 이미 다 나왔던 것이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알게 되면서 갑자기 파장이 커진 것 같다."


- 프로그램이 굉장히 빨리 만들어져서 다른 매체들도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우리가 빨리한 건 사실이다. 다른 매체가 먼저 집중보도한 다음에 우리가 다뤘다면 파장이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담당 PD가 2월경부터 소 도축 동영상을 찍은 '휴메인 소사이어티'와 접촉해왔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소들을 억지로 도축하는 동영상은 미국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동물 학대가 문제가 됐지만, 나중에는 도축 문제로 확대된 것이다.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 담당 PD도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기 전에 미국에 파견됐다. 덕분에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의 현지 기자회견까지 취재할 수 있었다. 쇠고기 협상이 만약 타결되지 않았다면 방송이 안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협상 타결이 너무 쉽게 되니까 협상 과정의 문제점은 없었는지 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쇠고기' 발언을 내보낸 이유는 쇠고기 협상 타결을 이 대통령의 방미 일정과 맞췄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교포들이 다 먹는다고 해서 미국이 자국산 쇠고기를 다른 나라에 먹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
ⓒ 유성호

- '250만 재미교포·유학생들이 먹는 미국산 쇠고기를 왜 우리는 먹으면 안 되느냐'는 항변에 대해 어떻게 답하려는가?

"재미교포들이 다 먹는다고 해서 미국이 자국산 쇠고기를 다른 나라에 먹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사는 미국 사람들이 잘 먹는 삼계탕도 미국은 수입하지 않는다. 그쪽에서 이런저런 조건을 거는 데 뭐라 할 수 없는 것은 검역주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괜찮다고 하지만, 만약 광우병 환자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때가 되면 250만명 중 1명밖에 없다고 안심하라고 얘기해야 하나? 광우병이 미국에서 처음 발병한 게 2003년이지만, 병의 잠복 기간이 길다.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도축·검역을 거쳐서 수입하자는 것이다."


- <조선일보>도 오늘자 신문 사설에서 "<PD수첩>에 과장된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사설도 그렇다. (신문을 읽어주며) 이렇게 씌어 있다.


'TV 속 미국 쇠고기 괴담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내용이 많다. 소 1억 마리를 키우는 미국에서 그동안 광우병 걸린 소 3마리가 발견됐다. … 사육 소 100만 마리 가운데 광우병 소 30여 마리가 발견된 일본의 광우병 발생 비율이 미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다.'


이 내용만 보면 미국 쇠고기가 일본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결론이 내려지는데, 이런 게 나쁜 기사의 전형이다. 미국은 2000마리당 1마리씩 검사해서 지금껏 3마리를 찾아냈지만, 일본은 광우병 발병했을 때 100만 마리를 전부 검사해서 30마리나 찾아낸 것이다.


미국보다 일본에서 광우병 소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프로그램에서 설명해줬는데도 우리가 부풀렸다는 식으로 글을 썼다. 프로그램도 보지 않고 쓴 사설 같다. 이런 글이야말로 혹세무민 아니냐? 이런 신문이 여론을 호도해왔다.


'서양인의 경우 35%만이 광우병이 발병하지만, 한국인은 유전자 구조가 취약해서 발병률이 95%'라는 연구결과는 지난해 <동아일보>에서도 보도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야당 의원이 국회 상임위에서 이 연구결과를 언급하자 '무슨 근거로 이런 발언을 했는지 근거를 정확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 필자 주)


- 프로그램에서 "미국 쇠고기를 먹는 사람은 실험동물과 같다"는 미국 소비자단체 간부의 말이 소개됐는데, 미국인들도 자국산 쇠고기를 먹는 상황에서 굳이 그런 발언을 방송에 내보낼 필요가 있었을까?

"미국에서 도축되는 소의 97%가 광우병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월령 20개월 미만인데, 우리나라는 왜 발병률이 높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까지 수입했을까 하는 의심을 할 만하다. 그 사람은 그러한 점을 의심해서 한 말 같다."


"인터넷에서 부풀려진 내용까지 책임지라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그동안 정부가 게을리했는데, 위험성을 국민에게 얘기해준 이 왜 공격받아야 하나?"
ⓒ 유성호

- MBC 기자 출신의 심재철 의원이 "광우병 괴담은 마치 '비 오는 날 벼락 맞을 수 있으니까 외출하지 마십시오'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와 똑같다"고 했는데….

"미국산 쇠고기를 바로 그 벼락으로 치자. 1년 내내 벼락이 없던 나라에 갑자기 벼락을 들여왔다면 그걸 수입해온 사람들이 국민에게 '벼락이 치면 어찌어찌해야 한다'는 걸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정부가 그동안 그걸 게을리했는데, 벼락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얘기해준 <PD수첩>이 왜 공격받아야 하나? 위험이 있는데도 불안하지 않다고 하는 것과 이런 위험이 있다는 걸 얘기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옳은지는 자명하지 않나?"


- '쇠고기 수입'에 대한 후속편을 준비하고 있나?
"2주 정도 지난 후에 후속편을 방송할 계획이다. 미국 촬영분은 거의 소화됐고, 방영 이후 국내에서 취해진 조치들, 검역조건이 갑자기 변한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 프로그램 방영이후 인터넷에서 광우병과 관련해서 다소 부풀려진 내용까지 확산되고 있다. 후속편에서 국민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들을 짚을 필요는 없을까?

"우리가 방송에서 하지 않은 얘기, 인터넷에서 부풀려진 부분까지 책임져야 하나? 하지만 책임지라는 요구가 많다면 그렇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쇠고기 수입 문제를 우리가 다 책임지고 보도해야 하나? 그런 건 정부나 다른 매체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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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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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 토론> '친일인명사전 논란' 편
ⓒ iMBC 홈페이지 갈무리

뉴라이트의 '두꺼운 얼굴', 경악스럽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인이 되고 싶어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을 뿐이다."

"그렇게 친일파로 낙인찍으면 그 후손들이 입을 타격은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위의 두 마디가 나온 순간부터, 더이상 <100분 토론> '친일논란' 편을 지켜볼 이유가 없었다. 저게 바로, 소위 말하는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의 수준이다. 나름대로 배웠다고 배운 사람들이 '초딩'만도 못한 소리를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경악했을 따름이다.


'친일인명사전'은 막아야겠고, 하지만 마땅히 할 말은 없고, 그런데 방송에 나왔으니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다물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이해한다. 명분이 없으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만가지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변함없는 것은 하나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된 그 치들이 일제의 부역자였다는 사실이다.


일단, <100분 토론>에 참석한 뉴라이트 논객 주익종·홍진표 두 사람에게 느낀 점이 있다는 것부터 밝히겠다.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보수'를 내걸고 출세를 하려면, 얼굴이 대단히 두꺼워야 한다는 점이다.


봐라. "군인이 되고 싶어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으며, "친일파로 낙인찍으면 후손들이 입을 타격은 어떻게 책임지겠느냐"는 이야기, 저렇게 중학생 이상만 돼도 '쪽팔려서' 못할 이야기를 공중파 방송에서 이야기 하려면, 얼굴이 얼마나 두꺼워야 할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도 짚고 넘어가보자.


주익종과 홍진표의 어이없는 물타기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인이 되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했다. '군인이 되고 싶은데', 갈 데는 일본 육사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유명한 '관동군' 출신이었다.


관동군은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군이었다. 일본군의 핵심 중에 핵심이라는 사실을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다. 관동군, 결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천황 폐하'에 대한 충성도 충성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독립군들을 때려잡을 수 있는 다부진 마음가짐도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단지 '군인이 된 소원풀이' 차원에서 했을까? 아니다. 얼마나 출세를 하고 싶어했다는 이야기일까? 출세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에, 그저 일제의 탄압에서 조국을 독립시켜보겠다고 남의 땅에서 풍찬노숙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을 열심히 때려잡았을 것이다.


여기서 뽑아낼 수 있는 포인트가 하나 있다. 친일 문제에 대해 물타기하며, 친일을 거론하면 무슨 김정일 하수인에 좌빨 타령이나 앞세우는 사람들이 간과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는데, '보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다.


'국가'라는 조직체 그 자체에 맹목적인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틀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다. 이런 정도의 개념 파악조차 못하니, 저렇게 무식이 철철 넘치는 이야기를 공중파 방송에서 얼굴 두껍게 펼치는 것이리라.


일본군의 핵심 중에 핵심 '관동군' 소속으로서 독립군을 때려잡은 박정희 중위, 그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이렇듯 부재됐다가 훗날 본인이 탱크 몰고 거사를 성공시켜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느낀 것 같다.


그런데 그 책임감도 다분히 변태적이다. "박정희, 내가 곧 국가"라는 이상한 신념을 안고 유신이니 하는 기형적인 독재체제를 완성시킨 것이다. 보수란, 공동체에 대한 정상적인 책임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그런 기본 개념조차도 못 지키는 사람들이 '보수'입네 앞장서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닌 것이다.


다음은,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의 순서다. '후손들이 입을 피해'를 이야기했다. 물론, 친일파 후손들이 피해를 입는 것 같기는 하더라. 이런 피해 말이다.


"1997년 이완용의 증손자가 ‘땅 찾기’ 소송에서 이긴 뒤 친일파 후손들의 토지반환 소송이 봇물을 이뤘다. 주로 해방 직후 혼란기에 소유권이 국가로 넘어간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이었다.

2일 법무부 자료를 보면,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 송병준, 이근호, 이재극, 윤덕영, 이해창, 이기용, 남장희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은 모두 35건이다. 6건은 국가가 승소했고, 9건은 패소했다. 소를 취하한 6건을 뺀 나머지 14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한겨레> 2007년 5월 3일자 기사 <친일파 후손 ‘땅 찾기’ 35건 중 9건 승소>의 일부


아니, 조상님이 물려준 땅을 국가가 강제로 빼앗아가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재벌이 '상속세 폐지'를 이야기하는 마당에,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데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국가가 감히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귀한 재산을 빼앗은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피해일까?


하지만, 그 땅들은 일제 치하에서 수난당하던 민중의 피눈물이었다. 이완용은 중국에도 땅을 소유하고 한성은행의 주식도 대량으로 소유하는 등 재테크의 달인이었더라. 이완용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스스로 그 많은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 학계의 연구결과다.


특기할 것은, 이완용의 부정비리 의혹이다. 경인철도 부설과 관련해 1만 5천 달러의 뇌물을 받았고, 전라북도 관찰사 시절에는 공금을 횡령했으며, 1909년에 한미전기회사가 설립될 당시 보조금 40만원과 철도보수금 70만원을 착복하는 등, 부정비리 행태가 대단히 다양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뉴라이트'는 '후손들이 입을 피해'를 공중파 방송에서 주장했다. 참으로 엄청난 피해다.


뉴라이트에게 권하는 책 한권, <비시 신드롬>


친일 부역자들은,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패한 뒤에 성립된 괴뢰정부 '비시정부' 부역자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다. '비시정부' 부역자들이 어떤 말로를 보였는지를 간단히 보여주겠다.


*페탱(1856~1951) - 프랑스 육군원수, 비시정권 총리, 국가주석 역임. 1945년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감형되어 섬에서 복역중 사망.

*라발(1883~1945 )-비시정부 부총리, 법무장관, 1942년 총리 역임. 전범으로 처형됨

*다를랑(1881~1942)-비시정부 해군장관, 해군원수, 부총리, 외무장관, 총사령관 역임. 1942년 11월 암살.

*오팡(1894~1982)-비시정부 해군장관, 해군총사령관 역임. 전후 5년형을 선고받음.

*아브리엘(1879~1962)-비시정부 알제리총독, 해군차관. 10년형을 선고받고 1947년 가석방.

*든쯔(1881~1945)-육군 군단장, 1940년 파리 군정총독, 레반트지역 총사령관 역임. 전후 사형선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감옥에서 병으로 사망.


 
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 이명박 대통령과 뉴라이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휴머니스트

비시정부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의 '말로'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이런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 친일파들은 180도 달랐다는 생각은 안 드나.


그런데 무슨 '후손들의 피해'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국민들이 '착한 사람들'인 것인지, 아니면 역사와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그만큼 둔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고맙게 생각해야지 그깟 인명사전에 이름 석자 올리는 것에 '후손들의 피해'를 이야기해서야 곤란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주익종·홍진표씨를 비롯한 자칭 '뉴라이트'들에게 책을 권해보고 싶다. 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이라는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시 신드롬'이라는 표현은 프랑스인들이 비시정부가 성립됐던 4년의 역사를 얼마나 치욕스럽게 생각하는지, 그 정도가 어땠기에 정신적 상처로까지 번졌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10만명의 나치 부역자들을 단죄했을 것이다. 이들을 옹호하는 말 한마디만 하면 공직이든 학계에서든 추방당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공동체의 의미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공직을 임명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일왕'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대통령이 우리의 현실


불행히도 우리는 뉴라이트를 '공중파 방송'까지 출연시켜가며 그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며, 인명사전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 산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과'를 운운하며 '친일인명사전'의 의미를 희석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 이유는 아래의 사진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방일 도중 일왕을 만나 깍듯하게 인사하는 장면이 포착된 뉴스, 유투브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자기 마음대로 '용서'를 운운하며 일왕에게 깍듯이 고개숙여 인사하는 대통령을 둔 우리의 현실에서 뭘 바라겠는가. 이런 사회에서 '뉴타운'이라는 구호 하나에 쏙 넘어가 몰표를 주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뉴라이트는 그렇게 열낼 이유가 없다. '대안 국사교과서'도 거리낌없이 출간했으며, 권력까지 틀어쥐었다. 얼마나 영원한 권력을 노리기에 그렇게 열을 내는 것일까? 궤변은 거기서 그만, 당신들에게 남은 것은 그 가슴 속에 양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확인해보는 일밖에 없다. 한번 더 반복하겠다. 어이없는 궤변은 거기까지!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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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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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all.dcinside.com/list.php?id=2008ge&no=16157&page=1


하도 화딱지가 나서 글을 쓴다. 도대체 홍정욱이란 파렴치한이 객관적으로 노회찬을, 그것도 서민동네인 노원에서 꺾은 이유가 뭔가??


이 참에, 여러 언론을 통해 또는 스스로 22살에 펴낸 자아도취서(!)를 통해 홍정욱 자기 스스로 얘기한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이제 그는 사전적 의미이던 정서적 의미이던 100% 공인이므로, 국민으로서 그를 검증할 권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자기합리화와 자기과시의 강박관념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홍정욱이 항상 얘기하는 것으로, 자기의 우상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발길을 쫓아 그가 다닌 고등학교인 '초우트로즈마리홀'이란 미국 상류층의 사립학교에 입학했고, 하버드까지 갔다고 한다.




병역-군대문제




비교해보자.


F. 케네디의 아버지인 죠셉케네디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영국대사를 지냈으므로 케네디는 말 그대로 최고 상류층의 아들이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케네디는 미육군에 자원입대를 신청했다. 하지만, 선천적인 척추질환으로 인해서 입대를 거절당하고 만다. 몇 달 후 케네디는 해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이는 황당하게도 그의 아버지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여 질병으로 인해 입대가 거의 불가능한 케네디를 해군에 '꽂아준' 것이었다. (케네디의 큰 형은 2차대전 발발 초기에 미 공군으로 참전하여서 유럽에서 전사하였다.) 해군에 입대한 케네디는 잘 알려진대로, 오키나와 근해의 최전선에 파병되었다. 케네디는 실제 전투에 여러 차례 참전을 하였고, 마침내 전설적인 일화를 만들어 냈는데, 이는 초계선이 일본군의 공격으로 침몰하자, 그 스스로 목숨을 걸고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바다를 직접 여러 차례 헤엄쳐서 전우들을 구해낸 일화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미국 신문에도 대서특필된 역사적 사실이고, 케네디는 이 일로 인해 당시 최고훈장을 수여받았다.) 당시 케네디의 졸병이었던 전우가 했던 말은 진솔하다. "케네디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상류층 사람보다 훨씬 훌륭한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진정으로 우리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으며, 그는 우리가 목숨을 맡길만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라고 진심이 느껴지는 극찬을 한 바가 있다.


반면에, 그의 모든 것을 닮고 싶다던 홍정욱은 어떤가? 직접 쓴 글을 그대로 옮겨보자.


"미국의 영주권을 소지함으로써 병역 면제를 받았던 내가 영주권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한 까닭은 이제 귀국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에서다. 2001년 9월 아내, 딸 지승이와 함께 서울로 돌아온 뒤 나는 더는 한국을 떠나 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방인의 삶을 청산하고 싶었다. 2001년 12월에 입대해 4주간의 훈련을 마친 후 용산초등학교에서 6개월간 전산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면서 법이 정한 병역의 의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7막7장, 그리고 그 후 中)


"
귀국해야 할 때 되었다"가 뜻하는 바는 그 해가 홍정욱의 모친인 양춘자씨가 환갑이 되는 해라는 얘기다. 양친이 모두 환갑이면 외아들은 6개월 공익근무 판정을 받는 것이 그 당시의 병역법이었다. 케네디의 모든 것을 닮고 싶다고 거품을 물던 그!!! 서른둘이 되도록 미국서 편하게 생활하다가 어머니가 환갑이 되자마자 입대를 결심하는 그!!! 용산초등학교에서 늙은 공익으로 갖은 대우를 받으며 6개월 푹 쉰 것으로 '법이 정한 병역의 의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그!!! 기가 막힌다.


정말 조국을 위한다면, 아니 다들 알다시피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뜻이 있던 사람이, 요즘 떠벌이고 다니는 '존경받는 대한민국,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이자 대한민국 남자들 다 가는 군대에 가는 것은 싫었나 보다.


사지 멀쩡하고 미국 사립학교에서 축구부 주장을 역임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공치사에 여념이 없을때는 언제고, 그 젊은 시절에 미국에서 편히 지내다가, '법이 정한 의무'로 초등학교에서 인터넷 뚜뜨리는 것으로 병역을 마칠 수 있는 절묘한 시점에 냉큼 마무리 짓는게 정의로운 대한민국인가?


또한 미국시민권과 영주권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것으로, 미국 영주권 소유자는 당시에도 병역면제 대상이 아니었다. 미국 시민권이 아닌 영주권은 말 그대로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증에 다름 아니지, 국적은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투표권도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번 18대 총선의 홍정욱 후보 공식 홍보물에 '저 군대 제대했습니다.'라고 무지막지하게 크게 광고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6개월간 초등학교에서 전산근무요원으로 공익근무 한 '사실'은 쏙 빼먹은 채 말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법이 정한' 이라는 어구는 후에도 홍정욱의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추후에 헤럴드경제를 인수할 때의 사기행각이 헤럴드미디어 기자들에 의해 드러나 고소 당했을 때 하는 얘기도 어슷비슷하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자.




헤럴드경제인수




홍정욱은 서른 둘의 나이로 50년 역사를 가진 내외경제신문사와 코리아헤럴드를 인수하여 그 이름을 헤럴드미디어로 바꾼다. 천억 가까운 돈이 드는 자금의 출처에 대해 궁금증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인 바, 그는 이런 세간의 의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가장 기본적인 가족들의 도움과 대출로 이 큰 언론사를 인수했다" 라고 7막7장 개정판에서 얘기한다.


그 후 홍정욱은 헤럴드미디어의 기자들로부터 업무상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소당한다. (2004년 5월). 왜냐하면, 홍정욱은 그 당시 내외경제신문사의 대주주이던 신동방에 계약금 조의 푼돈만 지급한 채, 나머지 자금은 내외경제신문사의 천억에 이르는 자산을 담보로 하여 금융권의 대출을 받았던 것이다. 즉, 자기 돈이나 위험 하나 안 들이고 전통있는 큰 언론사를 먹은 것이다. 결국 인수할 시의 자산이 모두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기 때문에 신문사가 망하더라도, 자기는 금전적 손해를 절대 안보는 '손 짚고 헤엄치는' 편리를 보인다. 이와 같은 행태는 무척 비양심적인 행위로, 지금은 법이 개정되어 이런 파렴치한 행위는 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에 대한 비판이 일자 위에 언급한 "인수의 방법이나 절차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불법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라는 특유의 자기합리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홍정욱을 고소한 헤럴드미디어 기자들은 곧 해고되었다.





재산신고




홍정욱이 최근에 자주 했던 말이 '언론사 대주주로서 얼마든지 안락한 삶을 살 수도 있고, 정계진출도 훨씬 쉬운 길로 할 수도 있다'라고 자신의 국회의원 출마가, 자기가 가진 헤럴드미디어 대주주 자격에 비해 험난한, 자기는 이미 그 레벨 이상이라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많이 했다.


언론사대주주 그의 말대로 대단한 거다. 특히나 젊은 나이에 비록 메이져 신문은 아니지만,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상류층의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하여 국회의원 출마시 제출한 재산현황에 대해 알아보자.

홍정욱은 국회의원 출마시 제시한 재산총액을 약 9억원 정도로 신고했다. 부동산과 현금성 금융상품 등을 제외한 주식 평가액을 단순명료하게 5억원으로 신고했다. 홍정욱이 스스로 대주주라고 밝힌 헤럴드미디어의 자산총액은 약 370억원이다. 그리고 최근에 '기쁜 마음으로' 인수한 여성전문케이블TV인 동아TV (지금은 헤럴드동아TV로 사명변경), 그리고 역시 홍정욱이 실제 소유주인 헤럴드AM 등의 총 자산규모는 물경 700억원에 이른다. (이상 2008년 3월 금감원 전자공지참조).


이와 같은 언론그룹 대주주이면서 정작 관련 주식가액은 5억밖에 안 된다? 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초호와 사립학교만을 다니고, 20대 초반에 압구정 한복판에서 상류층만을 위한 회원제 재즈클럽을 운영하고, 월스트리트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활약하기도 한 사람이 노원구에 출마하면서 깐 재산내역이 겨우 9억???


여기서 또 한번 홍정욱식 합리적인 처신이 작렬한다.

홍정욱은 HMX라는 명목뿐인 회사를 만들었다. HMX는 자본금 5억에 홍정욱이 100% 지분을 가진 페이퍼컴퍼니. 그리고 그 HMX가 헤럴드미디어그룹의 관련 자회사들의 지분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그러니 '홍정욱' 개인은 헤럴드미디어그룹의 알짜배기 자회사들의 주식을 직접적으로 소유하고 있진 않고, 홍정욱은 HMX 지분만 액면가로 환산하여 5억원 어치만 갖고 있는 것이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수십조에 달하는 재산을 좌지우지하는 삼성그룹의 후계자 이재용이 자기의 총 재산이 불과 31억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삼성그룹은 비상장사인 에버랜드를 통해서 그룹을 지배하고 있으며,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는 지분 25%가량을 가진 이재용이고, 이를 액면가로 환산하면, 에버랜드의 총자본금이 125억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재용의 총재산은 불과 31억 밖에 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보면 무척이나 똑똑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회가 가진 맹점들은 200% 이상 이용하는 교묘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일개 사기업인 삼성그룹의 대주주가 비슷한 문제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검찰에 불려나가서 망신을 당하는데, 서민을 위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새파랗게 젊은 정치인이 보여준 행태는 정말 파렴치한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노원구에 대한 공약- 두고 보자





홍정욱의 이번 총선 공약은 민망하리만큼 간단했다. '아이들 교육을 최고 수준으로 만들겠다.' 그는 총선 내내 이 얘기만 했으며, 심지어는 명함에도 '노원구 교육1번지'를 자기 이름보다 크게 만들어서 젊은 고학력 유권자를 설득했다. 두고 보겠다. 자기 자식인 1남 2녀를 어디로 진학시키는지, 스스로 자신있다고 하고, 자기가 달성하겠다고 했으니, 자기 자식들은 당연히 스스로 100% 책임이 있는 노원구의 공립학교로 보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겠지? 후에 또 특유의 궤변으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자식들이 더 고생하고 더 크기 위해 다른 세계에서 배우기를 너무나 원해서 노원구의 교육환경은 최고임에도 자식들의 의견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라고 하는지 두고 보자.



봉사활동


지금껏 자기 스스로의 입신양명만을 위해 달려온 것은 여러 언론매체와 스스로 출판한 자가발전용 책에 너무도 자세히 상술되어 있다. 지역방송국의 조그만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결국 '그날의 토론 승리자는 나였다.'로 끝나는 경험이나, 대학생의 신분이지만 예술의 세계에 푹 빠져 매주 뉴욕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미술품 감상에 푹 빠져 살았다는 고상한 취향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책으로 출판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낯뜨겁고 민망한 자기 과시 중에 남을 위해서 봉사했단 내용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그 후에 심심찮게 했던 언론 인터뷰에서도 박애주의적인 경험은 전혀 볼 수 없다. 자기자신의 허영을 위해서, 자기의 이력서에 넣기 위해서 정치를 이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서민행세




이번 총선에 유세하는 것 보니, 귀족적이란 일부의 지적에 대해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아들이 귀족이었냐?'라고 한심스러운 말 바꾸기를 하더만, 그가 쓴 책에 보면,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명한 아버지를 둔 배경이 알려지면서 친구들 사이에 'Korean God'으로 불렸고, 영화배우 아버지의 '고개 숙여지는 배려'로 미국과 한국을 오갈데 비행기 일등석(왕복에 약 천만원 소요)을 이용하였으며, 아버지가 명동 한복판에서 서양음식 외식사업을 크게 해서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았고, 그 자신 또한 스물다섯의 나이에 회원제로 운영되고, 외국의 저명한 재즈뮤지션들이 공연을 하는 극소수의 상류층만을 위한 재즈클럽인 '카멜롯서울'을 압구정동에서 운영한 것을 떠벌이고 다닐땐 언제고 갑자기 '가난한 영화배우의 아들'로 쉬이 바뀌는 몰양심이 애처롭다.




선거과정에서의 비열함



잘 알려졌다시피, 선거 전까지 미국 시민이었던 홍정욱의 부인 손정희(1974년생)는 후보자 등록하는 날 한국인으로의 '귀화신청'을 하여서 현재 한국인이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음. 또한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선 것으로 나타난 노회찬 의원이 홍정욱에게 수차례에 걸쳐 공개토론을 제의하였으나, '하루를 살아도 사자처럼!!'이 자기의 좌우명이란 홍정욱은 켕기는 것이 그리 많았는지 모조리 거부해서 지금 선관위에 고발이 들어가 있음. (후보자간 토론회 참석은 출마자의 의무사항임)




하버드 수석졸업???ㅋㅋ


이거야 말로 홍정욱의 최고 사기 행각을 보여준다. 그의 저서에는 분명히 하버드 동아시아학과에서 'summa cum laude'를 받았다고 적시하였으나. 최근에 그가 선관위에 제출해서 공개된 그의 하버드 졸업장에는 'magna cum laude'로 명백히 적시되어 있다. 하버드 대학의 웹싸이트에서 확인해보면 summa cum laude는 졸업평점이 상위 10%의 졸업생에게 수여되는 것이고, magna cum laude는 상위 20%의 학생들에게 수여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상위 10%도 아니고 20% 정도의 지극히 평범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음에도 자기가 최우수졸업인 summa cum laude로 졸업했다고 책까지 내면서 사기를 치는, 그리고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 정말 파렴치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사실 지금의 홍정욱이 나름 유명인이 된 계기도 평범하게 졸업한 자기가 스스로 거짓말을 해서 하버드 수석졸업이라고 사기를 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이고 책도 출판했으며 여기까지 온 것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게 사기투성이다!! 만약 이 문제도 심각하게 문제를 삼는다면 충분이 법적 책임을 물을만한 중차대한 사기행위라 볼 수 있다!!! 완전 사기꾼이다!!


마약


"언젠가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사실 마리화나를 입에 대기는 했지만 피운 적은 한번도 없다." (7막7장, 103페이지) 어쩌라고!!?? 이 놈의 얍삽함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기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홍정욱의 하버드 재학시절의 한국인 비하는 유명한 것으로, 그 많은 한인학생회나 한국인 관련 어떤 모임에도 일절 나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반갑게 한국말로 말을 걸어도 영어로 응수해서 심지어 교포2세들에게도 배척을 당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이다. 또한 선거과정 내내 와이프를 일절 데리고 다니지 않고 본인의 아버지와 어머니만 데리고 다니면서 했던 변명 '와이프의 사생활은 지켜주고 싶다'는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의 배경도 잘 알려져 있지만, 기록으로 남지 않은 사생활 얘기까지 해서 앞서 언급한 fact들을 희석시키고 싶지 않기에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열반의 경지???ㅋㅋㅋ



홍정욱이 그의 나이 정확히 스무살에 도달했다는 예술적 경지에 관한 스스로의 글이다. 도저히 낯 뜨거워서 볼 수 없는 자기과시뿐인 현학적 수사들로 가득하지만, 역설적이게 혼자 보긴 너무 아까운 우스운 내용들이라 함 읽어보시길


"나는 미처 내 의식을 방어할 겨를도 없이 현실과 표면의 극복이라는 아방가르드의 명제 앞에 십자군처럼 무릎끓어 복종했다. 로트레아몽, 아폴리네르, 발레리, 말라르메, 그리고 랭보의 시적 혁명, 뭉크의 처절한 '외침', 그리고 라이더, 르동의 환상 나는 고전주의 예술의 벽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허물어뜨린 이들의 천재성에 호흡마저 죽이고 감탄했다. 소포클래스와 아우리피네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이미 잊혀졌으며, 쿠르베의 작품 중 '현실주의'란 수식이 들어간 모든 예술은 철저히 부정되었다.나는 마침내 진부한 현실주의의 틀을 벗어나 현대 예술이 제공하는 혁신적인 자유와 도전의 철학으로 내 삶을 정의하려 했었다., 마리네티의 시와 보치오니의 그림, 그리고 키르히너의 선언과 클레의 그림을 통해 이탈리아와 독일의 미래주의와 표현주의에 관한 간단한 일람을 마친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다이즘(Dadaism)에 빠져 들어갔다…"(7막7장; 194, 195쪽) 그리곤 다다이즘에 대한 장황한 설명과 왜 자기가 선택한 다다이즘이 최고인지에 대한 부연


아마 홍정욱 본인이 아는 모든 위대한 예술가를 다 언급한 것 같다. 이쯤되면 단순한 자기과시가 아니라 자기과시에 대한 병적인 강박증이 심각하게 의심되는 환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일가를 이룬 평론가도 쉽게 하지 못할 얘기들을 스스럼 없이 책에다 자랑스레 쓸 수 있는 사람에게 남을 위하는 기본소양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가 아닐까 한다.


이 뿐 아니라, 약관의 홍정욱은 자기과시용 출판물에서 진보와 보수를 논하고, 治世를 정의하며 동서양의 수많은 대문호와 사상가들을 평가한다.




결론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홍정욱은 지상 최고의 위선자라는 것이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스스로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굳이 거창하게 앞에 나서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척 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자기 챙길것만 챙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 홍정욱은 자아도취서(!)까지 내면서 자기가 대단한 존재인양, 정의로운양 행세한다. 하지만, 직접 이 인간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짧지 않은 인생이고, 또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를 하겠다는 인간으로서 가증스러울 만큼의 위선적인 행위를 보여줬다. 그 젊은 나이에 그렇게 많은 사기를 치는 것도 참 놀라울 따름이다.


 

열심히 사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다. 정말 열심히 했던 시기는 미국 유학가서 대학 들어갈 때까지의 3년 정도는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다. 물론 그것도 자기 스스로의 성공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 후는 하버드마케팅에 힘입어 '의무는 최소한으로, 권리는 최대한으로' 누리면서 얍삽하게 살아온 파렴치한의 전형적 인생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만에 하나, 우리나라가 전쟁 등으로 살기가 어려워 진다면 바로 미국으로 도망가 버리고, 후에 특유의 자기합리화를 하겠지. "백방으로 나라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위정자들이 자기만 챙기기에 염증을 느껴 일단 미국의 유력한 지인들을 움직여 한국문제를 해결할 적임자가 나라는 주위의 간청을 받아들여 미국에서의 활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위선자가 싫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대중 앞에서 위선을 떨며 뒤로는 자기 잇속만 챙기는 족속들의 실제 정체는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2008ge&no=16157&page=1




까놓고 말해서 이건 자신감이 아니라 그냥 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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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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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에 걸친 유럽 좌파의 역사를 써내려간 < The Left 1848-2000(제프 일리 지음·유강은 옮김, 뿌리와 이파리)>가 지난달 5일 출간된 이후 한달 만에 3쇄까지 찍어 출판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 The Left >가 5만원짜리의 고가인 데다 책 분량이 무려 1028쪽에 달하는 아주 두툼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높은 판매량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책은 다분히 상업적 개념의 '베스트셀러'라기보다 가치의 개념이 포함된 '굿셀러'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1만원짜리 1만2500부 팔린 셈... 한국 좌파에게 '성찰·미래구상' 텍스트


  
< The Left 1848-2000 >는 영국의 좌파 역사학자인 제프 일리가 150년에 걸친 유럽 좌파의 역사를 한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 뿌리와 이파리

< The Left >는 지난달 5일 출간 이후 3쇄까지 찍었으며, 총 발행부수 3500부 중 약 2500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17일 현재까지).


"고작 2500부 팔렸는데 그것이 출판계의 화제냐"고 묻는 분들은 먼저 이 책의 가격이 5만원이라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 이 책이 2500부 팔린 것은 1만원짜리 단행본이 1만2500부 팔린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의 책이 이 정도 팔렸다면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는 결코 과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처세술·재테크 등 실용서와 왕조 중심의 역사서들이 여전히 출판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The Left >는 영국 좌파 역사학자이자 미시건대 칼 포트 석좌교수인 제프 일리(Geoff Eley)가 마르크스·엥겔스의 시대인 19세기 중반부터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 등을 들고 나온 20세기 말까지 무려 150년에 걸친 유럽 좌파의 역사를 한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원제는 'Forging Democracy('민주주의 벼리기')'이다.


이 책을 두고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와 더불어 '긴 20세기'의 정치사를 다룬 불후의 저작"이라는 국제적 호평까지 나왔다.


이러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주제가 대중적이지 않은 '유럽 좌파의 역사'라는 점에서, 그 분량마저 상상을 초월하는 1028쪽이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인문·사회과학시대가 너무 일찍 저물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중들이 이 책을 선뜻 사서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출판사 측에서도 "원체 두껍고 그림과 사진도 한 장 없고, 대중적으로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라 1000부(1만원 기준 5000부)나 팔릴까 싶었다"고 토로할 정도다. 하지만 < The Left >는 1만원 짜리 단행본 기준으로 1만부 이상 팔렸다. 출간 직후 인터넷시점 등에서 주간 베스트셀러 1∼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언뜻 한국사회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유럽 좌파의 역사를 다룬 책이 이렇게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출판사측의 표현처럼 "출간 시기가 무척 잘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출간 시기는 절묘하게도 '신보수'(New Right)를 내세운 이명박 정권의 공식 출범, 진보정당(민주노동당)의 분화와 맞물렸다. 즉, 보수우파가 다시 집권하고 '진보의 재구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유럽 좌파의 역사는 한국의 좌파진영에 '성찰'과 '미래구상'의 텍스트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김대중·노무현 등 민주파 정부(한국의 보수우파는 이들을 '좌파정권'이라 부른다)에 대한 실망감이 유럽 좌파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장석준 전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이 책의 출간 이후 <프레시안>에 기고한 서평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단순히 유럽 좌파의 여러 흐름들이 역사적 맥락과 상관없이 동시에 한국 사회에 쏟아져 들어온 게 문제가 아니다. 이념의 수용사가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지금 한국 자본주의에는 유럽 자본주의의 여러 시대가 서로 공존하며 중첩돼 있다는 것. 19세기말의 사회민주주의, 1956년의 신좌파, 최근의 신사회운동 등이 맥락없이 수용된 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 우리 자신이 19세기말의 시간대, 1956년의 시간대 그리고 신사회운동 등장의 시간대를 동시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


사상전 부활의 징표?... 사회운동가 출신 번역자의 공도 평가받아야


출판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같이 운동했던 동기의 장례식장에 갔는데 거기서 '지금은 사상투쟁(사투)이 다시 필요한 상황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며 "그런 (밑바닥) 움직임과 이 책의 판매가 맞물려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이 이명박 정부의 등장,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 등이 벌여졌던 때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80 대 20'의 사회가 '90 대 10'의 사회로 변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또 한국사회의 좌파가 향후 진로를 모색할 때 이 책이 좋은 교두보나 소재가 될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사상전 (부활)의 징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관계자는 "일반 독자들을 비롯해 대학 등에서 보조교재나 세미나용으로 많이 구매하고 있다"며 "특히 오는 5월 3일이 68혁명 40주년이라는 점에서 5000부(1만원 기준 2만5000부)까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과 함께 번역자가 국내외 사회운동에 관심과 이해가 깊다는 점도 이 책의 수준을 높이는 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 The Left >를 번역한 유강은씨는 사회운동단체인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에서 5년간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전문번역자다.


이미 그는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2002년)과 <미국 민중사>(2005년), 데이비드 보일의 <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2005년), <미국민중사>,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역으로>(2007년) 등을 번역한 바 있다. 


이 책의 번역에만 약 10개월의 시간을 투자한 유씨는 "90년대 이후 유럽 등 외국 좌파운동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든 상황에서 기존의 외국 좌파운동의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생각에서 번역하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우리는 왕조사 등 흥미위주의 역사가 대부분이다. 이에 진짜 민중이 만들어간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즉 역사는 정조나 세종이 만드는 게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역사책이 하도 간만에 나와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지 않나 싶다."


장석준 전 실장은 "이 방대한 저작을 이토록 성실하게 번역했다는 역자의 노고는 아마도 평범한 박사학위논문 한편보다 훨씬 더 큰 학문적 기여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유씨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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