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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김용민의 그림마당. |
ⓒ 김용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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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에 이명박 대통령과 외환위기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처지가 비슷함을 빗대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현 정부가 출범 때부터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이야기해 왔으니, 정확히 10년 전 정부인 김영삼 정부와 비교당하는 것은 집권세력으로서도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교 내용이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비교의 단초는 최근 차관의 대리 경질로 논란을 빚은 강만수 재경부 장관 때문에 발생했다. 그는 10년 전에 재경부의 전신인 재경원 차관이었다. 다시 말해 IMF 외환위기의 핵심적인 책임 라인에 있었던 사람이다. 강만수 장관은 여권 내에서도 경질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임에도 이번 개각에서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다시 10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잘못된 판단에 의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불과 몇 달 사이에 환율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10년 만에 다시 찾아오는 경제위기라는 말이 엄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비슷한 점들 외에 둘 다 장로대통령이며, 박세리와 박인비의 LPGA 최연소 우승, 박찬호의 활약, 허정무 국가대표 감독에 서태지 컴백까지 인과관계가 별로 없는 공통점도 호사가들의 입을 오르내리며 이명박과 김영삼을 비교하게 만들고 있다.
MB와 YS는 닮은 꼴?
그러나 이러저러한 비슷한 점들이야 우연의 일치이거나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위기를 두고 남 탓을 하는 일치점에 이르러서는 나오던 웃음이 멎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IMF 외환위기가 DJ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탓을 해댄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최근까지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가 DJ탓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이 고약한 '남 탓을 해대는 버릇'이 정확히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와 임기 초에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7%라고 주장하더니, 좀 지나서 6%,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4%대로 하향 수정하여 왔다. 사실 양심적인 경제학자는 모두들 7%의 성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사적으로 공공연히 이야기해 왔다. 경제학자가 곡학아세할 것이 아니었다면 진작 747공약의 허구성을 짚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임기 초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에 대한 그럴듯한 핑계거리가 나타났다. 그것은 고유가 충격이었다(사실 고유가가 아니었어도 7% 경제성장률은 허구의 수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 경제심리만으로도 1% 성장요인이 있다는 극히 비경제학적인 발상만이 난무했을 뿐,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숫자가 747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환율 정책으로 서민들의 물가 고통이 극심해진 다음에야 그들은 7%의 고성장이 어렵다는 것을 실토하고 궤도수정을 하였다. 그리고 고유가 탓을 해대고 있다. 고유가 대책을 잘못 세워 망가진 서민의 삶은 나 몰라라 하고 자신들의 잘못은 없으며 대외경제여건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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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3월 13일 이명박 대통령의 출판기념회에 자리를 함께한 김영삼 전 대통령. IMF 외환위기와 현재의 경제위기를 두고 이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닮은꼴이 새삼 유행이다.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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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는 DJ탓, MB는 고유가·촛불시위 탓
아마 고유가 핑계를 넘어서는 남 탓의 진수는 촛불시위를 탓하는 것일 게다. 747의 엉터리 경제수치 들이밀기 버릇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왔다. 대리경질 논란이 된 자리에 새로 부임한 김동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촛불시위로 인한 경제사회적 손실이 5000억 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 수치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그나마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회가 주변상가의 직접피해비용, 경찰투입비용 등 모두 1조9228억원의 국가적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구체적인 수치를 들이대고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추상적이고 경제적인 손익계산의 방법을 저버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경제적인 이익과 손해를 따질 때 고려하는 요소들은 복잡한 것 같아도 극히 단순한 원리에서 출발한다. 고등학교 경제교과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비용 대비 편익의 계산이다. 이때 공공연하게 수치조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경험에 의해 알 수 있다.
환경론자와 개발론자의 대립을 불러왔던 새만금 개발 논란을 보자. 새만금을 찬성하는 측은 사라지는 갯벌로 인한 기회비용은 최소화하고 개발로 인한 편익은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경제성을 평가했고, 반대하는 측은 이것을 역으로 계산했다. 이런 방식의 문제점은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는' 한반도 대운하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찬성 측의 경제적 편익의 계산 방법은 대표적으로 비용 축소, 편익 극대화라는 공식 그대로였다.
촛불집회의 경제적 손실을 계산한 한경연의 방법은 인간의 어떤 행위에서도 나타날 수밖에 없는 기회비용을 극대화하여 계산하고, 이로 인한 편익은 0원으로 계산해 버리는 아주 무식한 계산법을 사용한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계산법을 가지고 이번 개각에서 살아남은 강만수 장관의 잘못된 고환율 정책이 불러온 경제사회적 비용을 계산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일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시간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별 편익이 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 작정이지만, 아마도 천문학적인 경제 비용이 계산되어져 나올 것이다.
촛불집회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그럼 이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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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국민승리선언 범국민촛불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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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7일에는 이명박 정권의 완장 찬 사나이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이 나서서 지난해 6월에 비하여 올해 관광객 수가 줄어들은 것이 촛불집회 탓이라고 하였다. 이런 식으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쓸 때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고유가로 인한 국제적인 비용 상승은 대한민국에서 경제가 어려워질 때는 원인으로 작용하다가 여행비용 상승이라는 변수로는 절대로 작용하지 않는, 자기 맘대로 나타나는 변수인가보다.
정부는 지난 몇 달 간의 촛불시위가 광우병 괴담 탓이라고 했다. 그래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온간 인과관계의 과학적 추론 방법을 동원하였고, 직접 쇠고기를 시식하여 대한민국 정부 관료가 외국산 쇠고기를 홍보하는 기상천외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정부가 광우병 논란에서는 잘도 들이대던 나름대로의 엄밀한 과학적 추론이 경제 현상에서는 어디로 간 데 없고, 오히려 촛불 괴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당선된 대통령이고, 국민들의 눈높이를 747이라는 허구의 숫자로 높여 놓았으니 이를 주워 담을 핑계거리를 찾는 것은 어쩌면 극히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실정으로 인하여 촛불집회가 벌어졌고, 이러한 민심을 청와대 뒷산에서 바라보면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식으로 태도가 돌변하는 것은 과학적 태도도 아닐뿐더러, 인간적으로도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을 한다는 것, 한 국가의 정권을 책임진다는 것은 남 탓을 해대서는 안 되는 자리에 앉았다는 것을 뜻한다. IMF 경제 위기가 김영삼 대통령 한 사람이 모두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시 최고 책임자가 남 탓을 해대는 모습은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촛불집회로 인하여 어느 정도의 비용 지출은 생각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하여 나라 경제가 결딴이 날 것처럼 이야기하는 태도는 어느 모로 보나 무책임한 태도이다. 더구나 촛불집회를 불러온 실정의 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핑계가 많으면 사람이 초라해진다."
어느 신생 방송사 사장이 초창기 시장 진입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극복해 나갈 의지를 보이면서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일개 방송사 사장도 핑계를 대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나는 대통령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싶다. 자꾸 그런 핑계를 대지 말라던 김건모의 노래가 생각이 난다. 대통령은 지금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