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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싸움>
 

<싸움>라는 제목의 이 영화, 개봉하기 전부터 적지않은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그 화제의 중심에 대부분 여주인공 김태희가 있었다는 것은  이 영화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싸움>과 관련하여 언론과 네티즌들에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김태희의 파격적인 연기변신과 적극적인 영화 홍보활동을 통해 바뀐 이미지다. <연애시대>의 한지승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연륜과 경력에서 월등히 앞선 설경구라는  톱배우가 같이 출연했음에도 이들의 존재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것은 한편으로 그만큼 현재 김태희의 스타성이 지니고 있는 대중적 파급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김태희의 변화 시도는 본인의 의도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싸움>에서 김태희는 연기나 홍보활동에서 이전과는 분명 달랐다. '김태희' 하면 흔히 고고하고 세련된 CF속 공주님을 떠올린다. 그러나 영화홍보를 위하여 김태희는 아침토크쇼(남희석 최은경의 여유만만), 코미디(개그콘서트), 3D 봉사체험 프로그램(체험, 삶의 현장) 등에 잇달아 출연했다.


사실 웬만큼 몸값 귀하신 톱스타들이라면 여간해서 ‘함부로 행차하지 않으시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다. 오늘날 차승원, 임창정 같은 몇몇 배우들을 제외하면, 높은 출연료를 받는 많은 톱스타들이 개인 사정을 내세워 주연 배우의 본분이라 할 수 있는 홍보활동을 외면하는 것을 고려할 때 분명 잘했다.


그러나 김태희는 역설적으로 ‘과도한 영화홍보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여론의 빈축을 사야했다. 홍보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평소에는 TV에 얼굴 한번 잘 비치지 않던 톱스타가 갑자기 신작 영화 개봉이 임박하면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무차별 출연하는 것을 ‘속보이는 행동’으로 생각하는 대중이 결코 적지않다.


특히 기왕 어렵게 출연했으면 프로그램의 취지와 내용에 맞춰 최선을 다해야 했건만, <체험, 삶의 현장>의 사례에서 보듯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시늉만 낸 TV 홍보활동은 오히려 이미지에 마이너스 효과만 초래했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핵심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영화에서의 연기는 어떠했을까. 이번 작품에서 김태희는 분명 많이 노력했다. 영화에서 털털하면서도 다중적인 면모를 지닌 진아를 소화하기 위해, 전력질주 달리기와 발차기는 물론이고, 마스카라로 범벅이 된 망가진 얼굴, 쇠파이프와 자동차 추격전까지 난이도 있는 액션을 소화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영화에서 진아가 보이지 않고 여전히 김태희만 보인다는 사실이다. 극중 진아라는 인물이 <중천>이나 <구미호 외전>같은 전작에 비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기복이 큰 인물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김태희는 다양한 감정연기에서 표현이 언제나 몇가지로 한정되어있다. 감정이 올라갈 경우, 특유의 크고 매력적인 두 눈을 평소보다 더 크게 뜨거나, 목소리를 더 높이는 정도다.


놀라건 슬프건, 감정의 높낮이만이 있을 뿐, 인물의 희로애락을 구분할 수 있는 진폭의 다양함이 없다. 영화를 보면서 한번도 김태희가 '진아'로 보이는 순간이 없었다. 오히려 김태희가 진아라는 인물을 재연하기 위하여 무던히 애쓰고 있다는 인상만이 반복해서 들어올 뿐이다.


배우에게 최대의 찬사는 연기한 배역을 절대 다른 인물이 대신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일 것이다. 굳이 최고의 연기파 배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린 신부>는 문근영에게, <내 이름은 김삼순>은 김선아에게, <색즉시공>은 임창정에게처럼, 그 배우에게 맞는 옷이 있었다.


 
영화에서 진이역을 맡은 김태희

그런데 김태희의 연기를 보면 내내 그 배역에 맞는 다른 배우들을 떠올리게 된다. 띠동갑의 나이 차가 나는 설경구과 미묘한 부조화를 이루고 이혼한 전문직 여성이라는 설정이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물부터 공감할 수 없다보니, 이혼한 부부가 왜 감정의 찌꺼기를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 엮이게 되는지, 왜 사소한 일로 결국 목숨을 걸고 싸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는지 관객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과장된 전개로 치닫고 만다.


<싸움>은 ‘하드보일드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했다. 사랑과 미움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남녀관계의 대전제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먼저 두 인물의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운 심리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한지승 감독은 <연애시대>에서처럼 이혼한 부부 간의 미묘한 애증 관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등장인물들의 ‘싸움’이 만들어내는 소동극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니 남자는 그저 소심한 ‘찌질이’로, 여자는 성격파탄자에 가까운 ‘사이코’로 과장되게 그려질 뿐이다. 미움과 오해가 겹겹이 쌓여 부득이하게 싸움이 시작된 게 아니라, 싸우는 장면을 위하여 미움과 오해를 일부러 양산하는 작위적 구성이 더 큰 문제다.


김태희는 이번에도 작품을 잘못 골랐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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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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