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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한 여자핸드볼 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 MK픽쳐스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임순례 감독과 주연배우들.
ⓒ 나영준

울고 있었다. 2004년 8월 29일, 그리스 아테네의 헬레니코 경기장. 2차 연장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접전을 치러낸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선수단. 이어진 가혹한 승부던지기. 금메달을 넘겨 준 그녀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우리 선수들, 울지 마십시오. 하지만 기쁨의 눈물이라면 마음껏 흘리십시오."


관객은 모조리 유럽인들. 중계와 응원을 동시에 맡아야 했던 최승돈 아나운서는 현장의 감동을 그렇게 전해줬다. 그리고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 '대한민국-덴마크' 경기는 우리 국민이 손꼽은 가장 인상적인 경기이자, AP통신 '10대 명승부'에 선정됐다.


한국의 전통적 효자 종목, 하지만 당시 객관적 전력은 입상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예선 4경기 135점의 가공할 공격력으로 팀 득점 1위, 이어 승승장구 8강과 4강을 넘어 펼쳐진 잊지 못할 결승전. 그녀들은 기어이 우리 시대 최고의 명승부를 수놓았다.


은메달이었기에 더욱 빛났던 생애 최고의 순간


무적(無籍)선수와 은퇴선수까지 함께 했던 그날의 열정과 감동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전작 <세 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일상의 진정성과 보편적 삶의 진실을 들려줬던 임순례 감독이 6년 만에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의 한 영화관. 언론시사회 현장에는 임순례 감독을 비롯해 문소리·김정은·김지영·조은지·엄태웅 등 전 출연진이 함께 했다.


"역설적이지만 당시 금메달을 땄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1등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한 자들이 승리자라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본격 스포츠 영화가 아닌, 스포츠가 결합된 휴먼드라마 형식을 띠고 있다. 이에 많은 자료를 모으고 실제 출전했던 선수들의 인터뷰를 참고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들은 새롭게 창조됐다.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이었지만, 팀 해체로 고단한 현실을 사는 미숙(문소리 분). 게다가 운동선수 출신이라 현실에 미욱했던 남편은 감당 못할 빚에 시달린다. 그 때 찾아 온 옛 동료 혜경(김정은 분)은 대표 팀 합류를 권유한다.


어렵사리 팀에 합류했지만 훈련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감독대행을 맡은 혜경의 독선적인 스타일에 신세대 선수들의 반발이 이어진다. 결국 이혼 경력을 문제삼아 협회는 과거 혜경의 연인이었던 승필(엄태웅 분)을 신임감독으로 앉히고 갈등이 고조된다.


무겁지 않게 그려 낸 '우리시대 아줌마'의 모습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이지만, 팀이 해체되어 고단한 삶을 사는 미숙(문소리 분)
ⓒ MK픽쳐스
 
이혼이 사유가 돼 감독대행에서 밀려난 혜경(김정은 분)
ⓒ MK픽쳐스
 
당시 올림픽에서 맹활약했던 이들 중 많은 이가 '아줌마'였고, 영화는 이를 반영한다. "세대교체가 안 되니 전력이 다 노출된다"는 감독의 비아냥거림, "태릉이 무슨 경로당이냐"며 반발하는 어린 선수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아픔이 이들을 주저앉힌다.

그러나 임순례 감독의 전작에서도 그랬듯 영화는 결코 무겁지 않다. 오히려 쉴 새 없이 생활 속 폭소가 터져 나오며 밝은 터치로 아픔을 승화시킨다. 의도적으로 아픔을 자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음 속에서 녹여낸다.

또 적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 주인공 한 사람을 통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않고 여러 역할이 함께 어울린다. 조연들의 열연도 맛깔나다. 미숙과 혜경의 남편 역을 맡은 박원상과 성지루가 반짝이는 연기를 선보인다.


김지영의 열연도 돋보였다. 서른 넷의 나이에 첫 국가대표에 뽑힌 정란 역. 무슨 역을 해도 벗기 힘든 '복길이' 이미지를 과감한 '뽀글이' 파마로 바꾸더니, 푸짐한 사투리를 섞어 십분 소화해냈다.


배우들이 석달 넘게 고된 트레이닝을 받았던 일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평소엔 가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밥 먹듯' 하던 배우들. 그러나 "점프 잘하는 두꺼운 다리가 그렇게 부러웠다"는 김정은의 말이 영화 속 연기자들의 노력을 대변한다.


온 국민이 결말을 아는 영화, 그래도 흐르는 눈물


 
우리 시대의 진정한 투혼을 그리고 싶었다는 임순례 감독.
ⓒ MK픽쳐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결말을 향해 영화는 내달린다.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유럽심판의 편들기, 상대방의 옷깃만 스쳐도 주어지는 2분 퇴장. 억울했지만 달려야 했다.


전후반 29대 29, 이어진 1차 연장 동점에 이어 2차에서도 나란히 34점을 기록한 두 팀. 19번의 동점을 기록했고 128분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임순례 감독은 경기 장면 촬영시 할리우드식으로 '오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슬로우 비디오를 남발하고, 줌을 사용했으면 보다 그럴싸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살아있고 생생한 경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당시 현장중계를 맡았던 최승돈 아나운서와 강재원 해설위원도 등장한다. 2004년 선수들의 투혼을 전해주던 기억이 새롭다. 임 감독은 중계 전 과정을 녹음해 주어 감사함을 표한다고 전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이곳저곳에서 황급히 눈물을 닦는 모습이 속출한다. '웃지 않고, 눈물 없기로' 소문난 기자들이지만 솔직한 감동에 후한 점수를 주는 이야기들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제18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경기 장면.
ⓒ 대한핸드볼협회

영화는 한편 비주류의 이야기다. 핸드볼이라는 종목 자체가 적어도 우리 사회 스포츠 중에는 찬밥 신세다. 올림픽을 즈음해 아주 잠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뿐, 그 종목을 선택한 이들의 삶은 고되고 지난하다.


임순례 감독은 전작에 이어 낮은 곳의 이야기를 소중히 담아 올렸다. 소중하다고 믿는 것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 그 순간순간이 바로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새해 초 개봉하는 이 영화 속에서 적어도 그런 믿음은 유효하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과 호흡까지 쏟아내며 최선을 다한 이에게, 진정한 승리가 찾아온다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금메달보다 더 귀한 은메달'을 일궈낸 아줌마 선수들을 통해 우리시대의 진정한 투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임순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계산된 눈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 '툭'하고 눈물이 터진다면, 그것이 '기쁨의 눈물'이라면 그냥 흐르게 놔두어도 좋을 법 하다.


 
올림픽 1년 뒤 덴마크를 초청 해 열린 리턴매치.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완승으로 끝났다.
ⓒ 나영준

덧붙이는 글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팀
감독 : 임영철    코치 : 백상서

오영란  문경하  허순영  김차연  장소희  이공주  우선희  김현옥 
최임정  명복희  문필희  허영숙  임오경  오성옥  이상은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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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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