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과 만난 세손 이산.
ⓒ MBC

드라마 <이산>에서는 홍국영과 이산의 만남이 홍국영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정후겸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홍국영이 여러 날 동안의 저울질 끝에 결국 '잘 나가는' 정후겸 대신 '인기 없는' 이산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후 홍국영은 기민한 판단과 대담한 행동으로 세손의 기반을 굳히며 반대파들의 입지를 축소시켜 나간다. 정후겸은 "저 자를 내 편으로 만들든가 죽이든가 했어야 한다"며 이따금씩 아쉬워한다.


드라마 <이산>에 나오는 홍국영의 이미지는 역사 속의 홍국영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 같다. 외모도 그렇고 지능도 그렇고 언변도 그러하다. 외모 하나만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영조 48년(1772) 9월 21일자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과거 합격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시력이 나쁜 영조가 "(홍국영의) 용모는 어떠하냐?"고 묻자 승지는 "매우 준수합니다"(甚精矣)라고 대답했다.


머리 좋고 책은 적당히 읽고 입은 좀 투박하고, 약간은 경망스러우면서도 외모만큼은 말끔한 홍국영의 이미지가 드라마에서도 비교적 잘 표현되고 있는 듯하다. 그에 비해 현재까지의 드라마 방영분을 보아서는, 그의 든든한 집안 배경이나 끝없는 욕심 등은 자연스레 표현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이 드라마에서 극적 효과에만 치중한 나머지 홍국영과 이산의 처음 만남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국영이 어떻게 세손 이산을 보좌하게 되었는지, 세손 이산은 어떻게 그런 '재주꾼'을 측근에 두게 되었는지가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다.


정조와 홍국영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둘의 처음 만남은, 어찌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이후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안 가서 파탄 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쩌면 처음 만남에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만큼은 극적 효과에 치중하기보다는 사실관계에 비중을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홍국영과 정조의 만남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드라마 <이산>에서 세손을 열렬히 사랑하는 홍국영의 이미지를 본 시청자들은 정조가 즉위 이후 얼마 안 가서 홍국영을 내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을 실컷 이용하다가 '단물'만 빼먹고 팽(烹)하는 권력가라고 정조 이산을 오해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의 만남에 대해서만큼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홍국영과 이산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은 비교적 수월하게 도출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합격하자마자 예문관 사관(史官)에 임명된 홍국영이 세손을 보좌하는 세자시강원 설서까지 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처럼 홍국영이 정후겸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이산을 선택하는 대단한 결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과거에 합격한 지 얼마 안 되는 홍국영에게 세자시강원 설서도 겸하라는 임명장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 둘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조실록>을 보면, 국왕 영조가 사관 홍국영을 측근에 두고서 가깝게 대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홍국영은 관계에 진출하자마자 국왕과 세손을 함께 보좌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산>에서는 영조가 세손의 추천을 받아 홍국영을 은밀히 만나게 되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영조와 홍국영이 먼저 만나고 그 다음에 세손과 홍국영이 만난 것이다. 이 시점은 이산이 등극하기 4년 전이었다.


과거에 장원 급제한 것도 아니고 11등으로 합격한 홍국영이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행운을 얻게 되었을까? 단순히 말을 잘해서일까? 그저 머리가 좋아서일까? 홍국영의 집안 배경을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이산>에 자주 등장하는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의 성씨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홍국영은 풍산 홍씨라는 유력한 문벌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경주 김씨인 어머니 쪽도 정순왕후와 이렇게 저렇게 연결된 문벌 가문이었다. 또 홍국영은 영·정조와도 인척관계였다. 특히 정조와는 12촌 인척관계였다.


홍국영, 집안 배경이 든든했다


 
<이산>에서 시니컬한 홍국영으로 분한 한상진.
ⓒ MBC

홍국영이 집권 외척 세력은 물론 국왕 및 세손과도 인척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렇게 빨리 국왕·세손의 측근이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든든한 집안 배경이 그의 출세에 가장 결정적 기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산의 등극 4년 전에 과거에 합격하고 또 세자시강원에 배치된 것은 홍국영으로서는 그 시점으로 보아도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홍국영이 이산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난 것도 아니다. 왕실과 이러저러하게 얽힌 홍국영의 든든한 배경이 두 사람의 만남을 가능케 한 가장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상당히 싱거운 편이었다. 홍국영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서 빈약한 세손을 선택했다거나 혹은 세손을 보좌하다가 한때는 똥지게까지 지게 되었다는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돋우기 위한 극적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튼 두 사람의 처음 만남은 드라마와는 달리 그렇게 싱거웠다.


이걸로 끝인가? 두 사람의 만남이 의외로 싱거웠다는 것으로 이 글은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의 만남이 싱거웠다는 사실로부터 중요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두 사람의 만남은 두 사람의 이별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둘의 만남이 홍국영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홍국영이 처음부터 어떤 원대한 정치적 이상을 품고 세손에게 접근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집안 배경이 좋은 홍국영은 세손을 보좌하라는 임명장을 받았고, 좋은 머리를 바탕으로 이산의 등극을 도왔지만 결국에는 자기 세력의 확대만을 추구하다가 얼마 안 가서 정조의 버림을 받고 말았다.


드라마에서처럼 홍국영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이산에게 접근한 것이라면, 정조 등극 3년만인 1779년에 허망하게 주군의 버림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배경에 힘입어 권력에 접근한 홍국영은 자신을 키워준 그 배경을 위해서만 열심히 일하다가 정조의 버림을 받고 만 것이다. 이는 그에게 별다른 정치적 이상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홍국영이 정조의 버림을 받은 이유


정조가 즉위한 지 얼마 안 가서 홍국영이 정조의 국정운영(특히 탕평책)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은, 홍국영이 애초부터 정조의 국정 비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국영이 단순한 권력욕을 떠나서 보다 더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면, 그 좋은 머리로 정조의 정치적 포부를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국영은 정조의 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정조도 자기처럼 권력에만 연연하는 사람인 줄로 착각했는지 모른다. '책을 대충대충 읽는다' 혹은 '경망스러웠다'는 평가처럼, 그는 사물의 본질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해버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식으로 정조를 대충 이해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정조와의 만남이 '준비된 만남'이 아니라 그저 '우연적인 만남'이었기에, 홍국영에게는 정조의 꿈과 고뇌를 이해할 만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홍국영과 이산의 만남이 그처럼 싱거운 만남이었기에, 그들의 만남은 얼마 안 가서 그렇게 쉽게 파탄에 이르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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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한 여자핸드볼 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 MK픽쳐스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임순례 감독과 주연배우들.
ⓒ 나영준

울고 있었다. 2004년 8월 29일, 그리스 아테네의 헬레니코 경기장. 2차 연장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접전을 치러낸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선수단. 이어진 가혹한 승부던지기. 금메달을 넘겨 준 그녀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우리 선수들, 울지 마십시오. 하지만 기쁨의 눈물이라면 마음껏 흘리십시오."


관객은 모조리 유럽인들. 중계와 응원을 동시에 맡아야 했던 최승돈 아나운서는 현장의 감동을 그렇게 전해줬다. 그리고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 '대한민국-덴마크' 경기는 우리 국민이 손꼽은 가장 인상적인 경기이자, AP통신 '10대 명승부'에 선정됐다.


한국의 전통적 효자 종목, 하지만 당시 객관적 전력은 입상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예선 4경기 135점의 가공할 공격력으로 팀 득점 1위, 이어 승승장구 8강과 4강을 넘어 펼쳐진 잊지 못할 결승전. 그녀들은 기어이 우리 시대 최고의 명승부를 수놓았다.


은메달이었기에 더욱 빛났던 생애 최고의 순간


무적(無籍)선수와 은퇴선수까지 함께 했던 그날의 열정과 감동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전작 <세 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일상의 진정성과 보편적 삶의 진실을 들려줬던 임순례 감독이 6년 만에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의 한 영화관. 언론시사회 현장에는 임순례 감독을 비롯해 문소리·김정은·김지영·조은지·엄태웅 등 전 출연진이 함께 했다.


"역설적이지만 당시 금메달을 땄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1등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한 자들이 승리자라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본격 스포츠 영화가 아닌, 스포츠가 결합된 휴먼드라마 형식을 띠고 있다. 이에 많은 자료를 모으고 실제 출전했던 선수들의 인터뷰를 참고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들은 새롭게 창조됐다.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이었지만, 팀 해체로 고단한 현실을 사는 미숙(문소리 분). 게다가 운동선수 출신이라 현실에 미욱했던 남편은 감당 못할 빚에 시달린다. 그 때 찾아 온 옛 동료 혜경(김정은 분)은 대표 팀 합류를 권유한다.


어렵사리 팀에 합류했지만 훈련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감독대행을 맡은 혜경의 독선적인 스타일에 신세대 선수들의 반발이 이어진다. 결국 이혼 경력을 문제삼아 협회는 과거 혜경의 연인이었던 승필(엄태웅 분)을 신임감독으로 앉히고 갈등이 고조된다.


무겁지 않게 그려 낸 '우리시대 아줌마'의 모습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이지만, 팀이 해체되어 고단한 삶을 사는 미숙(문소리 분)
ⓒ MK픽쳐스
 
이혼이 사유가 돼 감독대행에서 밀려난 혜경(김정은 분)
ⓒ MK픽쳐스
 
당시 올림픽에서 맹활약했던 이들 중 많은 이가 '아줌마'였고, 영화는 이를 반영한다. "세대교체가 안 되니 전력이 다 노출된다"는 감독의 비아냥거림, "태릉이 무슨 경로당이냐"며 반발하는 어린 선수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아픔이 이들을 주저앉힌다.

그러나 임순례 감독의 전작에서도 그랬듯 영화는 결코 무겁지 않다. 오히려 쉴 새 없이 생활 속 폭소가 터져 나오며 밝은 터치로 아픔을 승화시킨다. 의도적으로 아픔을 자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음 속에서 녹여낸다.

또 적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 주인공 한 사람을 통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않고 여러 역할이 함께 어울린다. 조연들의 열연도 맛깔나다. 미숙과 혜경의 남편 역을 맡은 박원상과 성지루가 반짝이는 연기를 선보인다.


김지영의 열연도 돋보였다. 서른 넷의 나이에 첫 국가대표에 뽑힌 정란 역. 무슨 역을 해도 벗기 힘든 '복길이' 이미지를 과감한 '뽀글이' 파마로 바꾸더니, 푸짐한 사투리를 섞어 십분 소화해냈다.


배우들이 석달 넘게 고된 트레이닝을 받았던 일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평소엔 가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밥 먹듯' 하던 배우들. 그러나 "점프 잘하는 두꺼운 다리가 그렇게 부러웠다"는 김정은의 말이 영화 속 연기자들의 노력을 대변한다.


온 국민이 결말을 아는 영화, 그래도 흐르는 눈물


 
우리 시대의 진정한 투혼을 그리고 싶었다는 임순례 감독.
ⓒ MK픽쳐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결말을 향해 영화는 내달린다.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유럽심판의 편들기, 상대방의 옷깃만 스쳐도 주어지는 2분 퇴장. 억울했지만 달려야 했다.


전후반 29대 29, 이어진 1차 연장 동점에 이어 2차에서도 나란히 34점을 기록한 두 팀. 19번의 동점을 기록했고 128분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임순례 감독은 경기 장면 촬영시 할리우드식으로 '오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슬로우 비디오를 남발하고, 줌을 사용했으면 보다 그럴싸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살아있고 생생한 경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당시 현장중계를 맡았던 최승돈 아나운서와 강재원 해설위원도 등장한다. 2004년 선수들의 투혼을 전해주던 기억이 새롭다. 임 감독은 중계 전 과정을 녹음해 주어 감사함을 표한다고 전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이곳저곳에서 황급히 눈물을 닦는 모습이 속출한다. '웃지 않고, 눈물 없기로' 소문난 기자들이지만 솔직한 감동에 후한 점수를 주는 이야기들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제18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경기 장면.
ⓒ 대한핸드볼협회

영화는 한편 비주류의 이야기다. 핸드볼이라는 종목 자체가 적어도 우리 사회 스포츠 중에는 찬밥 신세다. 올림픽을 즈음해 아주 잠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뿐, 그 종목을 선택한 이들의 삶은 고되고 지난하다.


임순례 감독은 전작에 이어 낮은 곳의 이야기를 소중히 담아 올렸다. 소중하다고 믿는 것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 그 순간순간이 바로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새해 초 개봉하는 이 영화 속에서 적어도 그런 믿음은 유효하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과 호흡까지 쏟아내며 최선을 다한 이에게, 진정한 승리가 찾아온다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금메달보다 더 귀한 은메달'을 일궈낸 아줌마 선수들을 통해 우리시대의 진정한 투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임순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계산된 눈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 '툭'하고 눈물이 터진다면, 그것이 '기쁨의 눈물'이라면 그냥 흐르게 놔두어도 좋을 법 하다.


 
올림픽 1년 뒤 덴마크를 초청 해 열린 리턴매치.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완승으로 끝났다.
ⓒ 나영준

덧붙이는 글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팀
감독 : 임영철    코치 : 백상서

오영란  문경하  허순영  김차연  장소희  이공주  우선희  김현옥 
최임정  명복희  문필희  허영숙  임오경  오성옥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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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싸움>
 

<싸움>라는 제목의 이 영화, 개봉하기 전부터 적지않은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그 화제의 중심에 대부분 여주인공 김태희가 있었다는 것은  이 영화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싸움>과 관련하여 언론과 네티즌들에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김태희의 파격적인 연기변신과 적극적인 영화 홍보활동을 통해 바뀐 이미지다. <연애시대>의 한지승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연륜과 경력에서 월등히 앞선 설경구라는  톱배우가 같이 출연했음에도 이들의 존재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것은 한편으로 그만큼 현재 김태희의 스타성이 지니고 있는 대중적 파급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김태희의 변화 시도는 본인의 의도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싸움>에서 김태희는 연기나 홍보활동에서 이전과는 분명 달랐다. '김태희' 하면 흔히 고고하고 세련된 CF속 공주님을 떠올린다. 그러나 영화홍보를 위하여 김태희는 아침토크쇼(남희석 최은경의 여유만만), 코미디(개그콘서트), 3D 봉사체험 프로그램(체험, 삶의 현장) 등에 잇달아 출연했다.


사실 웬만큼 몸값 귀하신 톱스타들이라면 여간해서 ‘함부로 행차하지 않으시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다. 오늘날 차승원, 임창정 같은 몇몇 배우들을 제외하면, 높은 출연료를 받는 많은 톱스타들이 개인 사정을 내세워 주연 배우의 본분이라 할 수 있는 홍보활동을 외면하는 것을 고려할 때 분명 잘했다.


그러나 김태희는 역설적으로 ‘과도한 영화홍보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여론의 빈축을 사야했다. 홍보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평소에는 TV에 얼굴 한번 잘 비치지 않던 톱스타가 갑자기 신작 영화 개봉이 임박하면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무차별 출연하는 것을 ‘속보이는 행동’으로 생각하는 대중이 결코 적지않다.


특히 기왕 어렵게 출연했으면 프로그램의 취지와 내용에 맞춰 최선을 다해야 했건만, <체험, 삶의 현장>의 사례에서 보듯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시늉만 낸 TV 홍보활동은 오히려 이미지에 마이너스 효과만 초래했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핵심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영화에서의 연기는 어떠했을까. 이번 작품에서 김태희는 분명 많이 노력했다. 영화에서 털털하면서도 다중적인 면모를 지닌 진아를 소화하기 위해, 전력질주 달리기와 발차기는 물론이고, 마스카라로 범벅이 된 망가진 얼굴, 쇠파이프와 자동차 추격전까지 난이도 있는 액션을 소화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영화에서 진아가 보이지 않고 여전히 김태희만 보인다는 사실이다. 극중 진아라는 인물이 <중천>이나 <구미호 외전>같은 전작에 비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기복이 큰 인물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김태희는 다양한 감정연기에서 표현이 언제나 몇가지로 한정되어있다. 감정이 올라갈 경우, 특유의 크고 매력적인 두 눈을 평소보다 더 크게 뜨거나, 목소리를 더 높이는 정도다.


놀라건 슬프건, 감정의 높낮이만이 있을 뿐, 인물의 희로애락을 구분할 수 있는 진폭의 다양함이 없다. 영화를 보면서 한번도 김태희가 '진아'로 보이는 순간이 없었다. 오히려 김태희가 진아라는 인물을 재연하기 위하여 무던히 애쓰고 있다는 인상만이 반복해서 들어올 뿐이다.


배우에게 최대의 찬사는 연기한 배역을 절대 다른 인물이 대신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일 것이다. 굳이 최고의 연기파 배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린 신부>는 문근영에게, <내 이름은 김삼순>은 김선아에게, <색즉시공>은 임창정에게처럼, 그 배우에게 맞는 옷이 있었다.


 
영화에서 진이역을 맡은 김태희

그런데 김태희의 연기를 보면 내내 그 배역에 맞는 다른 배우들을 떠올리게 된다. 띠동갑의 나이 차가 나는 설경구과 미묘한 부조화를 이루고 이혼한 전문직 여성이라는 설정이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물부터 공감할 수 없다보니, 이혼한 부부가 왜 감정의 찌꺼기를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 엮이게 되는지, 왜 사소한 일로 결국 목숨을 걸고 싸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는지 관객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과장된 전개로 치닫고 만다.


<싸움>은 ‘하드보일드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했다. 사랑과 미움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남녀관계의 대전제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먼저 두 인물의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운 심리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한지승 감독은 <연애시대>에서처럼 이혼한 부부 간의 미묘한 애증 관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등장인물들의 ‘싸움’이 만들어내는 소동극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니 남자는 그저 소심한 ‘찌질이’로, 여자는 성격파탄자에 가까운 ‘사이코’로 과장되게 그려질 뿐이다. 미움과 오해가 겹겹이 쌓여 부득이하게 싸움이 시작된 게 아니라, 싸우는 장면을 위하여 미움과 오해를 일부러 양산하는 작위적 구성이 더 큰 문제다.


김태희는 이번에도 작품을 잘못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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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이산>
ⓒ MBC
 
드라마 <이산>은 세손 이산의 처절한 생존기다. 말이 좋아 '세손'이지, 지글지글 끓는 돌판 위에 놓인 삼겹살 신세가 따로 없다.
 
앉은 자리는 뜨겁게 달아올라 언제 새까맣게 타버릴지 모르는 데다, 사방에서 뾰족한 젓가락을 들고 찔러댄다. 아차! 하는 순간 저승길 순번 1번이고, 아차! 하는 순간 아버지 따라 뒤주 속에 들어갈 팔자다. 단지 '회사에서 살아남느냐'를 넘어 생존이 달린 게임이다. 이 모든 게 세손의 처세술에 달렸다. <이산>은 '처세술' 워크북이다.

또 <이산>은 세손의 '제왕 수업기'다. 현대로 치면 재벌2세 혹은 예비 CEO의 경영수업기다. 리더십 훈련기다. 영조는 왕이 될 재목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세손을 시험하고, '리더십'이 없다 싶으면 언제든 세손 이산을 내칠 태세다. 냉혹하다.


한편으로 영조는 세손에게 끊임없이 리더의 역할을 알려준다. 훈육한다. 이산은 성장하고, 리더십도 성장한다. 비즈니스 교과서 외전 같은 <이산>이 알려주는 처세술과 리더십.


[그의 처세술] 내 적을 가까이


화완옹주를 우두머리로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을 밝혀낸 세손을 불러 영조가 말한다. "이번 일로 궐 안에 널 음해하려는 자들이 있음이 드러났다, 이제 넌 어쩔 셈이냐?" 세손은 답한다. "우선은 묻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상하다. 꼬리가 드러났는데, 잡아 당겨 몸통을 밝히지 않는단다. 영조가 또 묻는다. "어째서냐?"


"지금 제가 나선다고 해서 지금 저들을 모두 발본색원할 수는 없습니다. 또, 지금 저들 몇몇을 찾아내 벌을 준다고 해도, 언제든 저와 뜻을 달리하는 자들은 또 생기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영조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 정치란 그런 것이다. 임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임금 곁엔 뜻을 달리 하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허나 그 곁엔 반드시 임금을 지키고 보위할 자도 있어야 하지. 허니 넌 이제부터 저들과 맞설 네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잊지 말거라. 네 흉을 잡는 자들을 곁에 두거라. 또 그 곁엔 반드시 네게 길을 보여주는 자들을 심어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느냐? 하지만 세손보다 일찍이 이를 알고 몸소 체화한 이가 <이산>엔 있었다.


이산의 책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다. 홍국영은 다짜고짜 세손더러 500냥을 내달라더니, 그 돈으로 뻔뻔하게 집을 산다. 정후겸 옆집이다. 정후겸은 화완옹주 양자다. 세손을 몰아내려는 노론 쪽 책사다. 세손 책사인 홍국영이 가장 견제해야 할 인물이다.


"내 옆집이라, 어째서인가?" 인사하는 홍국영(한상진)에게 의아한 정후겸이 묻자 홍국영이 뺀질뺀질 웃으며 말한다. "자고로 친구를 가까이하되, 적은 더 가까이하란 말이 있지요."

 
드라마 <이산>
ⓒ MBC
 
"나에게 라이벌이고 되고 도전이 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피하고 싶다. 하지만 리더를 성장시키는 도전이 된다."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도 라이벌일수록 가까이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고단수의 처세술"이라는 것이다.

"더 가까이 두고 연구를 해야만 어떻게 대처할 수 있고 내성도 기를 수 있다. 조직에서 A와 B가 라이벌 관계일 때, A에게 B만 없으면 잘 나갈 거 같지만, B가 없어지면 A도 주목을 못 받고 힘이 빠진다. 그게 라이벌 관계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면이 있다. 배척하고 멀리 할수록 자기가 더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라이벌·경쟁자란 밟고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고 서로를 키워주는 존재다. 현대 사회가 전쟁터도 아니고, 라이벌이란 서로에게 자극을 준다."

옛말에 미운 놈 떡 하나 주랬다. 맞다. 이젠 미운 라이벌, 떡 하나 주면서라도 가까이 하라. 냄새 난다고 피하는 게 수가 아니다. 라이벌이야말로 나를 키우는 '거름'이다.


[그의 리더십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부터 파악하라


문무과 시험을 앞두고다. 영조가 세손에게 묻는다. 문과 시험 시제에 대해 말해 보거라. "과거란 임금을 도와 정사를 펼칠 인재를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특한 세손이 대뜸 말한다. "요순시대의 효행을 논하라는 이 시제는 바람직하지 않사옵니다"고. 세손, 발칙하기도 하지.


대뜸 바람직하지 않다는 세손에게 영조가 묻는다. "너라면 무슨 시제를 내겠느냐?" 세손이 답한다. "저라면 부패한 육조의 관원들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를 묻겠습니다."  긴장을 고조시키며 쿵쿵 울리는 음악들 위로 조정 중신들 얼굴이 뭐 씹은 강아지마냥 일그러진다.


그를 쓰윽 둘러보던 영조가 말한다. "군주의 현명함은 그처럼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있다. 잘 했다."


영조가 물은 건 리더가 제일 먼저 할 일이 무언가다. 영조는 말한다. 현명한 리더는 시급하고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세손은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고위 공무원의 부패를 들었다.


리더가 되려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부터 파악하라.


 
드라마 <이산>.
ⓒ MBC

 

[그의 리더십②] 대답하지 말고 질문하라

 

임금이 신하들과 실무를 논하는 '차대' 때다. 영조가 이른다. 세손이 '차대'를 주재하라. 조정 중신들은 마지못해 고한다. 도성 시장에 허락받지 않고 장사하는 장사치들, 바로 난전이 성행해 문제다. 시전 상인들이 난전을 단속할 권한을 더 강화해 달라.


이를 듣던 세손이 대뜸 묻는다. "난전물 속공권이 무엇입니까?" 대전이 술렁인다. 질문이 날카로워서가 아니다. 너무 바보 같아서다. 세손이 어떻데 저 뜻도 모르고 묻냐는 눈치다.


졸지에 '멍청이'가 된 세손, 굴하지 않는다. 그러건 말건 중신이 하는 설명을 태연히 듣던 세손이 또 묻는다. "시전 상인들이 사사로이 행패를 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난전 단속은 사헌부 등에서 하게 조처를 취한 걸로 아는데, 어째서 시전 상인들에게 그 권한을 강화해 주잔 거냐?" 중신이 그게 관례라 말하자, 세손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다.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묻는다.


"그렇다면 대감의 말은 지금도 시전상인들이 난전을 사사로이 단속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건가요? 게다가 대감의 말은 이를 더욱 강화해주자는 것이고요? (굳어진 신하들 얼굴을 바라보며) 이상한 일입니다. 어째서 호판 대감은 그 막대한 권한을 시전상인들에게 내어주자는 겁니까? 혹, 뒤를 봐줘야 할 시전 상인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거야말로 고도의 리더십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정치력 101>을 쓴 캐서린 K.리어돈은 말한다. 초심자는 모르는 정치 무기라며 "질문을 많이 던지라" 조언한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멋대로 지레짐작할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들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는 대신 그들의 생각을 직접 알아내라. (중략) 어쩌면 여러분은 자신이 상대방을 그 동안 전혀 몰랐음을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상대방의 말 속에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중략) 이때 자신의 질문의 퀴즈처럼 들려서는 안 되며,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명심하라. 리어돈은 말한다.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질문을 많이 던진다." 오죽하면 소크라테스도 '문답법'으로 줄기차게 묻고, 쇼펜하우어도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이라며 말했다.


"질문 공세로 상대방의 항복을 얻어내라."


 
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과 만난 세손 이산.
ⓒ MBC
 
[그의 리더십③] 상사보다 말단 눈치 봐라

<이산> 20회 때다. 세손은 영조에게 묻는다. "오늘 소손의 처결에 대해선 어찌 생각하시옵니까? 혹 소손이 모자라거나 지나친 것이……."


세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조가 대뜸 세손을 나무란다.


"내 너한테 뭐라 했더냐? 임금인 내 맘에 드는 정치를 하지 말라 했다. 누구의 맘에 들어야 한다면 백성의 맘에 드는 정치를 해야 하고,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백성의 눈치를 보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니 네 처결에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있는지 늘 저들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리더는 일을 행하고 나서, 자신이 한 일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야 한다. 리더는 사원들, 나아가 그 정책을 누릴 이들을 살피고 그 정책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는 데 게을러선 안 된다.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일방적 강압, 통제 리더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하게 하는 코칭적 리더가 필요하다. 그건 현재 어느 조직이나 부인할 수 없는 상태다."


그리하여?


"사람들 통해서 성과를 내는 게 리더십이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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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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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Radcliffe as Harry Potter in Warner Bros. Pictures


해리포터 시리즈만큼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 까지도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 있었을까.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처음 이 시리즈가 영화화 되었을 때에는 도대체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이길래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할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고(물론 지금도 이 시리즈의 원작은 읽어보질 못했다), 왠지 어린이 주인공들이 나와서 환상적인 마법이야기를 다룬다는 것 밖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반지의 제왕]시리즈에 열광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도 끝난 현재의 시점에서 5편까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2편이 더 남은 이 시리즈는 여전히 식지 않는 뜨거운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의 시작인 "마법사의 돌"부터 올 여름에 나온 "불사조 기사단"까지 5편의 작품을 모두 봤지만 분명 이 작품은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좋아할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작품임엔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따라붙은 이야기들이 원작과 영화의 비교인데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훌륭한 영화는 무조건 원작에 충실하기 보다는,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충실하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광범위한 원작을 두시간 남짓한 영화에 모두 고스란히 담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원작을 완독한 분들에겐 어떤 식으로 최선을 다해서 영화를 만들어도 불만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으로 영화에 담으려고 하다보면 시간에 쫓겨서 대충대충 담을 수 밖에 없는 단점 또한 있음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Daniel Radcliffe as Harry Potter and Gary Oldman as Sirius Black in Warner Bros. Pictures


그런 의미에서 이 시리즈의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필자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를 정리해보면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가끔은 영화의 스토리가 생뚱맞게 연결된다던가, 가끔은 이해하기 힘든 주인공들의 심리묘사, 바로 수긍이 가지 않는 전개와 인물들 등이 눈에 띄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본다면 그런 잘잘한 문제점들은 그다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군요. 오히려 원작을 얼마만큼 충실하게 만들었느냐 보다는 수시로 바뀌는 이 영화의 감독들로 인해 각기 작품들의 색깔이 약간씩 달랐던 것이 오히려 일부 관객들에게 어색하게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용 영화의 귀재라 할 수 있는 크리스 콜럼버스가 만들었던 1,2편은 아직 한참 어렸던 주인공들과 감독의 성향 때문인지 시종일관 밝고, 귀여운 영화라는 느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3편인 "아즈카반의 죄수"때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어두워져 갑니다.


물론 1,2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버린 주인공들의 영향도 있지만 그동안 다소 무거운 영화를 만들어왔던 알폰소 쿠아론이 만든 이 시리즈의 3편은 시작부터 약간은 당혹스럽게 합니다. 마치 아무생각없던, 철없던 어린 시절을 지나서 슬슬 사춘기를 맞은 주인공들이 거기에 걸맞게 고뇌하고 아파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두려워하는 성장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이 "아즈카반의 죄수"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변해버린 시리즈의 분위기 때문인지 이 3편은 역대 시리즈 중에서 흥행수입이 가장 적었던(시리즈 중에서만 적었지, 그래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어둠의 마왕과의 싸움에 앞서서 어느정도 시리즈가 가야 할 길을 정리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Daniel Radcliffe as Harry Potter, Rupert Grint as Ron Weasley and Emma Watson as Hermione Granger in Warner Brothers

"마법사의 돌"에서의 세 주인공

Rupert Grint , Daniel Radcliffe and Emma Watson in 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

"비밀의 방"에서의 세 주인공

Emma Watson , Daniel Radcliffe and Rupert Grint in Warner Bros. 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아즈카반의 죄수"에서의 세 주인공

Rupert Grint as Ron Weasley, Daniel Radcliffe as Harry Potter and Emma Watson as Hermione Granger in Warner Bros. Pictures

"불의 잔"에서의 세 주인공

Rupert Grint as Ron Weasley, Daniel Radcliffe as Harry Potter and Emma Watson as Hermione Granger in Warner Bros. Pictures

"불사조 기사단"에서의 세 주인공


그런데 4편인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감독이 알폰소 쿠아론에서 마이크 뉴웰로 바뀌면서 영화는 또 한번 색깔이 바뀝니다. 물론 원작의 내용 자체가 네 도전자의 트리위저드컵을 쟁취하기 위한 대결을 다루고 있는 흥미진진한 내용인 점도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3편의 어두운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 소위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볼거리를 시작부터 끝까지 제공합니다. 게다가 그동안 제대로 등장한 적이 없었던, 절대로 그 이름을 부르면 안되는 인물인 볼드모트의 등장은 시리즈의 흥미를 북돋는데 한몫을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역대 시리즈 중에서 볼거리는 가장 화려하고 충실했지만 지난 3편에서 보여주었던 주인공들의 내면묘사 등이 약간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보니 올 여름에 공개되었던 "불사조 기사단"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왠지 4편의 연장선상에서 볼거리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마이크 뉴웰에서 약간은 생소한 데이빗 예이츠로 바뀌었고, 막상 영화의 뚜껑을 열어보았을 때의 느낌은 지난 4편보다 오히려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했던 3편의 분위기로 돌아간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지난 3편에서 보여주었던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정체를 어느정도 실체화한 것이 이번 5편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주인공들이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공포 이상으로 그들에게 엄습해 옵니다. 솔직히 지난 4편을 흥미진진하게 본 분들에게 이번 5편은 또 한번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남을 듯 합니다.  


Daniel Radcliffe as Harry Potter and Katie Leung as Cho Chang in Warner Bros. Pictures

Daniel Radcliffe as Harry Potter in Warner Bros. Pictures

Ralph Fiennes as Lord Voldemort in Warner Bros. Pictures

Michael Gambon as Professor Albus Dumbledore in Warner Bros. Pictures

Emma Watson as Hermione Granger in Warner Bros. Pictures

A scene from Warner Bros. Pictures


이번 5탄의 주요 내용이라면 지난 4탄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볼드모트의 음모가 단순히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이용해 해리포터를 압박해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이용해 그동안 해리를 보살펴주었던 호그와트와 마법부 자체를 불안감에 쌓이게 하며, 그로 인한 불안감을 이용, 해리를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의 시리즈 중에서 가장 심리적인 불안감을 최고조로 다룬 작품이 이번 5탄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 5탄이 어두운 점만 강조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 5탄에 새롭게 가세한 헬레나 본햄 카터(밸라트릭스 역)나 이반나 린치(루나 러브굿 역), 이멜라 스턴톤(돌로레스 교수 역) 등은 시리즈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밸라트릭스 역을 맡은 헬레나 본햄 카터가 이름값에 비해서 약간은 단역인 것이 아쉽지만 왠지 4차원 세계를 사는 듯한 맹한 분위기의 루나 러브굿이나 심술맞은 고집쟁이 할머니같은 분위기의 이멜다 스턴톤은 확실히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데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합니다.


Imelda Staunton as Dolores Umbridge in Warner Bros Pictures

David Thewlis as Remus Lupin and Daniel Radcliffe as Harry Potter in Warner Bros Pictures


아무래도 시리즈가 두편이 더 남아있는 상황에서 영화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며, 점점 밝혀지는 악의 세력의 실체도 어느 선까지 밝히느냐가 이번 5편의 관건이라 하겠는데, 그런 점에선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왜 스네이프 교수가 그렇게도 해리를 미워했는지, 그리고 베일에 쌓여있던 시리우스의 가족사, 해리포터와 초챙의 관계발전, 그리고 본격적으로 볼트모트의 추종자로 활약하게 되는 루시우스(제이슨 아이작스)의 모습, 해리와 초챙의 관계를 약간은 멋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헤르미온느와 지니의 모습 등은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더욱 더 관심이 가게하는 장면들입니다. 하지만 이번 5편의 불만스러운 점이라면, 물론 후반부로 넘어가는 시리즈의 고비에서 어느정도 인물들의 심리를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지난 4편과 비교해 볼거리면에서 너무 부족하며, 너무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치중하다보니 약간은 심심한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원작에선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제목은 불사조 기사단인데, 솔직히 이 영화에서 불사조 기사단의 모습이나 활약이 너무나도 미미합니다. 고작해야 오프닝에서 살짝 등장했다가, 영화가 끝나가는 마지막에 활약하는 모습이 잠시 나오는데, 왠지 그냥 나오는데 의미가 있다 싶을 정도로 적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몇가지 아쉬움을 이야기하자면, 초챙에 대한 해리의 오해가 제대로 안풀린 점, 벨라트릭스와 시리우스와의 관계(친척이었던 걸로 압니다) 설명부분, 볼트모트의 세력들이 해리의 운명을 알게끔 해주는 구슬을 왜 그리도 얻어낼려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 갑자기 등장한 해그리드의 거인 동생, 마지막에 주요 등장인물 중 한명에게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를 약간은 단순하게 표현한 점 등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원작을 못 본 관객들에겐 왠지 이해가 쉽게 가지 않는 몇몇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번 5편을 감독한 데이빗 예이츠가 내년 겨울쯤 공개될 여섯번째 이야기 "혼혈왕자"도 연출한다고 하는데, 이번 5편을 봐서는 대략 어떤 식으로 공개가 될 지 짐작이 갑니다. 그 영화 또한 이번 작품만큼 어두울 것이며, 드라마적인 요소를 강조할 것 같은데, 개인적인 바람으로 그런 것들도 좋지만 좀 더 볼거리에도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다고 4편처럼 너무 볼거리에만 치중하지 말고 말입니다.


Director David Yates on the set of Warner Bros Pictures

"불사조 기사단"을 연출했던 데이빗 예이츠

Daniel Radcliffe and director Mike Newell on the set of Warner Bros. Pictures

"불의 잔"을 연출했던 마이크 뉴웰

Daniel Radcliffe and director Alfonso Cuaron on the set of Warner Bros. 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아즈카반의 죄수"를 연출했던 알폰소 쿠아론

Director Chris Columbus and Daniel Radcliffe on the set of 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

"마법사의 돌"과 "비밀의 방"을 연출한 크리스 콜럼버스


간단하게 그동안 공개된 해리포터 시리즈에 대해서 정리를 해 봤는데요, 이 시리즈의 특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매번 바뀌는 감독의 성향에 따라 영화의 특징이 결정되며, 매번 시리즈가 발표될 때마다 훌쩍훌쩍 커버리는 주인공들 때문에 느껴지는 이질감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다소 아동성향의 1,2편을 지나서 알폰소 쿠아론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춘기의 모습들, 그리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 4편의 마이크 뉴웰(이분은 내후년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을 맡은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의 연출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3편의 분위기로 돌아온 듯한 이번 5편의 데이빗 예이츠까지. 원작을 꼬박꼬박 읽는 분들에겐 그 어떤 작품이 나와도 만족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어차피 원작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담는 것이 힘들다면 "반지의 제왕"시리즈처럼 한 감독이 시리즈 전체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그랬다면 적어도 시리즈의 분위기가 왔다갔다 하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이번 작품에 실망하신 많은 분들은 다음 작품도 같은 감독이 만든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절망(?)하는 분들이 계신데, 개인적으론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같은 배우들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고는 하지만 감독이 바뀌면 그 분위기 또한 바뀌어 버리는게 당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작품은 이번 5탄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으로 보이며, 이번 5탄에서 어느정도 실체를 드러낸 악의 세력들이 다음 작품에선 얼마나 구체적으로 활약하게 될 지도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지난 4편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볼드모트와 그의 추종세력들, 단지 그들만 무찌르면 악의 세력이 없어질 줄 알았던 해리. 하지만 이번 5편에서 해리는 그들 이외에도 견뎌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음을 알게 됩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적들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들까지도 그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무리들의 존재에 해리는 더욱 더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악의 세력이란, 그 존재로도 무섭지만 그 악의 세력이 영향을 미치는 그 모든 것들까지도 자신들은 부정하지만 어느새부터인가 동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동조한다는 것은 바로 해리에겐 무시할 수 없는 적이 된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될 해리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볼드모트가 이끄는 악의 세력과의 때로는 눈에 보이지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들과의 피할 수 없는 전쟁, 다음편이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아직은 혼란스러운 세 주인공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욱 성숙해져 갈 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입니다.  


Rupert Grint as Ron Weasley, Evanna Lynch as Luna Lovegood, Matthew Lewis as Neville Longbottom , Emma Watson as Hermione Granger, Daniel Radcliffe as Harry Potter and Bonnie Wright as Ginny Weasley in Warner Bros. Pictures


-- 출처 : 네이버 영화(http://movie.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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