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란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영화 '원스어폰어타임', 성동일 등 조연 배우들의 감초 연기가 빛을 발하면서 관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 남소연

인물에 대한 이미지는 강하고 견고하다. 한 번 단단히 각인된 그것은 늘 기억의 잔상이 되어 머릿속을 맴돈다. 그 인물이 연예인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비비안 리를 생각하면 '스칼렛 오하라'가, 심형래하면 '영구'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잊히지 않는다는 면에선 한편 고맙지만, 상황이나 행동의 변신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에서 고착된 이미지는 발목을 잡는다. 문화관광부장관 내정자이지만 아직 노인들 사이에선 '김회장네 둘째 아들'로 기억되는 유인촌의 경우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 성동일(42)은 어떤 배우일까. 드라마 <은실이>로 혜성같이 떠올랐고 이후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그. 간간이 토크쇼에서 입담을 과시하고 몇몇 드라마에서 조연을 맡아오던 그가 요즘 다시 바빠졌다.


한국영화의 침체기라는 시기. 지난 설에 개봉한 <원스 어폰 어 타임>이 잔잔한 재미로 관객몰이에 성공했고, 극중 성동일은 주연 배우만큼 얼굴을 자주 드러냈다. 또 새로운 의학 드라마의 재미를 열었다는 <뉴하트>에서는 가슴 따뜻한 의사로 열연하며 기존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토크쇼 녹화를 위해 스튜디오를 찾은 성동일을 만났다. 밤샘 촬영을 하고 몇 시간 눈을 붙이지 못해 피곤한 상태. 하지만 독자와 시청자들을 위해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주윤발 비슷하다고? 나야 감사할 따름"

 

 
<원스어폰어타임>의 한 장면.
ⓒ (주)윈엔터테인먼트
 
<뉴하트>의 한 장면
ⓒ iMBC
 
- <원스 어폰 어 타임>이 설을 겨냥한 한국영화 중 유일하게 흥행에 성공했다. 축하드린다. 주연 못지않게 출연 장면이 많던데.

"기분 좋다. 허허허. 예상은 못했다. 사실 난 대본대로 갔을 뿐인데 중간 중간 연결을 해주는 역할이라 그런지 많이 들어내지 못한 것 같다. 덕분에 많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연기력이 좋아서 많이 살린 건 아니냐는 질문에). 그건 아니다. 감독님이 돈 되는 걸 안 거다. 하하하."


- 극 중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영웅본색>의 주윤발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인가?

"쑥스럽게 내가 그럴 순 없고, 아마 비슷했다면 감독님이 하신 게 아닐까. 그 장면도 그저 대본에 충실했을 뿐이다. 슬로우로 나오고 하니 그렇게 보였나보다. 그리 봐주시면 나야 감사할 따름이다. 하하하."


- 아직 못 본 분들을 위해 영화 소개를 하자면.

"사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거창한 역사의식을 가진 영화는 아니다. 큰 감동이나 사랑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남은 설 세뱃돈으로 편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상스런 욕이나 잔인한 장면이 없는 가족영화이니 보시고 후회는 없을 것이다."


- 드라마 <뉴 하트> 촬영으로 바쁘지 않은가. 어려운 점은 없는지.

"잠을 못 잔다. 말이 의사지 거의 환자다. 게다가 의사 역할이란 것이 나뿐 아니라 다른 출연진에게도 큰 부담이다. 써 보지 않은 용어들도 그렇고…. NG가 많이 난다. 일주일 내내 날밤을 세운다. 농담으로 주소지를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성동일'에 거는 웃긴 이미지, 때론 부담스럽다"

 

 
ⓒ 남소연

- <뉴 하트>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로 출연하는데 만족하는가?

"많이 만족한다. 뭘 보고 의사 역을 주셨는지 모르겠다. 평소 이미지 대로라면 마사지사나 수의사 역할이 올 줄 알았다(웃음). 길을 지나가면 ‘성동일이다’라고 하지 않고, ‘이승재 선생이다’ 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공부 안 하고 살던 이에게 좋은 역이 왔다.”


- 덕분에 그동안 가져왔던 이미지에서 많이 탈피한 것 같다.

"원래는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재미있는 역할을 해 줄 거란 기대를 했는데 거부했다. 그럼에도 다시 그쪽으로 갈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때때로 카메라 앞에서 '놀아버릴까' 하는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많이 참고 신경을 썼다. 다행히 시청자들이 잘 봐주시는 것 같다."


- 그럼에도 평소 '성동일' 하면 갖는 기대치가 있다. 연기 생활에 부담되지는 않는지.

"부담… 된다. ‘저 놈 나오면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기 마련이니. 물론 시청자나 관객이 원하면 하는 거지만, 나이도 40이 넘은 사람이 매번 재미있을 수야 있을까. 한계도 있고, 또 천부적으로 타고난 연기자도 아니다. 그래서 이제 좀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그의 연기 인생도 어느덧 20여년이 되어간다. 대개의 배우들이 그렇듯 그 역시 데뷔 이전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며 기초를 다졌다고 한다.


- 91년 SBS 공채 연기자로 TV에 데뷔한 것으로 안다. 당시 MBC의 장동건, KBS의 이병헌과 더불어 큰 기대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허허허허….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맞는 것 같다. 캐릭터가 이러니 장기적으론 내가 가장 연기생활이 길지 않을까. 사실 당시 철이 없었다. 좀 더 겸손하고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그게 안돼서 무명 시절이 길었다."


- 빛을 못 보던 시절, 억울하거나 갑갑한 심정이 들진 않았는지.

"그렇진 않았다. 연극하는 선배들에 비하면 나도 성공이 빠른 사람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 운 좋게 길거리에서 캐스팅이 된 것도 아니고, 길에 연극 포스터를 붙이며 밑바닥부터 시작했기에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명 시절이) 길었다, 후회된다'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해봤다. 오히려 행복했다."


- 대학시절 전공이 기계과던데, 연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술이나 먹고 다니고 연기 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인맥도 없었고…. 대학로를 우연히 찾았다가 운명처럼 연극에 이끌렸다. 당시 마지막까지 함께 하던 이들이 오광록·기주봉씨였는데 다 잘 되셔서 다행이다. 사실 그때는 다 인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그는 자신의 출발점이 연극이었던 만큼, 언젠가는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훌륭한 조연배우는 극의 흐름에 방해가 안 되어야


성동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빨간 양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 <은실이>에서 양정팔 역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그. 단역에 불과했던 역할을 주인공 못지않게 빛낸 건 그의 탁월한 설정과 연기력이었다.


- 빨간 양말 역할이 원래는 몇 회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잔머리를 굴린 거다. <은실이>가 97년 작인데 데뷔 후 7년을 무명으로 지내다보니 악이 생겼다. 3회 정도 출연이었는데 속된 말로 '좀 튀어나 보고 끝내자'란 생각을 먹게 된 거다. 다행히 집필을 맡으신 이금림 선생님이 예쁘게 봐주셔서 끝까지 갔다."


- 국민적 인기를 얻었지만 이후 이미지 변신에 실패했는데….

"그랬다. 너무 빨리 이미지를 바꿨다. KBS 주말드라마 <유정>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큰 착각이었다. 몇 년 더 해먹었어야 했는데(웃음). 너무 빨리 바뀌니까 시청자들이 헷갈리는 거다. 그 뒤로 다시 하향세를 탔다."


- 드라마든 영화든 조연 배우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좋은 배우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

"연기관은 '거부감 없이 다가가자'는 것이다. 훌륭한 조연배우는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도 나는 내 분량만 했을 뿐인데, 편집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보였다. 그래서 주연배우 아니냐는 오해를 사고….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내 몫은 관객들이 지루해 하며 몸을 비틀 때 나타나는 감초 역할 정도다."


"연기로 국민 계몽하고 싶은 생각 없다"

 

- 주· 조연을 떠나 궁극적으로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 있는지.

"(단호하게) 없다. 어떤 역할이든 주어지면 찾아가는 재미로 연기를 하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크게 '예술'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즐기는 것이고 그걸로 인해 파생된 돈으로 가족과 먹고 쓰는 재미지, 연기로 국민들을 '계몽' 하고 싶은 뜻은 없다. 심오한 메시지를 주려하고…. 그런 뜻은 때려죽여도 없다. 그냥 직업인 거다. 남 앞에서 폼 잡고, '난 이런 국민배우가 될 거야' 그런 건 아니다."


- 2005년엔 MBC에서 TV MC 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토크쇼 등에도 출연이 잦은데.

"사실 상은 말도 안 되는 거다. 처음엔 내가 연기자인데 이걸 왜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인생을 즐기면서 그것이 부(富)로 돌아온다면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판단 하나에 가족이 라면을 먹느냐 고기를 먹느냐다. 생각을 바꾼 거다.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계속 할 생각이다."


 
ⓒ 남소연

- 시청자나 관객에게는 어떤 배우로 비쳐졌으면 하는지. 주변에 모델로 삼는 선배나 동료 연기자는 없는가?

"'사람 사는 맛이 있는 배우' 정도? 멋있고 똑똑한 사람은 위인전 보면 다 나오지 않나. 모델은 주저 없이 임현식 선배님이시다. 연기를 가지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분이다. 김명곤·유인촌 선배는 늘 계몽하고 뜯어고쳐야 하니 삶을 즐기지 못하신다. 임현식 선배 같이만 되면 나는 성공한 거다."


- 미니홈피를 보면 일일이 친절하게 댓글도 달아주던데. 한편 선량해 보인다(웃음).

"선량하게 살려고 한다. 그래서 전화번호도 17년째 안 바꾸고 있다(웃음). 사실 나 같은 놈을 친형제들도 신경 안 써주는데, 배 다르고 얼굴 본 적도 없는 이들이 관심 가져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가."


- 마지막으로 지켜보는 분들에게 인사를 남겨달라.

"사실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가족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손가락질 받지 않고, 욕먹지 않는 배우가 되겠다. 앞으로 한 30년만 열심히 살겠다(웃음)."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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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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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화사 비단길

신예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는 시사회를 거치며 평론가와 영화 담당기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데다 개봉 첫 주 관객 반응 역시 매우 호의적입니다.


<디워> 이후 관객몰이에 실패하며 침체에 빠졌던 한국영화계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점으로 소폭이나마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어 <추격자>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게 사실입니다. 


<추격자>는 지나치게 여성을 비하하는 대사나 잔혹한 살인장면이 많고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평단과 관객의 고른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2008 한국영화의 첫발견'이란 제하의 기획물을 실은 <씨네21>을 비롯한 관련 잡지, 신문의 큼지막한 기사들이 나온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추격자>가 한국적 스릴러로 주목받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역시 두 주연배우의 강렬한 내면연기에 있습니다. <타짜>(2006)의 아귀역으로 등장해 강한 개성을 보여줬던 김윤석은 영화 속에서 전직 형사이자 출장안마소 포주인 중호역을 맡았습니다.


그가 데리고 있던 여자들이 연쇄적으로 사라지면서 망원동 일대를 헤매던 그는 연쇄살인마 영민(하정우)과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됩니다. 중호와 영민의 대결에 대해 “동네에서 가장 야비한 개가 잔인한 들개와 싸우는 영화”란 김윤석의 <씨네21>과의 인터뷰처럼, 중호는 영민을 동물적으로 추적하고 분노하며 싸웁니다.


전직 형사이자 포주라는 직업 설정에서 드러나듯 잔인함과 집요함으로 무장한 중호에게 영민은 사회악이 아니라 자신의 사업을 방해하는 매우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연쇄살인범을 쫒는 전직 형사란 구도만을 두고 보면 중호는 언뜻 선과 악의 2분법적 구분에서 선(善)의 편에 서 있는 듯하지만, 그 역시 포주로서 여성들을 착취하는 또다른 사회악에 불과합니다.


진리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위험한 싸움에 달려든 중호역의 김윤석은 연기에 대한 동물적 본능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철저하고 진지하게 영화에 몰입해 있습니다.


직업여성들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마 영민을 연기한 하정우 역시 기존 스릴러에서 익히 봐온 살인자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서 까무잡잡한 얼굴에 어리숙한 표정이 대부분인 하정우는 관객의 머릿속에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악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어 더욱 더 섬뜩하고 무섭습니다. 영민은 영화 속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살인마, 이른바 사이코패스입니다.


어리숙함과 잔인함을 함께 표현해야 하는 살인마 역에 하정우는 맞춤양복을 입은 듯 딱 들어맞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용서받지 못한자>(2005), <시간>(2006) 등 몇 편의 영화밖에 출연하지 않은 하정우가 다중적인 살인마 캐릭터를 소화했다는 점은 배우로서 그가 가진 천부적인 영리함과 노력의 결과로 보여집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기존 스릴러 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한 영화의 구성에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추격자>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매우 어렵습니다. 전직 형사에 포주인 중호든 살인마 영민이든 결국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직, 간접적인 가해자입니다.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중호와 영민은 결국 똑같은 인간들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누구도 선한 편에 두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감독은 두 사람 모두를 사회적인 부조리 현상에 대한 가해자로 설정해 영화를 전개하고 남겨진 평가는 담담하게 관객 개개인에게 맡긴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파격적인 구성은 중호와 영민의 현재 상황을 과거사에 의존해 풀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나타납니다. 통상 스릴러는 살인마의 현재 살인 행위의 원인을 과거 가족사나 과거의 행적에서 찾으려 하지만 <추격자>는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거의 주지 않습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범행을 이해시키기 위해 관습적으로 사용돼온 과거사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면서 극의 긴장감과 관객의 몰입을 가져오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추격자>가 스릴러로서 재미와 공포를 유지하면서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때론 코믹하게 때론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호가 처음 조우한 영민을 격투 끝에 붙잡아 경찰에 넘겨도,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경찰 내부에는 실적 다툼만 일삼다 영민을 풀어줍니다. 그들에게 진정 두려운 건 연쇄 살인마에 의한 시민의 피해가 아니라 오물에 피습 당한 시장으로 인해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상부의 문책입니다.


경찰들의 내부 뇌물 고리와 업체 갈취, 전직 형사의 불법영업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고 피해여성의 안타까운 구조 요청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기 일쑤입니다. 나홍진 감독은 영화 속에서 사회적인 부조리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애써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관객들 스스로가 부조리에 대한 냉정한 시선을 갖게끔 유도하고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를 만들기 전, 미국의 TV시리즈 <24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고 간접적인 영향이 있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추격자>는 <24시> 외에도 스릴러로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까지 아울렀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의 코믹함과 리얼리즘에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 류의 날카롭고 잔혹한 스타일 묘사에 영향을 받은 듯 보입니다.


기존의 스릴러를 아우르면서도 독창적인 색깔로 한국적 스릴러 <추격자>를 만들어낸 신예 나홍진 감독에게 침체된 한국영화계가 거는 기대는 당분간 지속될 듯합니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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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무한도전’ VS 배고픈 ‘1박2일’

[OSEN=정덕현의 명랑 TV] 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소위 말해 캐릭터가 잡히면 프로그램은 뜬다. 이것은 진행형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쇼에서 이제는 드라마나 시트콤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 ‘캐릭터가 잡힌’ 프로그램은 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선구자인 ‘무한도전’이 될 것이며, 후발주자로서 급속히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의 집합,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이끄는 수장인 유반장(유재석)은 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들을 배려하고 조절하는 캐릭터다. 올 들어 새로 한 반장선거에서 거성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됐어도 여전히 유반장의 실질적인 반장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팀에서 유반장이 가진 이 캐릭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유반장이 ‘무한도전’ 외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이른바 리얼리티쇼 시대에 그 균형과 수위를 조절하는 유반장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유재석만의 장점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놀아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자칫 방관자 혹은 외부자 역할이 될 수 있는 그를 프로그램 속으로 안착시키는 힘이 된다.

그런 유반장이 이끌어가는 팀원들은 전체적으로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이다. 똥보 정형돈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캐릭터이며, 뚱뚱보 정준하는 식신에서 점점 ‘노브레인 서바이벌’의 바보 캐릭터로 변신해가고 있다. 꼬마 하하는 키가 작은 신체적 결함을 극대화한 캐릭터이며, 퀵 마우스 노홍철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심한 수다쟁이에 저질댄스로 일관하는 캐릭터이다. 거성 박명수 역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만 사실상 힘은 없는 아버지 캐릭터이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 캐릭터들은 나사 하나씩이 풀려 있거나 비하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거성 박명수 캐릭터다. 박명수는 자칫 이 ‘하향평준화된’ 쇼의 팀원들 속에서 자칫 당연한 것으로 매몰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이나 마이너리티한 부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 그것밖에 못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대방의 마이너리티를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박명수 캐릭터의 효용성은 리얼리티쇼 시대에 유재석이 그러한 것처럼 타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가 버럭 댈 때 그 자칫 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재석과 박명수 캐릭터가 특유의 콤비를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피투게더’의 인기에는 이 명콤비의 역할이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무한도전’ 팀의 캐릭터가 구축된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 것이 사실이다. 때론 과장된 느낌의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웃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자란 캐릭터이다. 따라서 부족한 이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때론 이루기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캐릭터의 성장드라마를 만든다. 초반부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에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던 캐릭터들은 이제 스포츠댄스나 드라마 단역 같은 제대로 도전이 될 만한 일에 도전을 한다. 초반부 반 막노동 같은 몸 개그에서 시작한 쇼는 이제 점차 몸치에서 유발되는 몸 개그로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구축된 캐릭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나가고 있다.


배고픈 캐릭터들의 야생, ‘1박2일’

유재석이 쇼의 구성원이면서도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1박2일’의 강호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성격은 다르다. 유재석은 한껏 몸을 낮춰 구성원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진행을 하는 반면, 강호동은 맏형 같은 캐릭터로 철저하게 쇼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강호동 특유의 뚝심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1박2일’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여행이라는 야생의 도전 상황 속에서 수평적인 눈높이보다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재미있게 상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야생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부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은 리얼리티쇼를 그르친다. 그렇기에 필요한 캐릭터가 아무리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캐릭터다. 바로 초딩 은지원이다. 그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딩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한 그의 어떠한 야생 속에서의 행동도 초딩이란 아이의 정서적 본능으로 인정된다. 여기에 합세한 캐릭터가 야생몽키 MC몽이다. 은지원이 아이의 본능을 앞세워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면 MC몽은 말 그대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로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

‘1박2일’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쇼의 부품처럼 잘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MC몽의 야생이 무적일 것 같지만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도시의 샌님 역할을 하는 허당 이승기다. 그는 야생 속에서도 늘 외모를 관리하고 좀 더 편안한 것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에피소드로 연결된 MC몽과 이승기의 탁구대회와 배드민턴 대회는 대결구도를 통해 두 캐릭터를 순식간에 강화시켰다.

여기에 나머지 두 캐릭터인 김C와 이수근의 역할도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김C는 야생을 야생처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짜로 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수근은 정반대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나 야생에 적응을 잘한다. 시골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일꾼의 캐릭터가 되는 것은 이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다. 둘다 야생에서 잘 버틴다는 점이다. 김C는 마치 삶은 고행이라는 것 같은 달관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수근은 실제 생존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1박2일’ 팀원들의 전체 캐릭터는 배고프고 고달픈 자의 본능으로 대변된다. ‘만성피로 프로젝트’라 강호동이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런 본능적 캐릭터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야생 속에서의 투쟁(?)이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맏형 강호동이나 인생 다 산 것 같은 김C,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해줄 것 같은 이수근 같은 캐릭터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다른 캐릭터들 간의 끈끈한 정을 늘 유지해준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중요해진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이제 쇼는 하나의 시트콤이나 드라마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는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유사하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고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캐릭터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 출처 : 오센(www.ose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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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로 새로운 좀비 영화를 탄생시킨 폴 앤더슨 감독은 차기 작품인 <레지던트 이블 2>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 제작자와 각본을 담당하였고 감독은 알렉산더 위트에게 맡겼다. 그가 <레지던트 이블 2>에서 한 걸음 물러날 수 있었던 것은 <에이리언 vs 프레데터>의 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폴 앤더슨으로서는 자신이 만든 <레지던트 이블> 속편에도 욕심이 났겠지만, 이미 ‘에이리언’과 ‘프레데터’는 그 존재감 하나만으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우주괴물을 한 장소에 불러들이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흥행은 보장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창조한 좀비 부대와 인간의 대결이 아닌, (20세기 폭스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우주 괴물의 두 가지 브랜드 상품인) ‘에이리언’과 ‘프레데터’의 대결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그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레지던트 이블 2>에서 완전히 발을 뺀 것이 아니었다. 제작과 각본을 담당했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시 복귀하여 다음 시리즈를 이어나갈 수 있는 꼼수를 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는 개봉 이전에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흥행에서는 손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평론가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워낙 ‘에이리언’과 ‘프레데터’라는 캐릭터가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영화 한 편에서 두 괴물의 특징을 완벽하게 그린다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반(反)에이리언적이고, 친(親)프레데터적인 영화다. 에이리언은 무조건 악이고, 프레데터는 악을 물리치는 존재이기에 선에 가까운 캐릭터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울하게 출발한 영화


 
▲ 포스터 1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영문 포스터
ⓒ 20세기 폭스사

그러나 영화의 포스터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WHOEVER WINS... WE LOSE.”


 
▲ 포스터 2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 20세기 폭스사

이것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전해졌다.
“누가 이기든 미래는 없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우울한 상황이다. 에이리언과 프레데터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든지 인간에게는 상실 그 자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헤드 카피와는 달리 영화는 친프레데터적인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에이리언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왜 싸우는가? 영화에서는 에이리언이 프레데터의 스파링 파트너이고 인간은 그러한 에이리언을 키우는 숙주 역할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프레데터로서는 자신이 위대한 전사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에이리언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 에이리언과 인간은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에이리언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인간과 프레데터가 서로 손을 잡는다. 최강의 종족인 프레데터가 조금 열등한 종족인 에이리언에게 밀리기 시작했을 때, 인간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프레데터와 손을 잡은 것이다.


애초에 질서를 깨뜨린 것은 프레데터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냥을 위해서 인간을 미끼로 사용했고, 사냥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 에이리언이 인간을 숙주로 사용해서 거듭나도록 방관한 것이다.


물론 에이리언 시리즈를 통해서 에이리언에게 형성된 이미지는 이성이 없이 파괴 본능만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다. 이에 반하여 프레데터는 향상된 문명 세계를 창조한 수준 높은 종족으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


영화는 처음에 악을 제공한 프레데터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이용당하던 에이리언의 힘이 강해지면서 에이리언을 공공의 적으로 부각시킨다.


왜 에이리언이 공공의 적이 되어야 하는가?


여주인공 우즈는 에이리언의 힘이 강해지는 상황에 대해서 ‘피라미드는 마치 감옥과 같고 자신(인간)들을 간수(프레데터)들의 총을 가져갔고, 죄수(에이리언)들이 날뛰는 상황’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질서를 찾기 위해서는 간수들에게 총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나약한 종족으로 선택된 인간으로서는 이제 선택의 길만 남았다. 여주인공 우즈는 결국 간수들에게 협조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 여기에서 ‘나의 적’이라 함은 에이리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인간을 공격한 것은 프레데터 종족이었다. 물론 대원들이 흩어진 이후에 에이리언의 공격을 받고 살해되기는 했지만 세바스찬과 우즈는 그때까지 에이리언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목격하지 못했다!


에이리언이 무조건 악한 종족이라는 선입견은 그 생김새 자체가 애초부터 ‘대화가 불가능한 종족’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형성된 ‘나의 적’(에이리언)의 적은 당연히 프레데터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데터는 대화가 통할 수 있다는 일종의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약한 자의 생존 방식, 대화가 통하는 강자와 손을 잡아라?


결국 이렇게 에이리언을 견제하기 위해서 프레데터와 손을 잡기로 결정한 인간은 프레데터와 힘을 합하여 에이리언을 물리쳐야 했다. 비록 약한 전투력이었지만 이후의 싸움에서 많은 보탬이 되었던 것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합이라는 것이 단지 무기만 덜렁 건네주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공공의 적인 에이리언을 함께 퇴치하려는 적극적인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강한 종족들의 싸움에 휘말린 약한 종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둘 중 어느 한 종족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둘 중에 이길 놈에게 붙어야 한다. 만약 에이리언이 대화가 가능한 종족이었다면 인간은 고민했을 것이다. 에이리언과 손을 잡을 수도 없을뿐더러 잡는다고 해도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것은 이미 형성된 캐릭터의 이미지를 통해서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약한 종족인 인간은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한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에이리언의 승리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프레데터라면 승리 이후에 우리 약한 인간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영화는 프레데터와 손을 잡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후는 프레데터가 인간과 대화가 통하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말이 아니면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여주인공 우즈는 이후에 프레데터보다 훨씬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공공의 적을 물리친다. 이러한 활약 때문에 프레데터 종족으로부터 우호의 표시인 창까지 수여받는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이것은 아마도 프레데터 종족의 이익에 부합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프레데터가 계속 절대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인간을 보호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때로 가끔 다시 프레데터가 인간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제물을 요구할 경우에도 기꺼이(!) 제물을 바치면서 안전을 보장받아야 가능한 이야기다.


영화는 결국 에이리언의 패배로 끝났지만, 상황으로 본다면 영화 헤드카피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미래는 사라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늘날 약소국이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우회적으로 표현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에이리언처럼 절대 악으로 비춰지고 있는 국가와 프레데터처럼 대화가 통하는 강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약소국인 우리나라는 다양한 불합리한 조건들, 그리고 우리의 미래까지 포기하면서 강대국과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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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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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기술로 구현된 에반게리온
ⓒ 태원엔터테인먼트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신극장판 <에반게리온:서(序)>가 선정됐을 때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표는 26분 50초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극장판으로 돌아온 가이낙스사의 총아 <에반게리온>은 텔레비전 시리즈 종방 이후 12년이란 시간도 무력화시켰다. 2007년 9월 일본에서 당시 개봉 첫주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올해 1월 10일까지 총 18억 5천만엔(약 132억)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에반게리온:序>의 배경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서 시작한다. '세컨드 임팩트' 이후 살아남은 인류는 '어디에서 밀려오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격체 사도'와 맞서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진행중이다. 동시에 '인류보완계획'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겐도 박사는 아들 신지를 '사도' 타도의 전략기지 '네르후'로 소환한다. 아무런 연습도 없이 초호기에 밀려 탄 신지는 극단의 상황에 내몰리면서 싸우기를 강요받는다. '사도'와 싸우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지를 사람들은 지켜본다. 안타깝게 혹은 불안하게 볼 뿐이다. 개인의 고통은 대의 앞에서 무력했다.


'세컨드 임팩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그 일 이후에 인류의 반 이상이 멸족했다. 사람들은 '세컨트 임팩트'가 남긴 여진을 그대로 안고 '사도'와 싸운다. '사도'를 막지 않으면 '서드 임팩트'는 발발하고 결국 인류는 멸망한다. 인류의 생존을 지키는 것도, 절대절명의 순간도 신지를 움직이는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설득도 이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지는 개인으로 그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그것뿐이고 그것밖에 알려주지 않는다.


'신지'의 존재증명,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88만원 세대'


영화 내내 고군분투하는 신지의 모습에선 신자유주의 내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88만원 세대'가 떠오른다. 한국은(혹은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가공할만한 '세컨드 임팩트'를 경험했다.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경쟁력'을 기르는 일이었고 경쟁은 사회적인 미덕이 됐다. 살아남는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는 '배틀로얄'식 경쟁은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미래에 대한 불확신을 만들어냈다.


지난 15일 모 일간지는 "취업빈곤층 10년만에 두 배"라는 머리글을 실었다. 글은 "일할 능력이 있는데 일자리가 없거나 취업해 있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4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88만원 세대>를 공동 집필한 우석훈 박사는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승자독식의 경제구조에서 '인질'로 잡혀 있다"고 말했다.


 
88만원 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에반게리온:서>의 주인공 신지
ⓒ 태원엔터테인먼트

신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에반게리온에 탈 수밖에 없듯이,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얼마 안 되는 대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신지의 아버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들의 맹목적인 세컨드 임팩트에 관한 두려움은 '인류보완계획'이니 '사도'에 대한 인류 구원과 같은 거대한 담론들을 만들어 내고 88만원 세대들을 압박하는 당위성들을 만들어낸다.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도 이겨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신자유주의체제 내에서 살아남기를 종용받는다. '사도'와 싸우는 동안 받는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듯 한국에서는 이 치열한 경쟁 안에서 느끼는 좌절과 무력감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여기게 한다. 괴로운 순간이 지나가면 희망이 올 것이라 '희망고문'을 하면서.


인턴, 해외연수, 공모전, 봉사, 자격증 등의 취업 5종 세트에서 부모님의 배경과 재산이 추가 된 취업 7종 세트를 갖춰야 취업이 된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갈수록 많은 부분에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길 요구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0년을 기점으로 5년간 대기업 고용은 76만명 감소했다. 그와 비례해 '나쁜 일자리'는 증가했다.


신지는 '사도'와 싸우는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폭주'를 시작한다. 물론 외형적으로 이러한 폭발적인 힘은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 이러한 요소들은 관객들이 다이나믹한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88만원 세대'의 경우 '폭주'가 시국을 타개할 에너지로 발현될지 아니면 자기파괴적인 혹은 사회파괴적인 양태로 발현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건 아무도 조정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24일 개봉하는 <에반게리온:서(序)> 외에도 <에반게리온:파(破)>와 <에반게리온:급(急)>이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완결편까지 합해 총 2편이 남아 있다. 앞으로 개봉할 작품에서 신지의 선택을 지켜보고 싶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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