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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프린스 12화에서 공유의 대사인데...
2007년에는 이 장면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
나도 아직 하고 싶은일을 못만난걸까?


한결 : 고은찬, 있잖아. 나는...

나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해.

개망나니라고 해도, 천하의 쓸데없는 놈이라고 모두가 욕해도,

하아...

최한결은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최한결은 한다면 하는 놈이다,

최한결은 아직... 하고싶은 일을 못 만났을뿐이다,

...정말 한다면 하는 놈이다.

그렇게 나 믿어주는 사람.

너처럼 사랑하는 순간에도 속이고,

버려질까, 아닐까 재고 따지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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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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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프린스 1호점>
ⓒ mbc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여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 해. 갈 때까지 가보자."

지난 27일 막을 내린 MBC 월화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극본 이정아, 장현주, 연출 이윤정)에서 고은찬(윤은혜)이 남자인줄 아는 최한결(공유)이 말했다. 이토록 자신을 내버리는 비장한 사랑 고백에 뭇 여성들이 쓰러졌다. 사랑으로 아무것도 따지지 않겠다다는 순간이었고, 한결이 '남자', '여자'라는 고정관념도 던져버리겠다는 순간이었다.

물론 시청자들은 처음부터 은찬이 여자인 줄 알았다. 그건 시청자와 제작진이 쳐놓은 약속이자 그물망이었다. 그렇게 은찬을 남자로 알면서도 끌리는 마음에 어쩔 줄 모르는 한결을 보며, "은찬이 여자야"라고 한결에게 말해주고 싶어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다물고, 시청자들은 은찬과 비밀을 공유하며 <커피 프린스 1호점>(이하 <커프>)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게 다였을까?

<커프>는 사실 뻔한 로맨스 틀 안에서 뻔한 로맨스를 뻔하지 않게 다뤘다. 커다란 줄거리야 그 동안 숱한 로맨스 드라마와 다를 게 없었다. 어찌 보면 뻔했다. 재벌2세와 가난하기 그지없는 데다 24시간 일해야 먹고 사는 '소녀 가장'의 사랑이야기였다. 거기다 숱한 드라마들이 우려먹은 '깜짝 파티'도 끼워 놓았다. 한결이 남자로 알고 있는 고은찬은 알고 보니 여자였고, 한결은 알고 보니 친자식이 아니었다.

그런데 뻔하지 않았다. 달랐다. 신선했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화면이 예뻐서? 물론 화면은 예뻤고, 독특한 음악이 딱 맞는 순간에 휘감았다. 감각 있는 연출은 어떤 드라마보다 돋보였고, 개성 있는 꽃미남 조연들도 예뻤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르게 배우들은 즐겁게 화면 속에서 놀았고, 그 에너지는 화면 밖으로 그대로 전달됐다.

하지만 <커프>는 달랐다. 연애에 대처하는 남자 여자의 자세가 달랐고, 남자와 여자를 바라보는 여자, 남자의 자세가 달랐다. 이 드라마가 보여준 남자와 여자는 여느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남자와 여자가 아니었다. <커프>에선 남자가 여자 같았고, 여자가 남자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물처럼 흘렀다.

이런 여자, 이런 연애 본 적 있나?

▲ 고은찬 역을 맡은 윤은혜와 최한결 역의 공유
ⓒ mbc
<커프>의 고은찬은 어떤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던 여성 캐릭터였다. 명랑하지만 긴 머리를 날리지도 않았고, 순수하지만 여자답지 않았다. 되레 남자다웠다. 오죽하면 한결은 초반에 고은찬을 남자로 철썩 같이 믿었다. 그가 여자라고 말하기 전에, 그는 한결에겐 남자였다. 세상 시선에 익숙한 한결 눈에 고은찬은 영락없는 남자였다. 그건 은찬이 남자들만 하는 행동을 해서였다.

은찬은 짧은 커트 머리에 티셔츠를 걸쳐 입고 남자처럼 걷고 남자처럼 말했다. 피자는 여러 조각을 겹쳐서 한꺼번에 먹고, 자장면은 앉은 자리에서 서너 그릇은 너끈하게 해치웠다. 심지어 단무지로 자장면 그릇에 묻은 자장을 싹싹 긁어 먹으며 힘은 어찌나 센지 술 취해 쓰러진 한결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날랐다.

여자들 고유의 특권처럼 음식을 깨작거리거나 보이지 않게 입에 쏙 집어넣고 우물거리지도 않았고, 조금만 무거운 것 앞에서도 연약한 모습으로 쓰러지지 않았다. 고은찬은 여자가 하지 않을 짓만 골라했다.

<내 이름은 삼순이>가 뚱뚱하고 입이 거친 여자 캐릭터로 '로맨스' 드라마가 보여주는 여성 캐릭터에서 한 단계 나갔다면, <커프>는 아예 남자 같이 말하고 먹는 여성캐릭터로 서너 단계는 더 나간다. 그리고 그런 은찬을 한결은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나풀나풀 긴 머리를 나부끼며 여성스럽기 그지없던 유주를 좋아하던 한결이 문득 정반대로 남자 같은 은찬을 사랑한다. 남자로 알면서 사랑하고, 은찬이 여자로 밝혀진 뒤에도 '여자답게' 바꾸라거나, '여자애가 그게 뭐니'로 은찬을 사회가 원하는 '여성형'으로 바꾸려하지 않는다. 이미 그에게 '여자답다'는 단어는 없다. 고은찬은 그냥 고은찬이다.

<커프>는 묻는다. 왜 고은찬 같으면 여자가 아닌데? 왜 사랑받지 못하는데? 여자답다는 게 뭔데? 남자답다는 게 뭔데?

어떤 왕자님 드라마에서도 여기까지 나아가진 않았다. 선머슴 같던 여자는 왕자님을 만나 변모했다. 미운 오리가 드레스를 입고 백조로 환골 탈퇴했다. 왕자는 공주차림으로 변신한 신데렐라와 사랑에 빠졌지, 향단이 차림 그대로인 무수리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근사한 미남이 척 보면 남자로 보이는데다 꾸역꾸역 먹는 먹보인 여자와 사랑에 빠질 확률은? 낙타가 바느질할 확률보다 희박했다. 그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무에서 오이를 창조하는 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커프>는 '여자답다, 여성스럽다'란 개념을 조롱했다. 있는 건 여자답다가 아니었다. 그 사람다우면 됐다. 그래서 "은찬스럽다, 한결스럽다"였다. 여성, 남성 이전에 각 개인이 존재한다고 말없이 말했다.

청혼도 달라, 결혼도 달라

▲ 최한성 역의 이선균과 한유주 역의 채정안
ⓒ mbc
한성(이선균)과 유주(채정안)의 연애는 '아주 오래된 연인'이지만 '아주 오래된 연애' 방식과 달랐다. 다른 남자와 살다 돌아온 여자를 한성은 여전히 사랑했다. 그런 유주의 과거는 말하면 큰일 날 유리잔이 아니라, 툭하면 꺼내서 씹어댈 농담처럼 자리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걸로 만들어버리며 그들은 지난 일을 넘겨버렸다. 그 남자를 만나기 전 '과거'로도 결혼이 뒤집히고 관계가 깨지기 일쑤인 여느 드라마나 여느 일상과 달랐다.

그리고 유주는 우연히 임신했다. 결혼은 꿈도 꾸기 전이었다. 보통 드라마에서 결혼 전에 임신한 여자들은 불안에 떨며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남자가 책임지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전전긍긍하다 남자에게 말했다. 다들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임신했는데도 남자가 결혼해주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외쳤다.

하지만 <커프>는 달랐다. 정반대였다. 임신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문제였다. 내가 그와 결혼하고 싶은가? 아니라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살짝 내비쳤다. 싱글맘도 불사할 태세였다.

둘이 결혼을 결심하는 과정도 그랬다. 보통 청혼은 남자의 전유물이었다. 멋지게 반지를 준비하고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커프>는 그걸 멋지게 뒤집었다. 불현듯 무릎을 꿇은 건 유주였다. 프러포즈하는 말도 그랬다.

"별도 달도 따주겠다는 말은 못하겠다. 그리고 미안한데 찬 물에 손도 담그게 될 거야." 보통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하는 거라고 알려진 이 대사를 유주가 태연히 말했다. 그건 동반자적인 삶으로 초대처럼 보였다. 우리에게 굳은 여자와 남자관계가 경쾌하게 비틀렸다.

결혼식도 달랐다. 결혼식 날짜로 잡은 날, 한성의 부모가 바빠서 그 날 귀국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가족이 중요한 한국사회에서 보통 이럴 때 대답은 하나다. 결혼식 날짜를 미루고 부모가 모두 참석할 수 있는 날짜를 잡는 길이 유일했다. 결혼에서 중요한 건 당사자가 아니라 부모였다. 그러나 <커프>는 달랐다. 꼬장꼬장할 할머니조차 관례를 단번에 뒤집었다. "그것들 기다리다간 결혼 못해. 그냥 해." 갈등은 없었다.

부모가 참석할 수 없다는데도, 한국남자 한성은 되레 반색하며 반겼다. "저희야 그럼 좋죠." 그리하여 둘은 결혼하는 당사자 시간이 우선인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결혼식을 보여줬다. 부모 없는 결혼식을 본 적이 있나?

ⓒ mbc
<커프>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녀관계에 관한한 어떤 드라마보다 전복적이다. 하지만 힘주지 않는다. 별 갈등 없이 아무렇지 않게 깬다. 상식처럼 알던 고정관념을 사뿐하게 즈려 밟고 건넌다.

한결이 바리스타를 꿈꾸며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은찬에게 말한다.
"네가 나 사랑해서 뭔가 포기하는 거 싫어. 내가 힘이 돼서 네가 더 성장하고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힘은 여자가 주고, 성장은 남자가 하던 관계를 깬다.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사랑이란 이름으로 양보하고 희생하긴커녕, 서로가 서로를 떠받히며 성장하는 관계를 꿈꾼다. '내조'라고 일컬어지며 보통 여자가 말하던 대사를 남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래서 별 수 없는 '한국 남자'라서 등장하는 갈등이 이들에겐 없다. 이들은 그냥 사랑하고, 그냥 성장한다.

<커프>야말로 틀에 박히지 않다 못해, 틀을 깨버리는 신선한 로맨스를 보여줬다. 어떤 드라마에서 이토록 고정관념 없는 사랑과 고정관념 없는 여자, 남자를 보여줬던가? 그것도 이처럼 유쾌, 상쾌, 통쾌하게?

그래서 <커프>는 여자가 꿈꾸는 판타지의 세계이고, 현실에서 결코 보기 드문 유토피아다. 어떤 남자들이 <커프>의 한결, 한성, 선기, 민엽, 심지어 홍사장, 정육점 아저씨처럼 순수하게 사랑할까?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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