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과 만난 세손 이산.
ⓒ MBC

드라마 <이산>에서는 홍국영과 이산의 만남이 홍국영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정후겸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홍국영이 여러 날 동안의 저울질 끝에 결국 '잘 나가는' 정후겸 대신 '인기 없는' 이산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후 홍국영은 기민한 판단과 대담한 행동으로 세손의 기반을 굳히며 반대파들의 입지를 축소시켜 나간다. 정후겸은 "저 자를 내 편으로 만들든가 죽이든가 했어야 한다"며 이따금씩 아쉬워한다.


드라마 <이산>에 나오는 홍국영의 이미지는 역사 속의 홍국영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 같다. 외모도 그렇고 지능도 그렇고 언변도 그러하다. 외모 하나만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영조 48년(1772) 9월 21일자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과거 합격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시력이 나쁜 영조가 "(홍국영의) 용모는 어떠하냐?"고 묻자 승지는 "매우 준수합니다"(甚精矣)라고 대답했다.


머리 좋고 책은 적당히 읽고 입은 좀 투박하고, 약간은 경망스러우면서도 외모만큼은 말끔한 홍국영의 이미지가 드라마에서도 비교적 잘 표현되고 있는 듯하다. 그에 비해 현재까지의 드라마 방영분을 보아서는, 그의 든든한 집안 배경이나 끝없는 욕심 등은 자연스레 표현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이 드라마에서 극적 효과에만 치중한 나머지 홍국영과 이산의 처음 만남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국영이 어떻게 세손 이산을 보좌하게 되었는지, 세손 이산은 어떻게 그런 '재주꾼'을 측근에 두게 되었는지가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다.


정조와 홍국영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둘의 처음 만남은, 어찌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이후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안 가서 파탄 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쩌면 처음 만남에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만큼은 극적 효과에 치중하기보다는 사실관계에 비중을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홍국영과 정조의 만남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드라마 <이산>에서 세손을 열렬히 사랑하는 홍국영의 이미지를 본 시청자들은 정조가 즉위 이후 얼마 안 가서 홍국영을 내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을 실컷 이용하다가 '단물'만 빼먹고 팽(烹)하는 권력가라고 정조 이산을 오해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의 만남에 대해서만큼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홍국영과 이산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은 비교적 수월하게 도출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합격하자마자 예문관 사관(史官)에 임명된 홍국영이 세손을 보좌하는 세자시강원 설서까지 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처럼 홍국영이 정후겸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이산을 선택하는 대단한 결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과거에 합격한 지 얼마 안 되는 홍국영에게 세자시강원 설서도 겸하라는 임명장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 둘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조실록>을 보면, 국왕 영조가 사관 홍국영을 측근에 두고서 가깝게 대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홍국영은 관계에 진출하자마자 국왕과 세손을 함께 보좌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산>에서는 영조가 세손의 추천을 받아 홍국영을 은밀히 만나게 되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영조와 홍국영이 먼저 만나고 그 다음에 세손과 홍국영이 만난 것이다. 이 시점은 이산이 등극하기 4년 전이었다.


과거에 장원 급제한 것도 아니고 11등으로 합격한 홍국영이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행운을 얻게 되었을까? 단순히 말을 잘해서일까? 그저 머리가 좋아서일까? 홍국영의 집안 배경을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이산>에 자주 등장하는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의 성씨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홍국영은 풍산 홍씨라는 유력한 문벌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경주 김씨인 어머니 쪽도 정순왕후와 이렇게 저렇게 연결된 문벌 가문이었다. 또 홍국영은 영·정조와도 인척관계였다. 특히 정조와는 12촌 인척관계였다.


홍국영, 집안 배경이 든든했다


 
<이산>에서 시니컬한 홍국영으로 분한 한상진.
ⓒ MBC

홍국영이 집권 외척 세력은 물론 국왕 및 세손과도 인척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렇게 빨리 국왕·세손의 측근이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든든한 집안 배경이 그의 출세에 가장 결정적 기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산의 등극 4년 전에 과거에 합격하고 또 세자시강원에 배치된 것은 홍국영으로서는 그 시점으로 보아도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홍국영이 이산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난 것도 아니다. 왕실과 이러저러하게 얽힌 홍국영의 든든한 배경이 두 사람의 만남을 가능케 한 가장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상당히 싱거운 편이었다. 홍국영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서 빈약한 세손을 선택했다거나 혹은 세손을 보좌하다가 한때는 똥지게까지 지게 되었다는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돋우기 위한 극적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튼 두 사람의 처음 만남은 드라마와는 달리 그렇게 싱거웠다.


이걸로 끝인가? 두 사람의 만남이 의외로 싱거웠다는 것으로 이 글은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의 만남이 싱거웠다는 사실로부터 중요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두 사람의 만남은 두 사람의 이별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둘의 만남이 홍국영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홍국영이 처음부터 어떤 원대한 정치적 이상을 품고 세손에게 접근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집안 배경이 좋은 홍국영은 세손을 보좌하라는 임명장을 받았고, 좋은 머리를 바탕으로 이산의 등극을 도왔지만 결국에는 자기 세력의 확대만을 추구하다가 얼마 안 가서 정조의 버림을 받고 말았다.


드라마에서처럼 홍국영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이산에게 접근한 것이라면, 정조 등극 3년만인 1779년에 허망하게 주군의 버림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배경에 힘입어 권력에 접근한 홍국영은 자신을 키워준 그 배경을 위해서만 열심히 일하다가 정조의 버림을 받고 만 것이다. 이는 그에게 별다른 정치적 이상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홍국영이 정조의 버림을 받은 이유


정조가 즉위한 지 얼마 안 가서 홍국영이 정조의 국정운영(특히 탕평책)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은, 홍국영이 애초부터 정조의 국정 비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국영이 단순한 권력욕을 떠나서 보다 더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면, 그 좋은 머리로 정조의 정치적 포부를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국영은 정조의 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정조도 자기처럼 권력에만 연연하는 사람인 줄로 착각했는지 모른다. '책을 대충대충 읽는다' 혹은 '경망스러웠다'는 평가처럼, 그는 사물의 본질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해버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식으로 정조를 대충 이해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정조와의 만남이 '준비된 만남'이 아니라 그저 '우연적인 만남'이었기에, 홍국영에게는 정조의 꿈과 고뇌를 이해할 만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홍국영과 이산의 만남이 그처럼 싱거운 만남이었기에, 그들의 만남은 얼마 안 가서 그렇게 쉽게 파탄에 이르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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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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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에서 시니컬한 홍국영으로 분한 한상진.
ⓒ MBC

"자네 같은 사람이 겨우 그만한 노력으로 무과에 입격할 수 있는 줄 아는가? 무과에 입격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해 (중략) 피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


대수(이종수) 고개가 떨어지려는데, 단기속성 과외방

선생 나으리가 말했다.


"그건 다……. 개소리네."


깜짝 놀라 쳐다보는 대수에게 선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보탰다.


"병법이란 어차피 상대를 속이는 거라고 손자도 하지 않았나? 어디 적당히 속이고 눙쳐서 입격할 방도를 찾게."


대수는 황당했다. 양반이 어찌 그리 말하냐 따지자 그 양반이 또 말했다.


"양반이니 그렇지. 나라에서 제일 속임수에 능한 게 누군가? 바로 나 같은 도포짜리들이네."


홍국영은 그렇게 등장했다. MBC 드라마 <이산>에서 뭇사람들을 속이고 눙쳐서, 위태한 세손 저하(이서진) 임금 만들기에 맹활약중인 홍국영 아니 한상진을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 근처에서 만났다. 갓 벗고 수염 떼고 도포자락 벗은 그는 딴 사람 같았다. 책사 홍국영보다 신수 훤한 펀드매니저로 보였다.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을 보필하던 ‘깍두기’ 머리 의국장도 아니었다.


홍국영, 다른 사극과 다르게 다르게


"홍국영이란 역할이야. 노력을 많이 해야 해. 부족하니까 열심히 해야 하고."


이병훈 감독이 말했다. 지난 6월이었다. 그는 아무도 몰래 홍국영에 뽑혔다. 처음엔 본인도 몰랐다. 김근홍 감독, 이병훈 감독, 그리고 주요 제작진까지 3차 관문을 통과한 결과였다. 살아온 이야기도 했고, <대장금> <허준>의 주인공 남자 역할도 해보인 결과였다.


배우 생활 7년째지만, 아직 무명인 그에겐 파격이었다. 어쩌면 '발탁'이었다. 홍국영이 누군가? 세손 편에 서서, 오르내리는 극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책사'였다. 그는 무술을 배우고 승마를 배웠다. 영조와 정조시대 책을 읽었다. 홍국영에 대한 만화책도 봤다. 하지만 이전에 홍국영을 그린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이병훈 감독 엄명이었다.


"홍국영이 나온 드라마, 절대 보지 마라. 그거 답습해서 비스무리하게 만들거나 하지 마라. 네 것을 해라."


드디어 대본 연습 시간이 돌아왔다. 10회였다. 홍국영이 첫 등장하는 신이었다. 그리고 '무지 잘했다'가 아니었다. 무지막지하게 혼이 났다.


"대본 딱 들어갔는데, 한 줄을 못 넘기는 거예요. 한 단어 읽으면 감독님이 '그게 아니지.' 아냐. 그게 아냐. (말투가?) 네. 말투가. 시니컬해야 하는데 전 너무 사극처럼 만들어왔던 거죠. 누군가를 따라하는 느낌이 막 드신데요. 왜 그렇게 만들어왔냐고, 네 것 하라고, 네 평소하던 대로 해봐!"


대본 연습이 끝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떨렸다. 하지만 배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그는 생각했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홍국영은 어려운 말도 유창하게 좔좔좔 읊어야 했다. 홍국영은 똑똑한 사람, 천재였으니까. 그렇다고 감정 없이 줄줄 읊어서도 안 됐다. 템포를 살려야 했다. 그걸 찾아야 했다. 너무 힘들지만 찾아야 했다. 대본을 정말 많이 봐야 했다. 봐도 봐도 부족했다. 해도 해도 혼이 났다. 발음 때문에, 너무 느려서, 너무 빨라서……. 힘들었다. 대본만 나오면 입에 펜을 물고 대사를 연습했다. 또 감독은 그에게 전체를 보라고 했다. 그러다 슬슬 코드가 맞아가는 게 보였다. 많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하얀 거탑> 할 때는 수술도구까지 다 외웠어요. 수술실 들어가서 막 공부하고요. 똑같이 해야 된다구……. 감독님이, '야. 너네, 의사야. 한상진이 아니라 이제 의사가 된 거야. 의사들이 봤을 때 니네가 진짜 의사 같아야 우리 대화가 진짜 대화가 되는 거지. 안 그럼 우리 것은 흉내 내기야.'


가끔 저도……. 이럴 때도 있죠. '내가 왜?' 그런데 방송 나오는 거 보니, 딱 알겠더라구요. 감독님 생각이 맞았구나. 내가 착오가 있었구나. 아! 시니컬하게 표현하란 게 저런 거구나."


 
<이산>에서 홍국영으로 활약하는 한상진.
ⓒ 오마이뉴스 김정훈

유시민에게서 홍국영의 향기가?


실제 <이산>에서 홍국영이 튀는 이유가 그랬다. 홍국영의 시니컬함, '냉소'는 빛났다. 홍국영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거침없이 말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후겸 앞에서도 "개를 따라다니면 측간을 가고, 범을 따라다니면 숲을 얻기 마련"이란 소릴 천연덕스럽게 내뱉었다. 사극 인물 같지 않았다. 말투도 그랬다.


"제가 홍인한 대감을 찾아가서 그러잖아요. '아. 제가 좀 기다려야 되겠네요.' '무슨 날을 기다린단 말인가?' '대감께서 돌아가실 날 말입니다.' 이것도 전 처음에 심각하게 했더니, 감독님이 '아니야. 홍국영은 이런 말도 굉장히 시니컬하고 무표정하게 할 거야. 걘, 간이 배 밖으로 나왔거든.'


홍인한이 정1품 대감이고, 홍국영은 정7품인데, 지금 7급 공무원이 1급 장관한테 가서 '나 안 키워주면, 당신 죽는 날까지 기다리고 볼 거야.' 이러는 거잖아요. 홍국영은 굉장히 시니컬하면서 사회 비판적이지만, 기회를 노리며 탁 숙이고 있다가 언젠가 기회가 오면 기회를 잡으러 들어가는 인물인 거죠."


김근홍 감독이, 이병훈 감독이 그에게 말했다. 대수랑 이야기할 때도, 시니컬한 사람이 그렇게 얘기할까? 그렇게 헤헤 웃을까? 왜 자꾸 뭔가를 만들고 다른 사극처럼 똑같이 가려고 하냐? 네 캐릭터를 버리지 마라. 화학조미료 같은 걸 자꾸 넣으려 마라. 원래 만든 대로 해라.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지마라.


그런데 이렇게 시니컬한 사람, 혹시 롤모델이? 혹시 참고한 사람이 없었나? 물론 흔하진 않았겠지만.


"유시민…….(웃음) 김근홍 감독님이 시니컬한 사람으로 최고라고…….(웃음) 그런 거 같기도 해요. 그분은 도무지 속을 모르겠어요. '돌발영상' 봐도 그렇고, 기사를 봐도 그렇고. 그분이 어쩌면 홍국영 같기도 해요. 돈키호테 같기도 하고.


옛날 영상, 봤어요? 유시민 의원이 처음 국회의원 됐을 때, 정장 안 입고 국회에 들어간 거 있잖아요? 그 장면이 너무 시니컬한 거예요. 일단 딱 올라가, 사과하고……. 다른 국회의원들이 뭘 막 던지고 그러는데 그 분, 진지하시더라고요. 그 장면이 너무 웃긴 거예요. 어우! 그 시니컬함! 홍국영이 아마 조선시대가 아니라 현대라면 저렇게도 될 수 있겠다."


내가 원래 시니컬하고 많이 비판적인 사람


그런데 그는 어쩌다 배우가 됐을까? 어려서 그의 집안은 극과 극이었다. 받아쓰기 시키고 영어 시키던 친가와 달리 외가에 가면 노래하고 밤새도록 노는 분위기였다. 알려진 대로 현미가 그의 이모고 노사연이 사촌 누나인 집안이니, 어쩌면 당연했다. 가족들이 모두 TV에 나오는 분위기였다. 어린 그도 막연히 TV에 나오고 싶었다.


 
<하얀거탑>에 이어 <이산> 홍국영을 연기하는 한상진.
ⓒ 오마이뉴스 김정훈

"현미 이모는 지금도 그래요. 넌 끼가 없고 네가 연기하는 거 보면 신기해. 지금도 집안에서 어른들이 노래시키면 못해요. (진짜?) 정말 못해요. 그러니까 제가 연극무대 섰을 때 현미 이모가 보시고 기립 박수를 쳤어요. <오셀로> 할 때 오셨는데, 기립 박수 치고 우셨대요. 너무 감동해서……. 야. 저 놈이……."


대학 방송연예과 졸업 직전, 시험에 붙었다. 아니 뽑혔다. SBS 톱 탤런트 대회였다. 지금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같은 대회였다. 경쟁률이 3천 대 1이었다. 드라마에 고정 출연했다. 배역에 이름도 있었다. 금방 주인공이 될 줄 알았다.


"그땐 약간 교만했죠. 전 연기를 잘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작 주어지니까 연기를 못하더라구요." 그가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회가 왔는데 못 잡으니까 도태되는 거예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청혼>을 찍었다. 중간에 연극도 했다. 들어오지 않는 배역을 마냥 기다리며 놀 순 없었다. <리어왕> <오셀로>……. 오셀로를 하느라, 20kg을 찌웠다. 그래도 연극이 좋았다. 정말 좋았다. 무대 하나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 에너지가 쑤욱 들어왔다. 공연 끝나면 선배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때였다. 소개팅을 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농구 선수 박정은이었다. "한 분야에 최고를 이룬 사람"이었다. 그리고 2004년에 결혼했다.


아내는 지금 합숙중이다. 얼굴 보기 힘들다. 아무리 국가대표급 농구선수지만, 그도 아내가 집에서 기다렸다가 따뜻한 밥을 해주길 원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안 했을까? 그가 딱 잘라 말했다.


"결혼할 때 그걸 알고 결혼했잖아요. 처음에 저도 그런 거 때문에 투정을 부리고 그랬는데, 누가 그러더라구요. 박정은이란 사람은 한상진의 아내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박정은이다. 태극마크는 아무나 다냐? 넌 연기하면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지 못 하잖냐? 어우. 욱 하더라구요. 그럼 나도 양복에 태극기 마크 달겠다. 그런 게 어딨냐. 그런데 태극마크를 단다는 것, 어느 한 분야에 베테랑인 거 쉽지 않잖아요. 그런 데 있어선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하는 거죠."


다 접고 갔던 미국, <하얀 거탑>으로 돌아오다


지난 해, 그에게도 회의가 찾아왔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가 끝난 뒤였다. 할 일은 없고, 답답했다. 그리고 막막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미국에 가자. 한 3, 4년 공부라도 해보자. 눌러앉을지도 몰랐다. 미국에 갔다. 그때였다. 미국으로 전화가 왔다. <하얀 거탑> 오디션을 알리는 전화였다. 가슴이 쿵 했다. 제일 빠른 비행기를 탔다.


"안판석 감독님께 물어봤어요. 왜 저를 뽑으셨어요? 강렬했대요. 제가 인상이. 머리가 그때 빡빡이었거든요. 또 오디션에서, 제가 제일 잘 했대요. 말도 조리 있게 잘했고……. 연기란 그런 거 같아요.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기론이, 연기는 삶이다. 연기는 곧 인생이다. 인생은 연기고. 그런 것처럼 살아온 환경을 보면 그 사람 연기가 보인대요. 대사를 아무리 몇 백 번 읽어도, 살아온 환경과 말투를 보면 알 수 있대요."


그는 자신이 시니컬하고 많이 비판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데뷔한 지 시간이 좀 지나고, 그래도 자기 위치를 못 잡아 마음속에 스며든 서러움 같은 게 있다고 했다. 응어리? 한? 자괴감, 아픔도 있다고 했다. 그는 농담처럼 자신이 7년간 '집안 탤런트'였다고 말했다. 집안 사람들만 아는 탤런트. 그리고 생각했다. 그런 아픔들이 모아지면, 좀 더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을까? 잘 이용하면?


그래서였을까? <하얀 거탑>에서 그가 왠지 눈에 띈 게? <하얀 거탑> 때, 그는 아예 이천 세트장에서 살았다. 먹고 자고, 진짜 의국장처럼 살았다. 숙직실에서 누워있다, '와라' 그러면 뛰어가 머리가 눌린 채로 촬영했다. 원래 의사가 그러니까. 행복했다. 많은 걸 배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나? <하얀 거탑> 안판석 감독은 칭찬을 잘 했다. 칭찬은 그를 춤추게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나눠줄 줄 아는 배우들을 만났다. 드라마는 혼자 잘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잘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또 김명민은 그에게 '연기'를 알려줬다. (연기를) 넘치게 하지마라. 모자란 게 좋은 거다.


"그제 명민이 형이 전화해 그러더라구요. (촥 가라앉은 말투로) 국영아……. 네가 활약이 크구나. 형이 잠깐 영화를 할 때……. (웃음)"


 
<이산> 홍국영을 맡은 한상진. 그는 전에 <하얀거탑> 의국장이었다.
ⓒ 오마이뉴스 김정훈

다른 생각? 다음 생각? 그럴 겨를이 없다. <이산>은 60부작이다. 갈 길이 멀었다. 아직 반도 가지 않았다. 파란만장 홍국영? 멀었다.


"다른 걸 생각할 수가 없어요. 홍국영 역에 올인 해야 하구요. 확실하게 소화를 해서, 시청자들도 이해할 수 있고 동정할 수 있고 그런 홍국영을 만드는 게 저한테 가장 큰 급선무고요. 그 다음에 이거 올인 하고 났을 때, 나중에 올 허탈감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얀 거탑>의 옛날 주인공 배우는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그 다음날 자살했거든요. 진짜로! 명민이형도 그랬어요. <하얀 거탑> 끝났는데 그날 밤에 자살충동을 느꼈다구요. 너무 몰입해서요. 드라마에서 자기 배역이 죽으면 아주 우울해요. 저도 그럴 거 같아서…….


그런데 그래야지 정상인 거 같아요. 저를 믿고 선택해준 분들 위해서라도 그 정도는 해야죠. 저를 믿고 의지하는 제 가족들...  (숨을 내쉬며) 하아. 어깨가 무겁죠. 그러니까 허튼 생각을 할 수 없어요. 저한텐 목이 칼에 딱 요기 이렇게 와있어요.”


서른 살! 그는 두려움을 딛고 잔치를 여는 중이었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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