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태양이 나를 향해 눈부신 빛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빛은 수십 개로 늘어났다. 반짝이고 뜨거운 빛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고 몸이 서서히 메말라 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 빛에 취해 있었다. 빛이 영원토록 내게만 비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계속 그 빛을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시야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런데 눈을 뜰 수가 없다. 내 앞에 있던 빛을 너무 오랫동안 봤기 때문일까? 결국, 눈이 멀고 내 몸은 완전히 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예전에 비췄던 빛 중 유일하게 구분할 수 있었던 하얀빛이 보였다. 눈도 서서히 보였다. 옆과 뒤도 보였다. 빛을 처음 봤던 그때로 돌아간 것이다. 다시는 수많은 빛에 취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는 한때 내 왼발로 모든 빛을 모이게 했던 고종수(29·대전 시티즌)다.


 
올 시즌 대전에서 부활한 '앙팡테리블' 고종수.
ⓒ 대전 시티즌

 

[#1. '축구천재'의 부활?] "말로 하면 뭐해요. 운동장에서 보여주면 되지"


지난 7일 오후 대전지하철 지족역 근처 한 커피전문점. 인터뷰를 위해 가게에 들어서자 막 나가려던 여성 손님이 그를 알아보고는 "고종수 잘 생겼다. 열심히 해요"라고 한마디 한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좋은 말을 들어서 그런지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종업원의 주문 요청이 들어왔다. 그는 "달달한 것 없나요?"라고 묻더니 블랙커피를 시켰다. "설탕을 꼭 가져다 달라"는 주문과 함께.


문득 몸 관리라면 철저하다는 그의 선배 서정원이 생각났다. 서정원은 지난 7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관련기사 바로가기)에서 '아이스 녹차'를 시켰었다. 그래서 물었다. '커피 마셔도 되냐'고. 그러자 별 걱정을 다 한다는 듯 한마디 던진다.


"TV에서 보니 하루에 커피 한 잔은 괜찮다고 하던데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영양학 교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커피 한 잔 정도야 별 지장 없을 것 같아요."


 
지난 7일 만난 대전의 고종수 선수.
ⓒ 이성필

그렇게 커피를 마주하고 이야기가 시작됐다.


올 시즌 고종수는 대전에 전격 입단했다. 그가 재기할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공백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서히 출전 시간이 늘어나고, 득점까지 하면서 고종수는 언론노출 빈도도 높아졌다. 게다가 그의 스승 김호(63) 감독이 대전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기적을 보여주면서 그와 대전에 대한 축구팬들과 언론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인터뷰를 자제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구단에서도 그런 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았고요. 그래도 팬들이 궁금한 점을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러 인터뷰에 응했어요."


그와 인터뷰를 끝낸 뒤 대전의 연습경기가 열린 월드컵 보조구장에서 만난 구단 직원은 여전히 밀려들어 오는 인터뷰 요청을 조절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에이전트인 AI스포츠 곽희대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은 질문에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인지 그는 더 이상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응하기 힘들다며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했다.


"(축구를) 잘 하지도 못하는데 말로 하면 뭐해요. 운동장에서 보여주면 되지. 운동선수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면 될 것 같아요."


[#2. 수원과 그랑블루]  "겉으론 욕해도 마음 속으론 응원하지 않을까요?"


 
대전에서 다시 만난 김호 감독(왼쪽)과 고종수(오른쪽).
ⓒ 대전 시티즌

K리그에 첫 발을 내딛게 해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은 그와 뗄 수 없는 사이다. 1996년 만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창단 멤버로 두 번의 정규리그 우승과 아시아 클럽 정상을 같이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로 인연을 맺었던 차범근 감독과 2004년에도 만났다.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 역시 그와 같이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솔직히 수원 팬들은 늘 마음 구석에 자리하고 있어요. 종합운동장(수원월드컵경기장이 생기기 전 수원 홈 구장) 시절부터 같이 커왔잖아요. 지난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때 반대쪽에서 그들(그랑블루)을 보게 됐는데 여전히 대단하고 멋있더군요."


그랬다. 지난 10월 14일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대전은 수원을 만나 1-0의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김호 감독과 고종수는 수원 팬들이 자리한 남쪽 관중석 앞으로 이동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팬들도 있었고 야유를 보내는 팬들도 있었다.


"몇몇 팬들은 겉으로는 저한테 욕하고 그러시는 것 같던데 마음 속으로는 응원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제가 잘 보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는 대전 팬들이 열렬히 응원해 주잖아요."


어느새 대전의 '자줏빛 전사'가 다 됐다. 여러 인터뷰에서도 대전 팬들의 열정을 높이 치켜세웠다. 대신 그는 한 가지 바람을 얘기했다.


"그랑블루 같은 서포터가 팀마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선수들도 경기할 맛이 날 텐데요. 한쪽은 온통 빨갛고 다른 쪽은 새파랗고,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2004년 J리그(교토 퍼플상가)에서 돌아와 FC서울과 입단 계약 직전까지 갔던 고종수는 수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팬들의 성원과 그리움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팀 무단이탈과 음주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차범근 감독과의 사이도 벌어졌다는 소문까지 터져 나왔다. 결국, 구단은 그를 임의탈퇴 시켰다. 이때부터 그의 방황은 시작됐다.


"그때는 제가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힘든 시기였고 모든 게 틀어진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전적으로 다 제 잘못이죠. 생각이 너무 짧았어요. 차 감독님과 안 맞는 것은 아니었어요. 단지 감독님의 선진적인 축구 사상을 제가 부족해서 못 따라간 것뿐이죠."


[#3. 지독한 부상] "신이 있다면 내가 뭘 잘못 했는지 묻고 싶어요"


 
고종수 선수의 미니홈피.
ⓒ 인터넷 화면 캡처

어느새 서른 문턱까지 다다른 고종수,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는 여러 가지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중에도 '사자는 아무리 배고파도 풀은 뜯지 않는다'는 상당히 인상적인 문구다. 자신을 사자에 이입시킨 것 같은 느낌의 문구에 대해 그는 "비굴하게 살지 않는 게 자신의 신조"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문구도 있다. '실패라는 상처 위에 인내라는 약을 발라 노력이란 붕대를 감는다면 성공이라는 흉터가 남는다'라는 것이다. 지인이 어느 날 힘내라며 보낸 문구를 보고 난 뒤 '정말 내 인생 같다'는 느낌이 들어 늘 새겨놓고 있다고 한다.


"인생이란 게 그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잘할 때 연락하던 주변 사람들이 헤매고 있으니 알아서 연락을 안 하더군요. 요즘에서야 가끔 연락이 오는데 그러더라고요. '연락하려니 마음이 안 좋아서 그랬다'고들 하던데 뭐 괜찮아요. 이제 '축구천재'가 아닌 묵묵히 운동해서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2001년 8월, 수원 시절의 고종수는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오른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겪었다. 물론 그 이후로 다시 경기에 나서 재기에 힘썼지만 부상이 다시 재발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무릎의 수술 자국을 보여줬다. 손으로 만지니 무릎 아래쪽이 움푹 들어갔다. 수술만 여섯 번을 했다는 그는 그곳을 가리키며 '인대가 없다'고 표현했다. 수 없이 재발한 부상의 생채기였던 것이다.


"하루에 운동을 네 번씩 했어요. 매일 야채만 먹으면서 죽어라 재활에 매달렸어요. 저 재활치료사 해도 될 걸요. 그런데 또 아프고 그러니깐 정말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오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종교를 가지지 않았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내가 뭘 잘못 했는지 묻고 싶어요."


[#4. 휴식, 혹은 외도] "무릎팍 도사에 나가면 할 말 많을 걸요"


드라마 같은 시즌이 종료된 지금 그는 팀의 마무리 훈련을 끝낸 뒤 병원을 오가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른쪽 골반 부위가 조금 아프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호 감독은 '피로가 쌓여서 오는 증세'라며 휴식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귀곡 산장' 같은 구단숙소에서 '24시간 뉴스 채널'과 '몇몇 드라마'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낙후된 대전의 숙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밖에 없을 것이다. 혹은 근처 군부대의 나팔소리와 군가로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료할 법도 하다. 과거 잘 나가던 시절 그는 연예 프로그램 종종 등장했다. 최근 인터넷에는 그가 출연했던 시트콤, 뮤직 비디오 동영상이 돌아다닌다. 혹시 방송국에서 불러주면 다시 나갈 생각은 있을까?


"일 년 내내 운동하고 나면 지쳐요. 공부하는 사람이 매일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에요."


이쯤 되면 '고종수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비판의 소리가 들릴 만하다. '노는 기질'을 버리지 못했느냐며 반성하라는 이야기도 나올 것이다.


"물론 운동에 지장을 주면 안 되죠. 시즌 종료 후 휴식기간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장에서 거친 부분만 보여주다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도 일종의 팬 서비스 아닐까요? 팬들이 그런 부분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최근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타자 양준혁(38)은, MBC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뭐든지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선수들이 먼저 다가가야 한다. 훈련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면 비시즌 때 개그 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준혁의 발언은 고종수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넌지시 그에게 물었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자신의 고민 상담'과 동시에 '대전'과 '축구'를 홍보해 볼 생각은 없느냐고.


"만약 무릎팍 도사에 나간다면 할 말 많을 거예요. 제 인생이 완전 인간극장 따로 없잖아요. 영화로 찍어도 될 걸요."


 
지난 7일 대전에서 만난 고종수 선수.
ⓒ 이성필

 

[#5. 인생의 동반자] "팬들과 통닭에 생맥주 한잔 했으면..."


그는 요즘 부모님의 건강이 걱정이다. 한 분이라도 괜찮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아 더욱 그렇다.


"수원과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때 관중석에서 보셨대요. 몸이 아파서 힘드신데도 오셨더라고요. 이기니깐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제가 재기하고 우리팀(대전)이 6강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께서 용기를 많이 얻으신 것 같아요."


부모님과 더불어 그에게는 감사하고 함께 가야 할 대상이 있다. 바로 자신을 묵묵히 응원하던 팬들이다. 수원에서 전남으로 다시 대전에 오기까지 이들은 한결같이 그의 부활을 기원했다. 경기장에는 그의 출전 여부와 상관없이 '왼발로 통한다! 고종수' 혹은 '고종수. 그는 프로이기에 아름답다'는 펼침막이 늘 걸려 있었다.


다른 종목보다 팀에 대한 팬들의 충성도가 강한 대한민국 풍토에서 선수가 옮길 때마다 응원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별명 '앙팡테리블'로 명명된 팬클럽에 대한 고마움은 상당하다.


"김호 감독님은 늘 팬에 대해서 소중히 여겨야 하는 마음을 심어주셨어요. 팬들을 만날 때도 슬리퍼를 신고 나가서는 안 된다는 등 세세하게 지적해주셨죠. 예전에 감독님이 좋아하는 팬들과 관광버스 빌려서 여행도 가고 그러던데 저도 나중에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역시 스승의 영향이 컸다. 최근 그는 팬 페이지에 짧은 글을 남겼다. 시즌 종료하면 '회식'하자고….


"예전에는 휴가 때 만나서 신당동에 떡볶이를 먹으러 가고는 했어요. 그땐 대부분 학생이었는데 이젠 다들 성장했잖아요. 결혼도 하고, 돈도 벌고. 이제는 통닭에 가볍게 맥주 한잔하며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어른이니까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대전의 연습 시간과 맞물리게 됐다. 마지막으로 만약이란 가정 하에 국가대표에 부름 받을 몸이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여전히 공격형 미드필더인 그의 감각적인 패스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가대표에 큰 미련은 없어요. 이미 월드컵에 한 번 뛰어 봤잖아요. 지금은 그런 생각 할 여유가 없어요. 부르면 가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그래도 나라에서 부르면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에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시원시원한 대답, 그러면서도 뭔가 생각이 많아진 그의 모습이다.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는 고종수가 어떤 길을 선택해 걸어갈지 궁금해진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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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 성남의 삼성하우젠 K리그 2007 20라운드 경기는 홈팬들에게 두고두고 아쉬울만한 경기였다. 대전은 우승후보로 꼽히는 성남을 상대로 잘 싸우고도 석연치 않은 판정 논란으로 결승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결승골 이전까지 사실상 대전이 주도권을 잡아나가던 분위기였기에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자칫 판정 논란 속에 모두 묻힐 뻔했지만, 정작 이날 대전은 불운한 결과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는데 충분히 위안을 삼을만했다. 바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풍운아' 고종수(29)의 부활을 바로 눈앞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앙팡테리블', 대전에서 새로운 축구인생 시작


 
▲ 대전 시티즌의 고종수.
ⓒ 대전 시티즌
 

한때 '앙팡테리블(프랑스어로 무서운 아이)'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던 한 소년이 있었다. 1996년 수원 삼성의 창단 멤버로 처음 이름을 알린 이 작은 체구의 고졸 신인은 일약 팀을 K리그 정상으로 끌어올리며 프로축구계에 '무서운 아이' 신드롬을 일으켰다.


같은 해 비쇼베츠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대표팀에 최연소로 발탁되어 곧장 주전 플레이메이커 자리를 꿰찼으며, 차범근 성인 대표팀 감독의 눈에 들어 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 합류했으며, 본선에서도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와의 조별예선 3경기에 모두 출장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K리그의 르네상스기로 꼽히던 90년대 후반에서 2001년까지는 그야말로 고종수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당시 포항의 이동국, 부산의 안정환과 더불어 한국축구 '신세대 트로이카'로 꼽히던 3인방은 출중한 실력과 개성, 뛰어난 스타성을 겸비하며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했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러 2007년, 고종수가 돌아왔다. 무릎부상으로 2002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한 이후, J리그에서의 실패와 오랜 재활로 인한 후유증, 사생활을 둘러싼 논란과 잦은 돌출행동으로 그는 '문제아'라는 멍에를 쓰며 잊혀졌다. 팬들의 기억 속에 고종수는 더 이상 '앙팡테리블'이 아닌,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피터팬으로 남았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무적 선수 신분으로 방황한 지 일 년 반, 고종수는 어느덧 우리 나이로 서른의 문턱에 접어들며 이제는 성숙한 남자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자신을 오늘날 스타로 키워준 옛 은사의 품안에서, 그때 그 소년은 다시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김호 감독이 대전의 지휘봉을 잡은 후반기, 8월 1일 부산과의 컵대회 16강전을 통해 복귀 신고식을 가진 고종수는 팀 내에서 꾸준히 '조커'로 출전기회를 잡아가고 있다. 정규리그에서는 지난 12일 포항 전을 시작으로 최근 팀이 소화한 6경기 중 4경기에서 교체멤버로 출전했다.


한 박자 빠른 패스와 넓은 시야, '여전하네'


2일 경기에서 김두현의 선제 골로 성남에 0-1로 끌려가던 후반 5분, 김호 대전 감독은 고종수를 예상보다 빨리 투입했다. 추가시간을 포함하여 이날 약 43분 출장은 고종수가 올 시즌 가장 많은 시간을 소화한 경기였다.


'양뿐 아니라 질'에서도 고종수의 활약은 근래 들어 가장 돋보였다. 투입되자마자 고종수는 후반 10분 페널티 에이리어 오른쪽에서 기습적인 중거리슈팅을 날리며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줬다.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는 고종수 특유의 템포축구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체력적으로 아직 부족한 만큼 1대 1 상황에서 날카로운 돌파를 보여준다거나 빈 공간을 파고드는 것처럼 운동량을 필요로 하는 플레이는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플레이메이커로서 한 박자 빠른 패스와 넓은 시야를 통해 동료들에게 수차례 공격의 활로를 만들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이날 동점골을 넣은 데닐손과 함께 보여준 콤비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개인기와 돌파력이 좋은 데닐손이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간을 창출하면 고종수가 한 박자 빠른 패스로 지원하거나 다른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식의 플레이가 이날 계속됐다. 후반 대전의 공격은 대부분 고종수-데닐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종수는 이날 수비에도 의욕을 보였다. 전성기 시절의 고종수는 수비 부담이 많은 역할이 아니었고, 스스로도 수비 가담에 그리 적극적인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 고종수는 팀 사정상 민첩하지는 못했지만 하프라인을 몇 차례 왕복하며 수비를 지원하고 몸을 날려 공중 볼을 따내는 등 강한 투지를 선보였다. 재기에 대한 선수의 집념을 읽을 수 있었던 대목이다.


아쉽게도 고종수에게 복귀 이후 처음으로 승리의 주역이 될 수도 있었던 이날 경기는, 후반 40분 터진 김동현의 결승골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인정 할 수 있는 실점이 아니라, 성남의 프리킥이 판정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안타까울 일이다.


고종수는 경기가 끝난 후 굳은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K리그 복귀이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하루였음에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경기의 스포트라이트는 이날 스스로 승부를 결정지어버린(?) 심판의 멋쩍은 모습과,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든 어느 대전 구단 임직원과의 몸싸움, 그 위로 날아오르던 관중들의 '분노의 물병(?)' 속에 가려졌다.


만일 이날 대전이 승리하거나 혹은 비기기만 했더라도 오늘의 주역은 고종수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팬들은 고종수를 결코 잊지 않았다. 이날 고종수가 보여준 화려한 부활과 김호가 이끄는 대전의 가능성에 대전 팬들은 환호하며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오늘 졌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고종수에게도, 대전에게도, 재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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