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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에 걸친 유럽 좌파의 역사를 써내려간 < The Left 1848-2000(제프 일리 지음·유강은 옮김, 뿌리와 이파리)>가 지난달 5일 출간된 이후 한달 만에 3쇄까지 찍어 출판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 The Left >가 5만원짜리의 고가인 데다 책 분량이 무려 1028쪽에 달하는 아주 두툼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높은 판매량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책은 다분히 상업적 개념의 '베스트셀러'라기보다 가치의 개념이 포함된 '굿셀러'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1만원짜리 1만2500부 팔린 셈... 한국 좌파에게 '성찰·미래구상' 텍스트


  
< The Left 1848-2000 >는 영국의 좌파 역사학자인 제프 일리가 150년에 걸친 유럽 좌파의 역사를 한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 뿌리와 이파리

< The Left >는 지난달 5일 출간 이후 3쇄까지 찍었으며, 총 발행부수 3500부 중 약 2500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17일 현재까지).


"고작 2500부 팔렸는데 그것이 출판계의 화제냐"고 묻는 분들은 먼저 이 책의 가격이 5만원이라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 이 책이 2500부 팔린 것은 1만원짜리 단행본이 1만2500부 팔린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의 책이 이 정도 팔렸다면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는 결코 과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처세술·재테크 등 실용서와 왕조 중심의 역사서들이 여전히 출판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The Left >는 영국 좌파 역사학자이자 미시건대 칼 포트 석좌교수인 제프 일리(Geoff Eley)가 마르크스·엥겔스의 시대인 19세기 중반부터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 등을 들고 나온 20세기 말까지 무려 150년에 걸친 유럽 좌파의 역사를 한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원제는 'Forging Democracy('민주주의 벼리기')'이다.


이 책을 두고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와 더불어 '긴 20세기'의 정치사를 다룬 불후의 저작"이라는 국제적 호평까지 나왔다.


이러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주제가 대중적이지 않은 '유럽 좌파의 역사'라는 점에서, 그 분량마저 상상을 초월하는 1028쪽이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인문·사회과학시대가 너무 일찍 저물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중들이 이 책을 선뜻 사서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출판사 측에서도 "원체 두껍고 그림과 사진도 한 장 없고, 대중적으로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라 1000부(1만원 기준 5000부)나 팔릴까 싶었다"고 토로할 정도다. 하지만 < The Left >는 1만원 짜리 단행본 기준으로 1만부 이상 팔렸다. 출간 직후 인터넷시점 등에서 주간 베스트셀러 1∼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언뜻 한국사회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유럽 좌파의 역사를 다룬 책이 이렇게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출판사측의 표현처럼 "출간 시기가 무척 잘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출간 시기는 절묘하게도 '신보수'(New Right)를 내세운 이명박 정권의 공식 출범, 진보정당(민주노동당)의 분화와 맞물렸다. 즉, 보수우파가 다시 집권하고 '진보의 재구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유럽 좌파의 역사는 한국의 좌파진영에 '성찰'과 '미래구상'의 텍스트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김대중·노무현 등 민주파 정부(한국의 보수우파는 이들을 '좌파정권'이라 부른다)에 대한 실망감이 유럽 좌파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장석준 전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이 책의 출간 이후 <프레시안>에 기고한 서평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단순히 유럽 좌파의 여러 흐름들이 역사적 맥락과 상관없이 동시에 한국 사회에 쏟아져 들어온 게 문제가 아니다. 이념의 수용사가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지금 한국 자본주의에는 유럽 자본주의의 여러 시대가 서로 공존하며 중첩돼 있다는 것. 19세기말의 사회민주주의, 1956년의 신좌파, 최근의 신사회운동 등이 맥락없이 수용된 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 우리 자신이 19세기말의 시간대, 1956년의 시간대 그리고 신사회운동 등장의 시간대를 동시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


사상전 부활의 징표?... 사회운동가 출신 번역자의 공도 평가받아야


출판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같이 운동했던 동기의 장례식장에 갔는데 거기서 '지금은 사상투쟁(사투)이 다시 필요한 상황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며 "그런 (밑바닥) 움직임과 이 책의 판매가 맞물려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이 이명박 정부의 등장,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 등이 벌여졌던 때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80 대 20'의 사회가 '90 대 10'의 사회로 변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또 한국사회의 좌파가 향후 진로를 모색할 때 이 책이 좋은 교두보나 소재가 될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사상전 (부활)의 징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관계자는 "일반 독자들을 비롯해 대학 등에서 보조교재나 세미나용으로 많이 구매하고 있다"며 "특히 오는 5월 3일이 68혁명 40주년이라는 점에서 5000부(1만원 기준 2만5000부)까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과 함께 번역자가 국내외 사회운동에 관심과 이해가 깊다는 점도 이 책의 수준을 높이는 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 The Left >를 번역한 유강은씨는 사회운동단체인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에서 5년간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전문번역자다.


이미 그는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2002년)과 <미국 민중사>(2005년), 데이비드 보일의 <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2005년), <미국민중사>,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역으로>(2007년) 등을 번역한 바 있다. 


이 책의 번역에만 약 10개월의 시간을 투자한 유씨는 "90년대 이후 유럽 등 외국 좌파운동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든 상황에서 기존의 외국 좌파운동의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생각에서 번역하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우리는 왕조사 등 흥미위주의 역사가 대부분이다. 이에 진짜 민중이 만들어간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즉 역사는 정조나 세종이 만드는 게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역사책이 하도 간만에 나와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지 않나 싶다."


장석준 전 실장은 "이 방대한 저작을 이토록 성실하게 번역했다는 역자의 노고는 아마도 평범한 박사학위논문 한편보다 훨씬 더 큰 학문적 기여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유씨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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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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