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다. 2006년 10월 9일에 이어 두 번째다. 단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공화국의 자위적 핵 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주체98(2009)년 5월 25일 또 한 차례의 지하 핵실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실험 결과 핵무기의 위력을 더욱 높이고 핵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게 됐다""핵실험은 선군의 위력으로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사회주의를 수호하며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실험은 이미 충분히 예고됐다. 하지만 몰랐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을 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지난 5월 1일 게리 세이모어 미국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은 브루킹스 연구소 강연에서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0일에도 마찬가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 태평양포럼 랄프 코사 소장도 지난 15일,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실시할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물론 단순한 위협용이거나,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먼 훗날의 일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이들도 있다. 우리 정부 입장은 그랬던 것 같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2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북한의 2차 핵실험 가능성을 묻는 한나라당 진 영 의원의 질문에 대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배제는 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특별히 긴장감 있는 답변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론은 이에 주목하지 않았고, 정부 또한 어떠한 대응태세를 보인 바 없다. 굳이 따지자면 5월 8일 유명환 외교부 장관을 면담한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입장도 같은 맥락으로 정리된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우리 정부는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알지도 못했다. 철저히 무기력했거나 무능력했다. 이는 정보기관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대북관련 정보기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지난 2006년 1차 핵실험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 핵실험은 충분히 예상됐고, 그 과정은 끊임없이 중계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 상황을 경마 중계하듯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25일 북한 핵실험이 있기까지 북핵실험에 대한 긴박한 예측이나 중계는 없었다. 외국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따지자면, 다함께 '물을 먹었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시에 대북관련 군정보기관이나 북핵정보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왜 몰랐을까. 왜 이제야 알았을까. 왜 정부는 이제야 긴급회의를 열고 뒤늦은 대응에 나설 수 밖에 없었을까. 외교안보만큼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특히 대북문제만큼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MB정부가 왜 이렇게 됐을까. ‘잃어버린 10년’ 때문에 대북경계태세가 이완됐고, 한미동맹이 무너졌으며,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왜 MB정부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와 단거리 미사일발사를 막지도 못하고 예측하지도 못했을까. 촛불집회 이후 국내정보는 강화되고, 국외정보나 대북정보는 약화되고 있다는 일부언론의 보도는 사실이라는 말인가.

내우외환에 휩싸인 MB정부

MB정부는 지난 10년을 대북문제에 있어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평가한다. 북한도 자신들의 체제가 이완되고 자본주의 사조가 광범위하게 유입됐다는 기준으로 지난 10년을 일종의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한다. 햇볕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따지자면, 북한의 ‘잃어버린 10년’은 남한의 ‘이익 남긴 10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과거청산에 한창이고,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을 봉쇄한 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더구나 MB정부는 집권초기 1년을 촛불문화제 때문에 ‘잃어버린 1년’이 됐다며 올해 내로 보충하겠다고 속도전을 주문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집요하고도 광범위한 수사는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되는 입장이 있었다. 스스로 정치적 존엄사의 길을 선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국내외 민심은 흉흉한 상황에서,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MB정부는 내우외환의 십자포화에 휩싸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중에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의 의도는

1994년 7월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직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전군에 비상경계태세를 발령했다. 북한은 이 사실을 두고, 두고두고 반발했다. 이런 맥락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장이 진행되는 상중의 기간에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한 셈이다. 중대한 도발행위다. 더구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오늘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전까지 보내왔다.

이 지점까지만을 놓고 본다면, 북한의 2번째 핵실험이 북한에 대한 공동의 위기감으로 남한 사회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쪽으로 활용하려는 언론도 있을 것이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당장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음 기사를 아래로 내리고, 북핵 기사를 정면에 배치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기사의 대체제로 북핵 기사를 활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정반대의 입장에서 북한의 의도된 충격요법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 시점이 MB정부가 국내외적으로 최고도의 위기에 처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국내의 민심은 MB정부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고, 이에 반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심지어 외국 언론의 반응조차 ‘클린 대통령’의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민생경제, 현장경제는 지표와는 다르게 급속도로 위기감에 젖어들고 있다. 성공하는 방식이 실패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성공하는 길이다. MB정부야말로 경제문제가 선이자 악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친MB 대 친박 간의 전선은 원내대표 경선을 계기로 도리어 악화됐다. 지난 4.29 보궐선거 패배 이후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던 전선이 더한 균열로 전환된 것이다. 지리멸렬하던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MB정부 전선은 확대되고 있고, 검찰에 대한 시중의 민심은 악화되고 있다. 그런 데다 김대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는 MB에게 대북유화정책 보다는 지금 보다 더한 대북강경정책을 주문했다. 당신은 보수우익의 지지로 당선됐음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것이 오늘자다. 김대중 칼럼니스트조차도 북핵 실험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또 다른 증거다.

예상과는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진들은 국민장을 선택했고, 나아가 봉하마을을 떠나 경복궁 앞을 국민장의 장소로 내어 달라며 공식 요청했다. 조문행렬은 줄에 줄을 잇고 있다.

따지고 보면, MB정부 아래서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탓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였다. 여기에다 ‘노무현 때리기’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전 국민적 스포츠였다. 이제 이런 상황이 완전히 끝나고 말았다.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고, 성장률은 엉망이며, 747은 이륙하기도 전에 도리어 추락했다. 일자리는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고, 사회적 양극화는 간극을 벌여나간다. 북핵 실험은 노무현 행정부 때의 일이었는데, 이제 MB정부의 일이 됐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마찬가지다.

이런 와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했고, 국민들은 죽음의 한 원인이 MB정부에 있다며 조용한 분노를 삼키고 있다. 내우외환이다. 바야흐로 좌우 내외를 가리지 않고 십자포화가 MB정부에 쏟아지고 있다. 지나치게 정치적인 해석일 수 있겠으나, 현재의 상황은 분명 그러하다. MB정부는 지금 최고의 위기상황을 향해 내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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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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