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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기술로 구현된 에반게리온
ⓒ 태원엔터테인먼트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신극장판 <에반게리온:서(序)>가 선정됐을 때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표는 26분 50초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극장판으로 돌아온 가이낙스사의 총아 <에반게리온>은 텔레비전 시리즈 종방 이후 12년이란 시간도 무력화시켰다. 2007년 9월 일본에서 당시 개봉 첫주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올해 1월 10일까지 총 18억 5천만엔(약 132억)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에반게리온:序>의 배경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서 시작한다. '세컨드 임팩트' 이후 살아남은 인류는 '어디에서 밀려오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격체 사도'와 맞서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진행중이다. 동시에 '인류보완계획'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겐도 박사는 아들 신지를 '사도' 타도의 전략기지 '네르후'로 소환한다. 아무런 연습도 없이 초호기에 밀려 탄 신지는 극단의 상황에 내몰리면서 싸우기를 강요받는다. '사도'와 싸우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지를 사람들은 지켜본다. 안타깝게 혹은 불안하게 볼 뿐이다. 개인의 고통은 대의 앞에서 무력했다.


'세컨드 임팩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그 일 이후에 인류의 반 이상이 멸족했다. 사람들은 '세컨트 임팩트'가 남긴 여진을 그대로 안고 '사도'와 싸운다. '사도'를 막지 않으면 '서드 임팩트'는 발발하고 결국 인류는 멸망한다. 인류의 생존을 지키는 것도, 절대절명의 순간도 신지를 움직이는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설득도 이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지는 개인으로 그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그것뿐이고 그것밖에 알려주지 않는다.


'신지'의 존재증명,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88만원 세대'


영화 내내 고군분투하는 신지의 모습에선 신자유주의 내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88만원 세대'가 떠오른다. 한국은(혹은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가공할만한 '세컨드 임팩트'를 경험했다.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경쟁력'을 기르는 일이었고 경쟁은 사회적인 미덕이 됐다. 살아남는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는 '배틀로얄'식 경쟁은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미래에 대한 불확신을 만들어냈다.


지난 15일 모 일간지는 "취업빈곤층 10년만에 두 배"라는 머리글을 실었다. 글은 "일할 능력이 있는데 일자리가 없거나 취업해 있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4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88만원 세대>를 공동 집필한 우석훈 박사는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승자독식의 경제구조에서 '인질'로 잡혀 있다"고 말했다.


 
88만원 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에반게리온:서>의 주인공 신지
ⓒ 태원엔터테인먼트

신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에반게리온에 탈 수밖에 없듯이,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얼마 안 되는 대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신지의 아버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들의 맹목적인 세컨드 임팩트에 관한 두려움은 '인류보완계획'이니 '사도'에 대한 인류 구원과 같은 거대한 담론들을 만들어 내고 88만원 세대들을 압박하는 당위성들을 만들어낸다.


88만원 세대들은 기성세대도 이겨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신자유주의체제 내에서 살아남기를 종용받는다. '사도'와 싸우는 동안 받는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듯 한국에서는 이 치열한 경쟁 안에서 느끼는 좌절과 무력감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여기게 한다. 괴로운 순간이 지나가면 희망이 올 것이라 '희망고문'을 하면서.


인턴, 해외연수, 공모전, 봉사, 자격증 등의 취업 5종 세트에서 부모님의 배경과 재산이 추가 된 취업 7종 세트를 갖춰야 취업이 된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갈수록 많은 부분에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길 요구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0년을 기점으로 5년간 대기업 고용은 76만명 감소했다. 그와 비례해 '나쁜 일자리'는 증가했다.


신지는 '사도'와 싸우는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폭주'를 시작한다. 물론 외형적으로 이러한 폭발적인 힘은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 이러한 요소들은 관객들이 다이나믹한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88만원 세대'의 경우 '폭주'가 시국을 타개할 에너지로 발현될지 아니면 자기파괴적인 혹은 사회파괴적인 양태로 발현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건 아무도 조정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24일 개봉하는 <에반게리온:서(序)> 외에도 <에반게리온:파(破)>와 <에반게리온:급(急)>이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완결편까지 합해 총 2편이 남아 있다. 앞으로 개봉할 작품에서 신지의 선택을 지켜보고 싶다.

-- 출처 :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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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할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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